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위해 1시간 일찍 뜀박질…탁상행정 분통
수도권 광역버스 입석금지 출퇴근 대혼란
기다려도 빈 버스 오지 않아… 결국 택시 타기도
“현실과 거리 먼 정책” vs “시민 만족도 높다”
[일요서울 | 이지혜 기자] 지난 16일부터 고속도로를 달리는 수도권 광역버스 입석금지가 시행됐다. 국토교통부와 경기도는 출퇴근 혼잡을 막기 위해 188대를 증차시켰다. 배차간격도 평소보다 5분가량 줄였다. 그러나 혼란을 막을 수는 없었다. 입석금지가 시행된 첫날 승객들은 오전 6시부터 나와 버스를 기다렸지만 정차하지 않고 눈앞에서 지나가는 버스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오래 기다린 승객들의 항의가 이어졌으며 지나가는 버스를 향해 뛰어가는 승객도 있었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승객들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며 분노를 표출했다.
지난 4월 23일 오전 7시30분께. 경기도 용인에서 서울로 출근하는 A(28·여)씨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강남역으로 가는 광역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러나 버스 기사는 A씨에게 “오늘부터 입석이 금지됐다. 우리도 오늘 아침에 통보받았다. 지금 자리가 없어 탈 수 없다”는 말만 남기고 떠났다. A씨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다행히도 해당 노선을 제외하고는 입석을 허용해 무사히 출근할 수 있었다. 그러나 7월16일부터 고속도로를 달리는 모든 광역버스 노선이 입석금지된다는 소식을 들은 A씨는 출퇴근이 무척 걱정됐다. 고속도로 진입로 근처에서 버스를 탑승하다보니 항상 만원버스에 겨우 올라타야만 했기 때문이다.
무정차 바라보며 발만 동동
수도권 광역버스 입석금지가 시행된 첫날인 지난 16일 오전 7시께 경기 성남시 분당의 어느 정류장. 고속도로 진입하기 전 마지막 정류장이라 평소에도 겨우 버스를 탑승할 수 있던 곳이다. 입석이 금지된다는 안내를 받은 승객들은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출근길에 나섰다.
많은 사람들이 지각을 우려해 지하철역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스 정류장에는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서울역으로 가는 버스가 왔지만 정차하지 않았다. 다음 버스도 마찬가지였다. 기다리는 승객들이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달리는 버스를 향해 뛰어가는 승객들도 있었다. 버스가 정차하지 않으니 대기 줄이 줄어들지도 않았다. 오전 6시부터 버스를 타기 위해 대기했던 김모(42)씨는 한 시간 뒤인 7시에 등교하는 딸을 만나기도 했다. 딸은 아빠를 보고 “왜 아직도 여기 있느냐”고 물었지만 아빠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김씨는 “대기시간이 길어질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너무 심하다”면서 “1시간 가까이 기다리면서 10대가 넘는 버스를 보냈다. 이러다 지각이라도 할까 봐 걱정 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결국 택시를 탈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인 17일에도 상황은 변함이 없었다. 대기 줄이 너무 길어지자 일부 버스는 입석을 허용하기도 했다. 승객들의 항의도 이어졌다. 버스를 기다리던 40대 직장인은 버스기사에게 달려가 “내가 여기서 얼마나 기다린 줄 아느냐. 사람들을 위해서 입석이라도 허용해야지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것이냐”며 삿대질을 하며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기점으로 가는 승객들 “우리가 연어냐?”
상황이 이렇다 보니 택시를 타고 기점으로 가는 승객들도 많았다. 뒤쪽 정류장에서는 아무리 기다려도 빈 버스가 오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기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밖에 없다니… 우리가 연어냐?”며 자조 섞인 불만을 뱉는 승객도 있었다.
대다수 승객들은 제대로 된 대책 없이 입석 금지를 시행한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나모(26·여)씨는 “어떤 정책을 시행하려면 먼저 그 정책이 시행됐을 때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책을 마련한 뒤에 시행해야 한다”면서 “무턱대고 일찍 나와서 편히 앉아가라는 것은 현실을 너무 모르고 하는 말이다. 높으신 분들은 출퇴근 시간에 대중교통 이용을 하지 않아서 모르나 보다”고 말했다.
경기도 파주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임모(28·여)씨는 “왜 사람들이 출퇴근 시간에 불편을 감수하면서 입석으로 가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탁상공론식 정치만 하고 있다”면서 “현장의 교통과 안전 연구를 충분히 하고 대책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모(38)씨는 “입석금지를 시행하는 이유도 알겠고 필요성도 공감한다”면서도 “그러나 직장인들 출근은 해야 할 것 아닌가. 아니면 광역버스 타고 출퇴근하는 직원들의 편의를 봐주도록 조치를 취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현장 관계자들 따르면 첫날도 원만하게 진행”
경기도 내 입석금지 직행 좌석버스는 모두 1390대이며 출근시간 승객은 9만8000여 명이다. 입석금지 시행에 앞서 도는 버스 188대를 증차시키고 출근시간대 노선별 집중 배차를 지시했으며 배차간격을 축소시켰다. 또 4주간의 모니터링을 통해 추가 대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도 관계자는 “입석금지 첫날치고 원만하게 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면서 “현장에서 대기 인원이 많거나 급한 사람이 있으면 입석을 허용하는 등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입석금지 첫날 출근 시간대 135개 노선 가운데 113개 노선이 초기 대책 미비를 이유로 입석을 허용했다. 성남, 수원 등 대기 승객이 많은 곳은 오전 8시 전후로 입석을 전면 허용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지자체 측의 반응을 본 승객들의 불만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모씨는 “입석금지를 시켜놓고 결국에는 입석을 허용한 것인데 이게 어떻게 원만하게 시행된 것이냐”면서 “지금 승객들이랑 장난하나”라고 항의했다.
설상가상으로 국토교통부가 버스업체의 수익구조 개선을 위해 광역급행버스(M버스)의 요금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갑작스러운 입석금지 조치로 인해 버스가 증차되면서 버스회사들이 기존의 요금으로는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요금이 3000원으로 인상된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러다보니 “처음부터 요금 인상을 위해 입석 금지를 시킨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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