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피아 잡기, 사정기관 총 출격…한전,LH,코레일,한국도로공사…
대상, 농심, 일동후디스 外 상당수 겨냥
공정위 등 조사 이미 상당부분 진행
문제 드러나면 추가 검찰조사 가능성
[일요서울 | 김재현 프리랜서]
정홍원 국무총리 주도로 사정기관이 대대적으로 ‘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에 나설 전망이다.
정 총리는 지난 8일 세월호 참사 후 ‘국가개조’와 관련, “민간 각계가 폭넓게 참여하는 국무총리 소속의 가칭 ‘국가대개조 범국민위원회’를 구성해 민·관 합동 추진체계를 만들고자 한다”고 밝혀 주목을 끌었다.
정 총리는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국가안전체계의 실패와 관피아 만연과 같은 공직사회의 부조리 등 적폐 척결을 민간의 참여 속에 이뤄내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검찰 경찰 뿐만 아니라 국세청, 감사원, 공정위 등도 관피아 척결에 힘을 보탤 것으로 알려져 정·관·재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세청과 공정위는 이미 일부 기업에 대해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했다. 또 감사원은 최근 검찰의 철피아 수사과정에서 감사원 간부가 철피아 비리에 연루된 혐의로 구속되자 관피아 조사 작업을 감사원 안팎에 걸쳐 대대적으로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정 총리는 이날 오후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는 국가개조 여정은 그 폭과 깊이를 가늠해 보았을 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국민 모두의 참여가 필요하며 사회 각계 각층에서 관심을 갖고 함께 실천에 동참해 주셔야 가능한 일”이라고 밝혔다.
정 총리는 “결자해지의 심정에서 국가개조라는 대소명을 완수하는 것이 국민 여러분께 책임을 지는 하나의 자세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배경을 밝힌 뒤 “위원회 산하에 전문 분과를 두어 공직개혁과 안전혁신, 부패척결, 의식개혁 등 국가개조를 위한 국민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면서 의제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실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또 정 총리는 “저는 시대적 소명을 받아 세월호 사고수습과 마무리에 최선을 다하고 국가개조로 대한민국의 대변화를 이루는 데 저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붓겠다”라며 “이를 위해 무엇보다 국가안전체계를 제대로 갖추고 공직사회 혁신과 부패구조 혁파 등 공직개혁을 우선적으로 추진 하겠다”고 의지를 천명했다. 이어 “소위 관피아 척결 등 공직개혁을 위한 과제들도 강력히 추진하고 이런 공직개혁의 제도적 틀을 7월중으로 갖추도록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발맞춰 국세청과 공정위 등은 관피아 척결을 위해 공기업과 대기업을 상대로 탈세, 로비, 리베이트, 담합 등 각종 비리를 집중 조사하고 있다.
공기업 연결
일반기업 사정
검찰의 관피아 수사가 속도를 더해가고 있는 가운데 감사원 등 다른 사정기관도 최근 접수된 투서들을 바탕으로 관피아 조사를 본격화하고 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공정위다. 공정위는 이미 ‘관피아’ 조사를 상당부분 진행했으며 곧 그 결과를 공개할 계획이다.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2일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공기업 등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거나 관계회사를 부당하게 지원하는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현장 직권조사를 실시중”이라며 “적발되는 법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히 조치하겠다”고 밝혀 문제가 드러난 해당 기업에 대해서는 추가 검찰 조사 가능성을 암시했다.
공정위는 공기업들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조사를 이번 달까지 마무리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에 따르면 그동안 사전 조사가 충분히 진행됐기 때문에 조사 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될 것으로 공정위는 보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 3월, 26개 공기업집단 등에 대한 서면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5월부터 현장조사를 진행 중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공정위는 이달까지 현장조사를 마무리하고 수집된 증거에 대한 보완조사를 거쳐 12월 중 법위반행위를 제재할 계획이다.
공정위는 공기업의 귀책에 의한 공기 연장임에도 공사대금 조정을 거부하는 행위, 생산완료 물량 납품취소, 지연이자 및 어음할인료 미지급 행위, 자회사에 구매물량을 몰아주어 민간 경쟁업체를 구축(驅逐)하는 행위, 퇴직임원 등이 신설한 회사를 거래단계에 추가해 마진을 취하게 하는 통행세 관행 등을 집중 파헤치고 있다.
현재까지 조사가 이뤄진 곳은 한국전력,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철도공사(코레일), 한국도로공사 등이다. 이외에도 공정위 관계자에 따르면 공정위는 필요에 따라 한국가스공사, 한국수자원공사, 인천도시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석유공사, 서울메트로, 한국지역난방공사, 부산항만공사 등 공기업에 대해 추가 조사를 할 수도 있다.
