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은 대낮 시내 ‘활보중’

2006-03-21     정은혜 
“공소시효는 끝나도 악몽은 계속된다.”지난 1991년 3월 25일 대구에서 소년 5명이 ‘도롱뇽 알을 찾으러 간다’며 실종, 11년 6개월 만에 유골로 발견된 일명 ‘개구리소년’ 사건. 단일 실종사건으로는 최대 규모인 연인원 32만명의 수사인력 동원, 용의자 및 증인으로 조사받은 사람만 수천 명, 수백 명의 베테랑 형사 등을 투입해가며 다각적인 방법으로 수사를 벌여왔던 이 사건은 그 기록만으로도 당시 파장을 짐작케 한다. 하지만 이들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 이달 26일이면 공소시효도 만료된다. 이로써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은 영구미제로 남을 공산이 커졌다.

며칠만 버티면 ‘범인 승리’

지난 2002년 9월 26일, 실종된 지 11년 6개월 만에 ‘개구리소년’들은 대구 달서구 와룡산 자락에서 유골로 발견됐다. 이들의 사망원인은 ‘타살’이었다.법의학팀의 감식 결과에 따르면 발견된 5구의 유골 중 1구의 두개골 좌우에서는 2개의 구멍이 발견됐다. ‘총상’임을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지만 법의학팀은 “탄환이 지나간 입구와 출구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아 총상으로 보기 어렵다”고 일축했다. 다른 2구의 두개골 관절 일부는 골절돼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골절은 이들이 ‘타살’되었음을 짐작케 하는 근거라 할 수 있다. “사람의 두개골은 관절이 정교하게 맞물려 있어 결합력이 매우 강하다. 때문에 외부의 강한 힘이 아니면 분리될 수 없다”는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 이를 뒷받침 해주고 있다.

뿐만 아니다. 이들의 유골에는 외상 흔적도 역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법의학팀은 “정신이상자 등이 둔기로 때린 뒤 예리한 흉기로 수십 차례 찌르면서 생겨난 흔적으로 보인다”며 이들의 사인이 ‘타살’임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소시효를 코앞에 둔 지금까지도 밝혀진 것은 이들이 ‘타살됐다’는 것뿐 범인에 대한 어떤 단서도 없다. 당시 사용됐던 흉기가 무엇인지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수사에 진척이 없자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경찰도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게 현실. 하지만 경찰을 더욱 맥 빠지게 하는 것은 며칠 후면 진범이 나타나도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간 쏟은 경찰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셈이다.

루머만 난무… 범인 오리무중

실종된 5명의 소년을 찾기 위해 전국적인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던 이 사건은 수많은 루머를 자아내기도 했다. 단일사건으로는 사상 최대의 수사인력이 투입됐음에도 범인이 잡히지 않자 범인은 공무원이나 기자 등 조사대상에서 제외되는 신분이거나 경찰일지도 모른다는 분석도 나왔다. ‘타살’로 잠정결론이 난 후에는 원한 관계에 의한 살인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동네 주민이나 불량배가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왔다. 또 모든 수사 진행 상황을 현장에서 보면서 사태파악이 가능한 주민, 혹은 정신이상자나 성격이상자라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루머들을 뒤로 하고 범인은 여전히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유사사건 잇따르기도

2004년 1월 발생한 부천초등생 실종사건은 한동안 잊혀졌던 개구리소년 사건의 악몽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두 사건은 범행대상이 남자 초등학생들이라는 점, 사체가 발견된 장소가 모두 인적이 뜸한 곳이었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또 대대적인 경찰의 수색에도 불구하고 사체가 초기에 발견되지 않은 점,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외진 야산의 계곡에서 발견된 점이 일치한다. 게다가 두 사건 모두 뚜렷한 범행동기가 없어 그 지역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기도 했다. 실종 당시 어린이들의 목적지가 분명했고, 부모에게 어떠한 협박전화나 금품을 요구한 사실이 없다는 점도 역시 닮은꼴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들 지역 주민들은 ‘언제 어디서 우리 아이가 범인의 표적이 될지 모른다’며 아이들을 다른 학교로 전학시키기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범인 미치도록 잡고 싶다”

한편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은 경찰의 명예에 먹칠을 하기도 했다. 부임하는 경찰 고위급 인사들마다 사건해결을 위해 총력을 기울였으나 범인에 대한 어떤 단서도 찾아내지 못한 것. 수사계통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수사관들도 직위해제 등 징계조치가 잇따랐다. 개구리소년들의 유골이 발견된 후부터는 밤낮 없이 수사본부에서 강행군을 이어나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공소시효 만료를 앞둔 현재, 수사본부의 분위기는 어떨까. 수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대구 성서경찰서 형사과 관계자는 “수사본부도 그대로 존재하고 수사 역시 여전히 진행 중”이라며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계속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수사진행 사항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끼며 언론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제보도 끊겼으며 특별한 진척사항이 없다는 이유 때문. 사실상 수사가 종결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결정적인 단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공소시효가 만료된다 해도 수사는 계속될 것”이라며 “언론은 공소시효와 수사여부를 결부시키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그는 “영원한 비밀은 없다”며 “범인 처벌이 목적이 아닌 유족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며 강한 수사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범인을 미치도록 잡고 싶다’는 유족들의 바람과 형사들의 절규를 비웃으며 범인은 어디선가 활개치고 다니는 것은 아닐까. 사건의 공소시효 만료를 앞두고 이들의 한숨과 탄식은 깊어지고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