SM 신인 걸그룹 데뷔에 날벼락 맞은 ‘레드벨벳’
대형기획사 횡포에 눈물짓는 인디밴드
SM ”충분히 알아봤어야 했는데 실수 있었다” 사과
가수 신해철 “힘없는 인디 머리위에 침 뱉는다” 비난
[일요서울 | 이지혜 기자] 국내 최대 아이돌그룹 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가 2년 만에 새로운 신인 그룹 데뷔를 예고했다. 4명의 멤버로 구성된 신인 그룹의 팀명은 ‘레드벨벳’이다. 그러나 지난해 같은 이름으로 앨범을 발표한 인디밴드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대형기획사의 횡포’라며 이름을 돌려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결국 인디밴드 ‘레드벨벳’의 통 큰 양보로 데뷔를 앞둔 신인그룹의 팀명 논란은 일단락됐다. 사실 대형기획사 신인그룹의 이름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인기그룹 2ne1도 데뷔 전 발표된 팀명은 21이었다. 그러나 당시 21(Toanyone)이라는 같은 이름의 가수가 있었다. 이에 YG엔터테인먼트는 표기법을 바꾸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이 같은 대형기획사의 행동에 ‘횡포’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디지털 싱글 ‘헤어진 다음날’을 발표했던 인디밴드 레드벨벳은 SM엔터테인먼트의 신인 걸그룹 팀명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엄연히 음원까지 발표한 자신들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당황한 그들은 SM 측에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결국 멤버 중 한 명이 웹 사이트에 올라온 게시물에 ‘도와달라’는 내용의 댓글을 작성했고 이로 인해 이번 사태가 알려지게 됐다.
같은 이름 걸 그룹 데뷔 “정말 황당하다”
지난 29일 인디밴드 레드벨벳 멤버 하희수(25·여)씨는 “팀 이름으로 활동하고 싶다. 도와달라”는 내용의 글을 게재했다. 하씨는 “나는 레드벨벳이라는 이름으로 2013년 디지털싱글을 냈던 레드벨벳 멤버”라며 “작년에 싱글내고 홍대에서 공연하며 다음 작업을 준비 중이었는데 우리와 이름이 같은 걸그룹이 데뷔한다고 해서 당황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SM에서 팀 이름을 지을 때 음원사이트에 검색을 안 하지 않았을 텐데 힘없는 인디밴드여서 만약 SM 걸그룹이 데뷔를 하면 활동이 힘들어 질 것 같다”며 “이제 막 발돋움을 준비하는 우리다. 팀 이름에 정말 애착이 있다. 우리는 이 팀 이름으로 활동하고 싶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이 댓글은 곧 웹 사이트 곳곳으로 퍼졌고 언론 보도도 이어졌다. 누리꾼들은 ‘날강도 행위’, ‘상도덕이 없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최근까지 그룹 ‘신화’의 이름을 놓고 법적 분쟁을 벌인 SM이기에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높았다.
인디밴드 레드벨벳이 이름에 대해 상표권을 등록하지 않아 SM에서 같은 이름으로 활동해도 법적인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대형 기획사의 횡포’라는 비판은 줄어들지 않았다. 결국 SM은 지난 30일 “인디밴드 레드벨벳을 만나 팀명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반응 없던 SM 언론보도 후 연락 와
이에 대해 인디밴드 레드벨벳(멤버 하희수•김유나)은 “검색했으면 충분히 알았을 텐데 아쉽다”는 입장을 보였다.
지난 31일 서울 암사동에서 만난 레드벨벳은 “우리는 그냥 음악 하는 밴드”라고 소개했다. 레드벨벳은 동갑내기 친구 하희수(피아노•작곡), 김유나(보컬)가 지난 2012년 유재하 가요제 참가를 위해 결성한 밴드다. 가요제 이후 틈틈이 홍대에서 공연도 하고 지난해에는 음원도 발표했다. 이들에게 신인 그룹 레드벨벳의 데뷔는 황당한 일이었다.
