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차 베테랑 이범수, 9년 만에 악역으로 '고수' 꽃피우다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영화 ‘짝패(2006)’를 통해 악역의 진가를 보여줬던 이범수가 영화 ‘신의 한수’에서 진정한 악당으로 변신했다. 그는 지독하리만치 철저하게 극중 캐릭터를 소화해 내며 흥행 보증 수표로 인정받고 있지만 늘 목마르다고 토로한다. 이번 작품에서도 새로운 악당으로 변신하기 위해 소품 하나까지 손수 아이디어를 냈다는 이범수, 그의 말처럼 배우 인생을 고수로 살기 위해 지독한 열정으로 도전하고 있는 그의 진솔한 얘기를 만나 본다.
배우 이범수는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일요서울]과 만나 “오랜만에 자극적인 악역을 하게 돼서 흥미로웠다”며 “악역은 선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역할이다. 그래서 연기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극중 악역 ‘살수’를 맡으면서 9년 전 영화 짝패에서의 ‘필호’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을 기울였다. 시각적인 부분에서부터 시나리오 속 인물 전개까지, 심지어 자신의 연기 자세까지 바꿀 정도였다고 전했다.
촬영에 앞서 살수의 캐릭터는 짧은 머리의 조직폭력배 같은 이미지였다. 하지만 이범수는 “아주 차갑거나 창백한, 한마디로 한기가 느껴지는 캐릭터을 만들고 싶었다”면서 “먼지 하나 앉지 않은 헤어스타일과 안경착용을 통해 이지적이면서도 냉혹한 악역의 이미지를 추구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영화 ‘신의 한수’ 속 살수는 아주 냉소적이며 극중 내내 한기를 발산해 최후에 이르기까지 극의 긴장감을 이끌며 관객들을 압도하고 있다. 더욱이 이범수는 직접 안경이라는 아이템을 제안해 개봉 전부터 눈길을 끌었다.
그는 “액션에서 이질감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안경을 쓰고 싸움을 한다는 것은 비상식적인 것인데 살수는 안경을 착용함으로써 상대로부터 단 한 대도 안 맞을 만큼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또 살수를 악의 근원으로 묘사하기 위한 이범수의 노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살수는 딱 한 번만 욕설을 할 정도로 절제되어 있고 큰 소리 한번 지르지 않는 침착함을 드러낸다. 여기에 비열하고 혐오스러운 캐릭터로 완성하기 위해 약 20시간 동안 일본 야쿠자 스타일의 전신문신을 감행해 완성도를 높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범수의 철저한 캐릭터 분석력은 쉬 끝나지 않는다. 이번 영화에서 나오는 배역의 성격들은 대부분 설명을 전제로 출발하지만 살수는 별다른 설명이 없다. 그냥 나쁜 놈으로 나온다. 이에 대해 이범수는 “그간 캐릭터 이면에 들어있는 고유한 애환 같은 것을 더 파고들어 가기 위해 노력했다.심지어 대본에 없는 것도 만들어서 그 캐릭터의 인간성을 한 번 더 들여다보게 했다. 하지만 살수만큼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놈일수록 긴장감을 높이고 그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신의 한수의 시나리오는 극중 태석(정우성 분)에게는 어마어마한 이야기이지만 살수에게는 일상이었을 것”이라며 “캐릭터 사이에서도 이질감이 있었기에 더욱 긴장감 있는 상황을 표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철저한 해석력 캐릭터 극대화
캐릭터를 기필코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이범수의 집중력은 어디서 시작된 걸까. 그는 최근 드라마 트라이앵글에서 악을 응징하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런데 드라마와 영화를 찍는 시기가 겹치면서 상반된 역할을 동시에 소화해 내는 집중력을 발휘했다. 이범수는 “드라마와 영화를 동시에 찍으면서 단 한 번도 헷갈려 본적이 없다”며 “연기는 감각과 센스, 본능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현장에 도착하면 현장에 맞춰 순간적인 집중력을 발휘해 몰입한다”는 말로 대신했다.
그러면서 “내 얼굴에는 다양한 표정이 담겨 있기 때문에 그 캐릭터에 맞는 얼굴표정을 발휘하기 위해 늘 집중하는 연습을 한다”면서 “집중이 풀어지면 뜻하지 않은 얼굴이 나올 수도 있어 조심한다”고 자신의 노하우를 공개하기도 했다.
연기 경력 25년차의 베테랑이지만 이범수는 늘 새로운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연기라는 소재 자체만으로도 나를 흥분시킨다”며 “하지만 오랜 연기 생활 동안 매너리즘을 겪게 돼 늘 고민스럽다”고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범수는 “한쪽 캐릭터로 굳어지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에 나름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나의 소신이자 철학”이라고 말해 연기 인생에서의 자신의 해법을 찾은 듯 했다.
영화 ‘신의 한수’에서 주님(안성기 분)은 “세상은 고수에게는 놀이터요 하수에게는 지옥 아닌가”라는 의미심장한 대사를 관객들에게 던진다. 과연 이범수의 연기 인생은 하수일까 고수일까. 이에 대해 자신에게 연기는 늘 놀이터였다고 말한다. 그는 “연기를 노동이라고 생각하면 힘들게 되지만 늘 놀이라고 생각했기에 즐거움이었다”며 “어느 때든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더 잘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아직도 배우로서 항상 목마르다”고 말해 놀이터에서 더 뛰어 놀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범수는 “앞으로도 연기력을 더 풍성하게 표현할 수 있게 좋은 작품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며 “연기를 잘 한다 못 한다를 논하기보다 연기를 얼마큼 더 즐기면서 할 수 있을 지를 고민하고 싶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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