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교수임용에 9억까지 '현대판 매관매직' 명함장사 나선 대학들

교수직 팔아 기부금 받고 정부-검찰-정치권 로비까지

2014-08-04     오두환 기자

돈은 기업이 내고 대학은 유명인 부르고
교수임용 위한 발전기금 부르는 게 값이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입학생 수가 감소하면서 대학들이 위기를 맞고 있다. 정부도 대학들의 정원감축을 통한 구조조정에 힘을 싣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일부 대학은 정부의 정책에 따르는 대신 꼼수를 부리며 재원 확보에 나섰다. 대표적인 방법은 명패 장사다. 인기 없는 학과 이름을 인기있는 이름으로 고쳐 학생들을 모집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커리큘럼에는 변화가 없다. 게다가 소위 ‘약발’이 다하면 또다른 이름으로 바꿔 다는 방식을 되풀이 하다보니 학생들만 피해를 보기 일쑤다. 최근에 대학들은 명함장사에 나섰다. 외부 기업, 개인 등에게 기부금을 받고 교수를 임명하는 방식이다. 이젠 교수명함도 돈을 주고 매매하는 시대가 왔다.

대학교수를 ‘시대의 양심’ ‘시대의 촛불’ ‘지식인의 상징’으로 부르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이젠 옛말이 돼 버렸다. 최근 우리 주변에서는 교수명함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국회의원·시장 선거 등 선거철만 되면 ‘연구교수’ ‘겸임교수’ 등의 타이틀이 넘쳐날 정도다. 인터넷신문이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너도나도 기자명함을 들고 다닌 것처럼 전국에 수많은 대학이 생겨나면서 너도나도 교수명함을 들고 다니고 있다.

이름뿐인 교수 넘쳐 난다

교수는 지식인의 상징이다. 대학·전문대학 등의 고등교육기관에서 전문지식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자신이 가르치고 연구하는 분야에서는 학문적으로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름뿐이 교수들이 너무 많다.

교수명함은 정치인들에게 신분세탁 및 업그레이드를 위한 좋은 도구다. 그만큼 손쉽게 교수명함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대학은 줄어드는 학생들로 인해 감소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대안으로 교수명함 판매에 적극적이고 정치인들이나 일부 기업인들에게는 교수명함이 ‘명예’를 거머쥘 수 있는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6월에 끝난 지방선거에서도 서울시 구청장 후보 A씨와 충남 기초단체장 후보 B씨가 각각 연구교수와 겸임교수라는 경력을 밝혔다. 하지만 A씨의 경우 직접 강의를 한 적도 없고, 급여도 받은 적이 없었다. B씨도 실제로 수업을 하지는 않았다.

비전임 교원 18개 유형
실제 명칭은 50개 이상


실제로 수업을 하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교수 직함을 쓸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고등교육법상 대학 교원이 전임과 비전임으로 나뉜다. 전임 교원은 조교수, 부교수, 정교수로 구분된다. 전임강사로 시작해 부교수, 정교수가 될 수 있다. 정교수가 되면 정년(65세)이 보장된다. 비전임 교원은 시간강사, 겸임교수, 초빙교수, 명예교수로 불린다. 하지만 실제 통용되는 비전임 교원의 명칭은 아주 다양하다.

김형근 전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고등교육연구소장은 ‘대학교육’ 114호에서 비전임 교원의 유형을 겸임·초빙·명예·객원·석좌·기금·특임·외래·임상·계약제·대우전임·강의·연구·교환교수 등 18가지로 구분했다. 그러나 국내에서 통용되는 호칭은 50가지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대는 별도 기금으로 채용하는 전업 계약직의 경우 기금(서울대발전기금)·BK(브레인코리아)·HK(인문한국지원사업) 교수 등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서울대는 특히 기금교수가 상당히 많은 편이다. 지난 2011년 11월 28일 기준 총 266명(서울대발전기금 26명, 서울대병원 234명, 치과병원 6명)의 기금교수가 재직하고 있었다.

이들 교수 모두가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는 교수들은 아니다. 강의 전담, 연구 전담 등이 있지만 개중에는 정말 이름뿐인 교수직도 많다. 그러다보니 강의도 하지 않고 연구실도 없는 허울뿐인 교수가 판치게 된 것이다.

문제는 대학들이 필요에 의해 비정규 교원으로 새로운 교수 직함을 무수히 많이 만들어 내도 제재할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현행 고등교육법과 교육공무원법 등 관련 법령에서는 비정규 교원의 임용 기준은 각 학교의 학칙과 재단 정관을 통해 자율적으로 정한다고 돼 있기 때문이다.

결국 대학들은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상근·겸임 여부, 보수, 재원 출처, 임용 계약 기간 등에 따라 다양한 교수직을 만들어 수요자에게 공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이러한 교수직 남발이 대학을 병들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문연구와 후학양성이라는 교수의 임무는 물론 결국 이렇게 만들어진 교수들 또한 비정규직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 대학들은 이러한 교수직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데 혈안이 돼 있어 관피아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교수·총장 된 관피아
바람막이 역할하기도

새정치민주연합 박홍근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퇴직한 4급 이상 교육부 공무원 15명이 사립대 교수로 임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상당수는 부실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최근 교육부가 대학 구조조정 압박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부실대학 채용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

부실대학 입장에서 교육부 고위 퇴직 공무원은 ‘천군만마’나 다를 바 없다. 퇴직공무원이라고 해도 현직 인사들과의 친분관계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실대학들은 이들 퇴직공무원들을 아예 총장으로 영입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만큼 좋은 바람막이가 없기 때문이다.

