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욕’ ‘업적주의’… 교수사회가 추락하고 있다

2006-01-04     정은혜 
‘부(富)’를 위해 연구비를 빼돌린 대학교수를 비롯해 ‘명예’ ‘업적’을 위해 논문을 조작한 황우석 교수까지. 갈수록 ‘지성’과 ‘인격’의 상징인 교수들의 위신이 추락하고 있다. 구랍 26일 부산지법 형사6단독 안기환 판사는 무고, 저작권법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한 국립대학 교수 A씨에 대해 징역 10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문제의 A씨는 시간강사가 쓴 책을 ‘공동저서’라며 허위로 강사를 고소, 자신의 연구업적으로 둔갑시키는가 하면 제자들의 학위논문을 ‘표절’해 마치 자신이 쓴 저서인 것처럼 출판했다.

또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시간강사에게 ‘전임교수로 채용해주겠다’고 회유한 것으로 드러나 학계에 적잖은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사건의 발단이 된 책은 시간강사 정모(47)씨가 출판한 <해양정책론>. 재판부에 따르면 당시 부산 한국해양대학교에 출강 중이던 정씨는 99년 3월부터 11월까지 8개월 간 초고를 완성해 단독저서로 출판했다. 450페이지로 구성된 이 책은 시간강사인 정씨에게 매우 특별했다. 책의 모든 장을 직접 썼고 학과 조교들과 몇 달간 함께 고생하며 일궈낸 결과기 때문이다.

A씨와 정씨 서로 맞고소

그러나 A씨는 저작권을 가진 정씨와 아무런 합의없이 <해양정책론>이라는 같은 제목으로 같은 내용의 복사본을 출판했다. 또 2001년 9월에는 <바다와 국가의 정책>이라는 제목으로 일부 내용만을 수정해 마치 별도의 책인 것처럼 바꿔 출판했다. 이 책은 A씨와 정씨가 ‘공동저서’로 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정씨는 교육부, 저작권심사위원회 등에 거세게 항의하기에 이른다. 엄연히 저작권법 위반이라는 것. 정씨는 “A씨를 만나기 전부터 집필에 들어가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직접 썼다”며 “A씨를 알게 된 후 그가 ‘책의 원고를 보고 싶다’고 부탁해 초고 디스켓을 건네주었을 뿐 ‘공저’를 합의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결국 A씨가 자신으로부터 건네받은 디스켓을 사용해 앞서 말한 두 책을 ‘표절’했다는 것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라 했던가. A씨도 정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해양정책론>이란 책은 정씨 ‘단독저술’이 아닌 ‘공동저술’이며 ‘자신이 직접 저술한 책’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A씨는 이 책의 내용은 “자신이 지도하는 대학원생들과 오랜 시간 토의를 거쳐 직접 쓴 것”이라며 “오히려 시간강사인 정씨가 교수인 자신의 원고를 훔쳐가 저서로 출간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안 판사는 “현재 A씨가 범행 사실을 부인하고 있지만 모든 사건 정황, 증인들의 진술로 비춰 혐의가 인정된다”며 “열악한 지위에 있는 시간강사의 저술을 표절해 책을 발간,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하는 등 죄질이 나빠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죄질 나빠 실형 선고

안 판사가 말하는 A씨의 죄질을 살펴봤다.우선 A씨는 한국해양대 국제대학 법학과 교수로 ‘법’을 전공한 학자다. 반면 정씨의 전공은 ‘정책이론’. 해양 정책에 관한 저서를 해양이나 정책 분야를 전공한 학자가 아닌, 법학 전공 교수가 대학원생들과 함께 썼다는 주장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A씨가 “정씨가 내 원고를 훔쳐 저서로 출판했다”고 주장한 대목 역시 어불성설이라는 것. 게다가 A씨는 정씨가 책을 단독 출판하자 99년 12월 정씨를 검찰에 고발했다가 이듬해 1월 고소를 자진해서 취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와 아무런 합의도 없이 말이다. 만약 A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정씨와 합의도 보지 않고 단 2개월 만에 고소를 자진 취하할 이유가 없을 터. A씨는 정씨가 “잘못했다고 빌어서 한번 눈감아줬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씨는 “A씨가 고소를 한 지도, 고소를 취하한 지도 전혀 몰랐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A씨는 ‘전임교수’ ‘국제대 학장’이라는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정씨에게 “지금부터라도 잘 지내면 전임교수로 채용하는데 적극 돕겠다”고 회유한 것으로 드러났다.뿐만 아니다. A씨는 자신이 지도한 제자들의 석사논문을 무단인용, 표절해 단독저서를 출간하기도 했다. 그는 제자들의 논문을 각주까지 그대로 쓰는 등 무단으로 인용해놓고도 책 어디에서도 이 내용이 제자들의 석사논문임을 밝히지 않았다. 명색이 ‘대학교수’라는 지성인이 자신의 후배인 시간강사와 제자들의 책과 논문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도용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교수로서의 위상에 먹칠을 하게 될 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A씨는 왜 ‘표절’을 했을까.

이에 대해 안 판사는 “A씨는 표절로 얻는 당장의 이익(명예, 부, 연구업적 등)이 그에 따른 위험보다 더 크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개인의 지나친 욕심으로 ‘실적주의’에 편승, 실적을 조작했지만 결국 망신살”이라며 A씨의 행위에 대해 질책했다.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우리네 성향. 대충대충, 얼렁뚱땅 넘어가도 봐주는 사회풍토.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명예욕’ ‘업적(실적)주의’가 초래한 이 사건은 ‘조작’ ‘표절’ ‘우월적 지위남용’ 등 그동안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황우석 교수 논문조작 사건과 맞물려 학계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