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 직원 농약 마셔] 취조실 실체 드러났다

2014-07-21     박시은 기자

청춘 바친 회사, 트집잡아 권고사직 종용
감사받던 직원 “억울하다”며 농약 마셔

[일요서울 | 박시은 기자] 삼성중공업(사장 박대영)이 그룹 차원으로 진행하고 있는 경영진단이 도를 넘어섰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거제조선소 직원들에게 퇴사를 종용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6.6㎡(2평) 남짓한 취조실을 만들어 감사 대상에 오른 직원들에게 인격적인 모독까지 행하고 있다는 사실도 폭로됐다. 앞서 감사를 견디지 못한 직원이 농약을 마시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장기화된 경영진단 기간만큼이나 잡음도 많은 것이다. 폭로전과 극단적 선택으로 얼룩진 삼성중공업 감사 논란의 막전막후를 [일요서울]이 파헤쳐봤다.

 

삼성중공업이 지난 2월 시작한 감사가 장기화되면서 각종 구설에 올랐다. 업계는 검찰 등 사정기관에 의해 비리실태가 드러나기 전에 그룹 차원에서 조치를 취하고자 감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봤다. 하지만 드러나는 실상은 ‘구조조정’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의도적으로 퇴직을 종용하기 위해 감사를 수단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삼성중공업의 고강도 감사 실상은 한 직원의 폭로로 수면 위에 떠올랐다. 감사를 받던 한 직원이 개인 블로

그에 삼성중공업의 취조실에 대해 폭로하고, 박대영 사장에게 쓴 전상서가 공개된 것이다.

박대영 사장 전상서는 자신이 의심받고 있는 일은 사실이 아니며 ‘카더라’ 식의 소문으로 조사를 하고 있고, 감사직원에게 인간적인 모욕과 자존심을 짓밟는 말을 듣고 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해당 글을 작성한 J 부장은 2006년부터 2011년까지 해양조립2부장으로 근무했고 2012년 일부 조직 개편 당시 사외공정운영 파트에서 일했다. 2013년부터는 사외조달팀 소속으로 일했다.

J 부장은 감사를 받으며 2012년~2014년 사외 협력사 현황에 대해 파악한 후 삼성 임직원의 가이드라인을 위배한 사례 기록을 요구받았다. 또 자진사퇴를 요구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심한 스트레스와 두통, 위장장애가 일어났으며 종양제거 수술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J 부장은 전상서를 통해 “금전수수를 했다는 압박을 받고 있는데 사장님 앞에서 맹세합니다. 전혀 그런 사항이 없다고 맹세합니다. 두 감사자에게 인간적인 모욕과 자존심을 밟는 모든 말에도 제 자신의 깨끗함을 위해 참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인격 모욕까지 자행되고 있는 상황을 토로했다.

방음·녹취·CCTV 설치 10년 전 일 문제 삼아

해당 내용은 김경습 삼성중공업 거제지역일반노조 위원장의 취조실 폭로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

김 위원장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은 두 평 남짓한 취조실에서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감사 취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취조실은 삼성중공업 본관 홍보관에 14개~20개 상당의 룸으로 조성돼 있다. 내부에는 방음시설이 돼 있고, CCTV도 설치돼 있다. 감사는 감사직원 2명이 한 조가 돼 조사를 진행한다. 감사대상자는 감사가 종결되는 날까지 감사실로 출근해 조사를 받는다. 뿐만 아니라 감사실에서 감사를 받았던 이야기는 감사 규정이므로 일절 다른 사람에게 발설해서는 안된다.

김 위원장은 “경영진단을 빙자해 군사독재시절 안기부에나 있을 법한 취조실을 노동자들의 구조조정을 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면서 “그것도 인간중심 기업이라는 삼성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면 믿을 수 있겠냐”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폭로와 박대영 사장 전상서가 공개되자 삼성중공업 감사팀이 도를 넘는 인권유린을 한다는 의혹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6월에도 감사대상자였던 한 과장이 억울함을 호소하다 농약을 마신 사건도 벌어진 바 있다.

김 위원장은 [일요서울]과의 인터뷰를 통해 “회사는 취조실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다”며 “이를 증명하려면 취조실이 위치한 본관건물 4층을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취조실 형태의 룸은 회사의 지시로 공무팀 직원들이 와서 직접 개조해서 만든 공간이다”며 “일반적으로 사원들을 조사한다고 하면 회의실이라든지 사무실 형태의 빈 공간에서 조사해도 되는 것인데 다닥다닥 붙어있는 좁은 취조실을 직접 만든 것은 구조조정을 하기 위한 의도가 있다고 생각된다”고 주장했다.

삼성중공업이 적자수주한 부분을 만회하겠다는 목적을 갖고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회사 입장에서는 권고사직을 할 경우 희망퇴직자 신청을 받는 것 보다 1인 당 2~3억 원 가량의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점도 구조조정을 염두한 감사라는 의심을 산다.

이어 “10년 전에 있었던 일, 심지어 해고사유에도 해당되지 않는 수준의 일을 트집 잡아 권고사직을 종용하고 있다”며 “회사에서 책임을 져야하는 임원이나 노동자가 있다면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행태로 구조조정이 이뤄져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청춘을 다 바쳐 일해온 노동자들에게 글로벌 기업을 지향하는 삼성이 있을 수 없는 일을 자행하고 있다”며 “현재 이 같은 일들로 회사를 그만둔 노동자들이 다수 존재한다. 두 번 다시는 이런 구조조정을 통해 억울하고 부당하게 해고되는 노동자들이 없도록 투쟁을 지속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취조실이라고 알려진 것은 사실과 다르다”며 “감사를 진행하려면 당연히 일정 공간이 필요하고,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인데 오해가 생긴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감사는 매년 이뤄졌던 것이고, 지금까지와 별 다를 것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CCTV와 관련한 사안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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