박 의원이 발표한 자료를 살펴보면 우석대학교, 동명대학교, 송원대학교, 대경대학교, 국제대학교, 동강대학교, 조선이공대학교가 퇴직공무원을 총장으로 영입해갔다. 퇴직 후 총장으로 간 공무원들 중에는 차관급 고위 공무원 2명, 별정직 고위공무원이 3명 등이 있었다.

이들 고위 공무원들이 따가운 비판에도 불구하고 교수명함을 선호하는 이유는 정년연장 효과와 함께 사회적 명예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수는 정년이 65세로 일반 공무원에 비해 길다.

수천만 원 연봉은 기본
검찰수사 무마 의혹도

대학에서 초빙하려는 고위공무원들이 전문가라면 그나마 상황은 낫다. 하지만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은 2010년 고위 관료 출신들을 비전임 교수로 채용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157명이 수업을 아예 하지 않고 27억 원의 연봉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정부 실세나 장관 출신도 여럿 포함됐다. 수천만 원의 연봉은 고스란히 챙겼다.

건국대는 석좌교수에 안대희 전 대법관을 임명하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1월 교육부는 242억 원의 업무상 배임, 회계비리, 수억 원의 재단 자금 횡령 등의 혐의로 김경희 이사장과 김진규 전 총장을 검찰에 고발조치했다.

이후 건국대는 안 전 대법관과 조영곤 전 서울중앙지검장, 박영수 전 서울고검장, 박희태 전 한나라당 대표 등을 석좌교수로 임용한 바 있다. 검찰 수사를 앞두고 검찰 출신을 줄줄이 석좌교수에 앉히자 검찰조사 무마용이라는 여론이 끊이지 않았다.

건국대 측은 교육을 위해 임용된 것일 뿐이라고 밝혔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특이한 점은 지난 21일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는 최근 김경희 이사장이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임원취임승인 취소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교육부가 제기한 김 이사장의 취임승인 취소사유 대부분이 취소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이유를 설명했다.

결국 김 이사장은 최근 이사장 직위를 회복했다. 하지만 지난 1일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최창호 부장검사)는 학교법인 재산을 사적으로 사용하고, 업무추진비·출장비 등을 부당하게 전용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상 배임 등)로 김 이사장을 불구속기소했다. 향후 최종 판결이 어떻게 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교수 명함
1인당 최대 9억 원 거래


비전임 교수들이 증가하면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시간강사다. 각종 기금교수 및 특임교수 등은 외부에서 받은 기금으로 운영되는 데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대학 입장에서는 손해 볼 일이 없다.

하지만 시간강사는 실제 임금도 대학 측에서 지불하는 데다 언젠가는 교수로 임용을 해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작용해 시간강사에 대한 처우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 사실이다. 대학 입장에서는 시간강사를 지출만 있고 수익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박인숙 새누리당 의원이 발표한 ‘대학 교원(비전임 포함) 직급별 연봉 자료’를 살펴보면 전임 교원(교수, 부교수, 조교수 포함)은 평균 7072만 원, 비전임 교원은 평균 1427만 원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봉 차이가 7배 가까이 났다. 시간강사의 처우를 개선하려고 도입한 강의·교육전담교수도 연봉 3천만 원 선에 불과하다.

앞서 지적했던 기금교수 등의 연봉은 보통 전임교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래저래 시간강사들은 미운오리새끼 대접밖에 못 받고 있다. 게다가 시간강사들이 전임 교원이 되기 위해서는 금전적인 요구나 발전기금을 요구받는 경우가 많다.

2010년 5월 25일 조선대학교 S 강사는 이러한 문제로 인해 자살을 선택하기도 했다. S 강사는 촉망받던 대학 시간강사였지만 유서 5장과 몇 장의 메모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S 강사의 메모에는 “교수 한자리가 1억 5천, 3억이라는군요. 저는 두 번 제의 받았습니다"라는 등 교수 임용비리 악행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고 전해졌다.

2010년 교수신문과 KBS 2TV ‘추적 60분’은 금품 요구와 논문 대필 문제 등 시간강사들이 겪고 있는 부당 요구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공동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설문에는 석·박사 임용정보 웹사이트 교수잡(www.kyosujob. com) 이용자 중 시간강사 552명이 응답했다.

설문조사 결과 ‘5000만 원~1억 원 미만’이 37.6%로 가장 많았고, ‘5000만원 미만’이 28.2%, ‘1억원~1억5000만원 미만’이 14.1%, ‘1억5000만원~2억원 미만’ 9.4%, ‘2억원 이상’은 10.6%에 달했다. 2억 원 이상을 요구 받았다는 응답자 가운데는 남성(7.1%)보다 여성(17.2%)이 훨씬 많았다는 점도 시선을 끈다. 학문별로는 예체능 분야 강사가 28.6%로 가장 많았다.

4년 전 설문조사인 만큼 지금은 금품 요구액이 더 늘었다. 최근 구속된 교수직 매매 브로커 L씨는 교수 채용 대가로 3명에게 총 10억 원을 뜯어냈다. 그는 교수직 희망자들에게 해당 학교의 인사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처럼 행세하며 발전기금 명목으로 1인당 8000만 원부터 9억 원까지 받아냈다.

지방의 한 사립대에서 장기간 시간강사로 활동했던 Y씨는 최근 시간강사를 그만두고 연구소에 취직했다. Y씨는 “학문에 대한 열의와 사명감만으로 일을 계속 할 수는 없었다”며 “아이들도 커가는데 교수임용이 언제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적은 보수로 계속 시간강사를 할 수는 없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교수임용을 댓가로 발전기금 제의를 받았지만 차마 양심상 돈을 내고 교수임용을 받을 수는 없었다”고 밝혔다.

freeor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