하희수씨는 “(신인그룹 데뷔)기사가 나오자마자 대형 포털 사이트에서 보고 알게 됐다”며 “바로 SM에 연락을 했지만 연결이 안 됐다. 바로 연락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처음에는 우리가 레드벨벳이라는 이름을 아예 사용하지 못할 줄 알았다. 이름을 같이 사용하게 되면 그쪽에서 ‘다시는 우리 이름으로 활동하지 마라’라고 할 줄 알았다”며 “그런 의미에서 도와달라고 글을 작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씨는 이어 “레드벨벳이라는 이름이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그 컵케이크(레드벨벳은 원래 컵케이크 이름이다)가 대유행한 것은 아니었고 외국에서도 레드벨벳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뮤지션이 없었다”면서 “이름을 짓고 참신하게 잘 지었다고 생각했다”고 팀명에 대한 애착심을 보였다.
SM이 과연 사전에 같은 이름의 밴드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이에 대해 김유나씨는 “솔직히 말하면 SM에서 검색도 하지 않은 이름으로 데뷔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그 부분에서 화가 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른 사람들 말처럼 우리는 상표권을 등록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건(레드벨벳) 내꺼야’라고 말은 못하지만 그래도 기분은 나쁘다. 음원도 발표했는데 (우리가)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심정을 토로했다.
대형 기획사 소속 걸그룹이 같은 이름을 사용한다면 다시는 레드벨벳으로 활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당시 두 사람 곁에 맴돌았다. 하씨는 “언론에서 ‘이름을 뺏겼다’, ‘도용 논란’이라고 보도했는데 당황스러웠다”며 “이름을 뺏기면 우리도 그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우리 팀명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SM에서는 언론 보도가 되고 나서야 연락이 왔다. 그리고 양측이 만난 자리에서 “충분히 알아봤어야 했는데 실수가 있었다”며 사과했다. 또 두 사람이 레드벨벳이라는 이름으로 콘서트나 음반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SM에서 제재할 권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양측은 같이 레드벨벳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곧바로 두 레드벨벳이 합의를 했다는 제목의 기사가 보도됐다. 그러자 일부 누리꾼들은 “SM에서 돈을 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레드벨벳 멤버들은 “우리는 돈을 받은 적도 없지만 받을 권리도 없다”며 의혹을 일축했다. 현재 두 사람은 오는 9월 음반 발표를 앞두고 작업에 매진 중이다.
이번 ‘레드벨벳’ 사태는 SM에서 조금만 알아봤다면(음원 사이트에서 검색만 했다면) 벌어지지 않을 일이었다. 그랬다면 인디밴드 레드벨벳은 아무 걱정 없이 지금처럼 활동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같은 이름을 사용하기로 결정했지만 걸그룹이 큰 성공을 거둔다면 인디밴드 레드벨벳의 활동에 빨간불이 켜질 것이라는 것은 예상이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SM 측에서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처럼 대형기획사에서 소규모 기획사나 인디밴드 등에게 부리는 횡포는 드문 일이 아니다. 지난 2009년 그룹 2ne1(투애니원) 데뷔 당시에도 같은 일이 있었다. 당시 YG엔터테인먼트에서 발표했던 신인 걸그룹 이름은 ‘21’이었다. 그러나 이미 2005년 음반을 발표한 ‘21(To Anyone)’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이에 YG는 지금과 같은 2ne1으로 명칭을 수정하고 서로의 활동에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발음은 ‘투애니원’으로 똑같아 ‘꼼수’를 부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역시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결과다. 포털 사이트나 음원 사이트에서 검색만 했어도 같은 이름의 기존 가수가 있는지 여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2010년 발표된 씨엔블루의 ‘외톨이야’는 인디밴드 와이낫의 ‘파랑새’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당시 가수 신해철은 “힘없는 인디의 머리위에 오줌 싸고 침도 뱉는구나”라고 씨엔블루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결국 법정까지 간 표절 논란은 2011년 씨엔블루가 승소했지만 아직까지도 인디밴드 표절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이유는 인디밴드의 저작권 보호가 대형기획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이다. 레드벨벳의 경우 상표권을 등록하지 않아 SM에서 사용하더라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이에 레드벨벳 멤버들은 “상표권 등록에 대해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상품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음악이 아니기 때문에 보통 인디밴드들은 상표권 등록을 하지 않는다. 법적 절차도 체계적으로 갖춘 대형기획사에 비해 인디밴드들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표절 시비가 붙어도 제대로 대응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상황은 변하기 마련이다. 인디밴드를 향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 또 인터넷을 통해 인디밴드가 먼저 대중에게 다가설 수 있는 기회도 많아졌다. 대중들의 눈을 의식한다면 대형기획사의 횡포는 점점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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