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는 날 한 번도 찾지 않았다”

2006-06-07     정은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테러’ 사건으로 살인미수 및 공직선거법위반으로 구속 수감 중인 지충호씨의 양모 김 모(82)씨가 이번 사건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6월 2일 취재진은 김씨가 4년째 요양 중인 경기도 화성시 소재 한 노인의료복지시설을 찾아 갔다. 김씨는 1950년대 후반 지씨를 입양한 장본인으로 알려졌다.

8순을 넘긴 김씨는 오랫동안 치매 증세를 앓아왔다. 이로 인해 언어장애는 물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다. 심지어 정신착란 증세가 올 때도 있다. 그럼에도 지씨와 관련된 인터뷰가 이뤄지는 동안 과거 지씨의 행적에 대해 몇 마디를 던졌다. 본지는 요양원 관계자 A씨의 입을 빌려 그의 말과 표현, 몸짓 등을 명확하게 전달받을 수 있었다. 지난 2일 오후 화성 소재 요양원에서 만난 김씨의 전언을 풀어봤다.




지씨의 양모인 김씨가 요양을 하고 있는 B요양원은 무료복지시설로 1998년 정부의 지원금 등으로 세워진 곳이다. 이 시설은 요양시설의 특성상, 일반 요양원처럼 산자락 한 모퉁이에 자리잡고 있었다. 지난 2003년 친동생에 의해 처음 이곳을 찾았다는 김씨는 요양원 건물 2층 3번째 방에 위치한 3인실 구조의 방에 입소돼 있었다.

3년 전부터 요양원 생활

백발에 유난히 하얀 피부가 인상적이었던 김씨는 한눈에 보기에도 상당히 쇠약해 보일 정도로 여위어 있었다. 실제로 김씨는 현재 거동은 엄두조차 못 내고 하루 24시간 천장만 보고 누워있는 상태라고 시설 관계자는 전했다. “눈으로 직접 확인하셨죠? 상황이 이러하니 인터뷰는 제가 대신하겠습니다.” 요양원 관계자 A씨가 난감해하는 취재진에 앞서 던진 말이다.

인터뷰에 앞서 A씨는 “지씨 사건이 터진 이후 각종 언론으로부터 많이 시달려 왔다”면서 “김씨의 신변보호와 정서적 안정을 위해 사진 촬영은 자제했으면 한다”며 양해를 구했다. 이어 그는 “김씨는 지씨를 모른다고 했다가도 어느새 눈물을 떨구고 있다”며 “때문에 김씨의 말은 거의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인터뷰 도중 지씨 이름만 나오면 취재진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모습과 ‘지씨를 기억하느냐’는 질문에 부정하지 않는 모습 등을 감안할 때 그가 지씨를 기억하고 있음은 분명한 듯했다.

이와 관련, 김씨의 한 주변 인사는 “김씨가 치매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기억했다가 못했다가 하는 것 같다”며 “하지만 3년여 전 이곳으로 내가 김씨를 방문했을 때 그는 분명 지씨를 기억하고 있었고 그리워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인사의 말을 빌리면, 김씨는 ‘지씨가 출소하면 같이 살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 심지어 ‘지씨가 한번 쯤은 나를 찾아올 것’이라며 내심 기대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을 실제 김씨가 했는지 여부를 다시금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김씨가 이곳에 머문 지 4년여의 시간이 흘렀다는 점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양자에 대해 언급했을 개연성은 높다. 이어 이 인사는 “91년 지씨가 청송보호감호소에 수감된 이후 두 사람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걸로 안다”며 “이에 김씨는 지씨의 출소날짜 등 안부를 내게 물은 바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비록 양부모의 입장이지만, 지씨를 생각하는 마음이 상당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괴로운 표정 ‘역력’

그렇다면 이번 ‘박근혜 테러 사건’에 대해 김씨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출소하면 같이 살고 싶다던 바람을 뒤로 한 채 또 구속되는 지씨를 지켜봐야만 하는 김씨의 심정은 어떨까. 취재진의 이번 사건과 관련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질 무렵 김씨는 상당히 지쳐 있었다. 인터뷰를 돕던 A씨도 “더 이상 말을 거는 것은 어렵겠다”면서 인터뷰를 중단시켰다.

하지만 그는 “김씨의 표정이 매우 괴로워보인다”면서 “이는 비단 몸이 불편해서만은 아닐 것”이라는 말로 끝맺었다. 지씨의 성장과정과 이후 사회생활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던 김씨와의 만남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지씨와 관련된 각종 의혹의 실마리는 결국 풀리지 않았다.

지씨를 둘러싼 의혹의 실체는 검·경 합동수사본부와 한나라당 진상조사단 등의 활동을 통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지난 1일 진상조사단 경과보고 회의를 열고, ▲예단성 수사의혹 ▲미흡한 자금 배후수사 ▲통화내역 등 수사 미흡 ▲언론에 의지한 검·경 수사 수준 등 크게 4가지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를 촉구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박 대표 피습사건을 수사했던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5월 31일 ‘박 대표 테러범’ 지씨를 살인미수 및 공직선거법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합수부는 지씨의 구속기소 시한이 6월1일 오전 만료됨에 따라 지난 30일 서울서부지법에 구속기간 연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이 이를 불허, 이 같은 결정을 내린것으로 알려졌다.

# 91년 지충호 검거했던 수사관 전화 인터뷰“15년전 일이라 기억안나”

지난달 29일. 본지는 국세청 간부의 고소에 의해 지난 91년 서울 올림피아 호텔 커피숍에서 지충호(50)씨를 검거했던 수사관을 찾기 위해 인천 남동경찰서를 찾았다. 그러나 사건을 맡았던 담당 수사관은 이미 퇴직한 상태. 수소문 끝에 연락이 닿아 그와 어렵게 전화통화를 할 수 있었다.
다음은 A 전 수사관과의 일문일답.

-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피습사건’이 터졌을 때 지씨를 알아봤나.
▲ 전혀 몰랐다. 신문 보도를 통해 당시 내가 지씨를 검거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처음엔 깜짝 놀랐다. 그의 대담함에 놀라울 따름이다.

- 당시 조사한 지씨 사건에 대해 말해 달라.
▲ 15년 전의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게다가 이번 사건으로 지씨가 화두에 오른 것이지 당시 지씨는 범죄를 저지른 일개 범인에 불과했기 때문에 특별히 기억할 이유도 없었다.

- 지씨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지씨의 혐의가 지나친 처벌(징역 7년 + 보호감호 7년 4개월)이었다면서 피해자·검·경이 ‘짜고 친 고스톱’이었다고 주장하던데.
▲ 말도 안 된다. 나는 그들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다.

- 혹시 주변에 판·검사, 안기부와 관련된 인척 등이 없는지.
▲ 전혀 없다. 이제 와서 이 사건을 거론하는 것도 불쾌한데 그런 식으로 넘겨짚지 말라.

- 수사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나. 데이터상은 아니더라도 오래된 문서라도 보관하고 있을 것 같은데.
▲ 당시 주목받는 인물, 큰 건이었다면 몰라도 이런 단순 사건은 아마 폐기됐다고 봐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