코레일과 한국도로공사에 대한 현장조사는 지난 6월 이뤄졌다. 코레일은 특히 하도급업체와의 거래에서 퇴직 임원 회사를 거래단계에 끼워 넣는 이른바 '통행세' 행위를 한 혐의, 하도급업체를 대상으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거래상 지위를 남용한 혐의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5월엔 한전 및 공공공사 최대 발주처인 LH에 대한 현장조사가 이뤄졌다. 공정위는 한전이 자회사에 일감을 몰아줘 민간 경쟁업체를 차별한 혐의, 퇴직한 임원과 관계된 회사를 거래 단계에 끼워 넣어 부당한 이익을 준 이른바 통행세 관행, 공기업이 지불해야 할 비용을 하도급업체에 떠넘긴 혐의 등을 집중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LH에 대해서는 지지부진한 개발공사를 민간 사업자에 떠넘기는 등 일방적인 계약 철회 관련 횡포를 부렸는지 여부, 발주과정에서 시공사에 하도급비용을 강제로 낮출 것을 요구했는지 여부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도 관피아와 관련해 이미 상당한 사전 조사를 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일부에서 “감사원이 코레일 외에 추가로 3~4개 공기업과 대기업에 대해 조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감사원은 최근 문제가 된 감사원 직원 철피아 비리 연루 사건을 강도 높게 조사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코레일을 집중 조사하고 있다. 또 감사원은 철피아 조사와 관련해 철피아 비리에 연루된 기업이 더 있다는 제보를 접수하고 해당 기업들에 대해 조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감사원이 주목하고 있는 기업은 한국철도시설공단 납품 비리 의혹을 사고 있는 A사와 B사 등이다. 또 감사원은 이들 기업이 다른 공기업으로부터도 납품 의뢰를 받는 과정에서 시장독점에 의한 부당한 행위 등을 한 것으로 보고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철피아 연루 감사원
명예회복 나서
감사원은 정부 주요 부처 관계자들의 A사와 B사의 비리를 눈감아 준 정황이 있다고 보고 해당 부처에 대한 조사도 진행할 계획이다. 특히 A사에 대해서는 A사가 특정 정부 부처 실무자 등과 연결돼 있는 정황을 파악하고 이 부분을 조사중이다. A사는 영남 지역 업체로 관련 업계에서 국내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데다 정치권 인사가 이 회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감사원의 한 소식통에 따르면 A사는 막강한 정치권 인맥을 바탕으로 특정분야에서 공기업이 추진하는 사업에 상당부분 참여했으며 이 과정에서 상당한 특혜를 입은 정황이 있다. 감사원은 이 회사를 조사해 범죄사실이 드러날 경우 사정기관에 수사를 의뢰할 계획이다.
또 철피아 수사와 관련, 검찰이 전방위로 수사를 확대하면서 국세청 등도 힘을 보태고 나섰다. 국세청으로부터 세금 누락을 이유로 코레일에 600억원이 넘는 추징금을 부과했다. 코레일은 이와 별도로 공정위와 감사원으로부터도 일감 몰아주기 의혹 및 관피아 논란 등에 대한 조사도 받고 있다.
국세청은 지난 4〜5월 코레일에 대한 세무조사를 한 뒤 용산역 개발사업 과정에서 세금을 누락했다며 지난달 600억〜650억원의 추징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코레일 측은 “추징금 규모가 아직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닌 것으로 안다”며 “코레일은 세금을 누락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코레일은 이번 추징금 부과에 대해 조만간 조세심판원에 제소한다는 계획이다.
코레일은 공정위 조사도 받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달 9일부터 18일까지 코레일 대전본사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코레일이 계열사의 자회사인 보험중개회사 KIB를 통해 A손해보험사에 보험계약을 몰아줬다는 ‘일감 몰아주기’ 의혹 등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코레일은 철도비리 등 관피아 논란과 관련해서 지난 4월 감사원으로부터 특별감사를 받기도 했다.
국세청 기업 털기
2라운드
국세청도 공기업 뿐 아니라 대기업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국세청은 최근 대상그룹에 이어 농심과 일동후디스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식품업계에 대한 전방위적인 세무조사를 벌이면서 국세청 주변에서는 검찰이 세무조사 기업에 대한 추가 조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국세청은 서울 동작구에 소재한 농심 본사에 회계 및 세무 관련 자료를 확보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농심 측은 지난 2009년 이후 5년 만에 이뤄지는 정기 세무조사일 뿐 다른 이유는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관피아 척결로 각종 기업 수사가 재개되는 상황에 국세청의 농심 수사는 예사롭지 않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농심에 대한 조사가 대상그룹과 일동후디스 조사의 연장선상이라는 점에서 정기 세무조사의 성격은 아닐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앞서 국세청은 지난달 20일 서울 구의동 일동후디스 본사와 강원 춘천과 횡성공장에도 국세청 조사요원을 보냈다. 일동후디스가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는 것은 지난 2005년 이후 9년 만이다.
이어 같은 달 26일부터는 대상그룹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대상은 지난 2011년 이후 3년 만에 또다시 세무조사를 받게 돼 재계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주목할 점은 국세청이 대상에 서울지방국세청 4국 요원을 투입했다는 것이다. 서울지방국세청 4국은 일반적인 정기 세무조사와 달리 탈세나 탈루, 비자금 조성 혐의 등이 포착된 때 투입되는 곳이다. 이는 대상그룹에 대한 조사가 국세청이 비리에 대한 제보를 받고 조사를 진행하는 특별 세무조사라는 의미다.
대상은 지난 2005년에도 임창욱 대상그룹 회장이 비자금을 조장했다는 혐의로 특별 세무조사를 받은 바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정기 세무조사를 5년 이상 받지 않은 식음료 기업들이 다음 차례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무성하다.
한편 사정기관 주변에서 “사정기관이 일부 사안에 대해 조사를 머뭇거리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국세청, 공정위, 검찰 등 일부 사정기관 출신이 공기업이나 기관의 고위직 인사로 재직 중인 경우가 적지 않다. 일부에서는 현 정권와 밀접하게 연결된 이들이 연루된 사안에 대해서는 제대로 조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국세청과 공정위 출신 인사들이 낙하산 논란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공기업이나 조합 등은 박근혜 정부 들어 논공행상에 의한 관피아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국세청 감사원 공정위 등은 친박 인맥을 가진 이들 인사들이 공기업에 다수 진출해 있음에도 이들에 대한 조사 계획이 분명치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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