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하랬는데…” 지시는 금감원이, 손실은 산은이
부실대출 논란으로 보는 금융권
13년 만의 적자 1조4천억…결국 STX로 뚫린 구멍
반복된 대손충당금 쌓기…내년에도 재현될 여지 있어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금융권이 동부그룹 사태로 대손충당금 폭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지난해 STX그룹 사태도 재조명되고 있다. 그중 산업은행이 STX조선해양 등 STX그룹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부실대출 정황이 포착된 것을 금융감독원이 물고 늘어지는 모양새다. 이에 산은 측은 정책금융 특성상 금융당국의 협조요청을 따랐을 뿐이라며 억울해하는 정황을 들여다봤다.
통상적으로 은행의 부실대출이 적발되면 해당 은행은 여신시스템을 면밀히 점검하고 문제점을 고쳐나간다. 그러나 산은은 정책금융 특성상 금융당국과의 교감이 있은 후에야 기업 지원이 이뤄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금융권에서는 STX그룹 역시 그러한 경우에 해당된다고 보고 있다. 이번에는 STX조선해양이 허위 재무제표로 산은에서 대출받은 9000억 원이 논란이 됐다. 산은은 STX 사태 이후 이러한 손실분에 대한 대손충당금을 고스란히 쌓으며 적자를 내기도 했다.
앞서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의 배임 및 횡령 의혹의 중심에는 STX조선해양이 있었다. 강 전 회장은 STX조선해양을 통해 분식회계를 한 후 이를 이용해 대출을 내고 회사채를 발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분식회계로 인한 대출은 현재 채권은행인 산은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금융당국은 채권은행들이 STX그룹에 지원한 자금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정했다.
STX그룹 사태가 일어난 지난해는 예외로 두되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대출 적정성 여부를 각 은행이 책임진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금감원은 산은이 분식회계를 한 STX조선해양에 대한 여신 심사를 소홀히 했다는 점을 문제 삼겠다는 입장이다.
금감원은 산업은행이 2008년부터 최근까지 STX그룹에 해준 대출의 일부는 담보의 적정성 등 관련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봤다. 이르면 다음 달 금감원은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산은과 관련 임직원에 대한 징계를 내릴 방침이다.
뒷북 친 특별감사 회계법인 감독 부재
하지만 산은 측은 금융당국의 협조 요청에 따라 절차대로 대출했을 뿐이라며 반발 중이다. 산은 내부 관계자는 “STX와 관련한 대출 뿐 아니라 다른 대출들 역시 원칙을 지킨 것은 물론 금융당국의 협조 아래 행한 것이라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사실 산은 내부에서는 정책금융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기 위해 금융당국과의 교감 아래 STX그룹을 지원했으니 당연히 억울하다는 분위기다. 특히 금감원이 단독으로 산은을 검사할 때는 이를 문제 삼지 않다가 검찰이 STX 사태를 파고들자 다시금 특별검사를 진행한 것도 구설수에 올랐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해 6월과 8월 산은에 대한 검사를 진행하면서 STX조선해양에 내준 대출에 대해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검찰 측이 강 전 회장의 배임과 횡령에 대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분식회계와 대출 적정성 여부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입장을 선회했다. 그제서야 금감원은 지난 4월 다시금 산은에 대한 특별검사에 나서는 등 뒷북을 치고 있다.
또한 금감원의 고유 역할에는 각 회계법인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것도 빼놓지 않고 꼽혔다. 산은이 STX조선해양에 대출을 해주는 과정에서 참고하는 기업 감사보고서에는 회계법인의 의견이 들어가 있다.
이때 회계법인도 STX조선해양의 분식회계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고 산은은 이를 토대로 대출을 내준 정황이 그려진다. 하지만 금감원이 회계법인에 대한 관리·감독을 제대로 실행했다면 산은도 대출을 내주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은행권에서는 금융당국이 은행에 대해 늘상 기업지원을 요구하는 데 반해 정작 부실 문제가 터지면 등을 돌리고 은행에만 책임을 묻는다는 불만도 고조되고 있다.
산은의 사례 역시 이와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정책금융인 산은마저도 금감원에 배신을 당했다는 후문까지 나돌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한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장은 “기업에 대한 외부 회계감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은행들이 기업의 재무 상태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은 큰 문제”라며 “이에 따라 대출 심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뿐더러 은행 직원의 도덕적 해이가 겹쳐 대규모 부실대출이 터진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산은이 STX의 문제를 면밀히 모니터링하지 못하고 대출을 실행한 잘못도 있지만 금감원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라며 “동양그룹을 비롯한 부실기업들이 회사채 등을 발행하거나 회계부정을 저지를 당시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사후 처리에만 급급했던 감독당국에도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동부제철 여신만 1조 그룹 전체는 2조 원
실제로 산은은 지난해 STX그룹 부실 여파로 13년 만에 1조4000억 원의 적자를 냈다. 손실 요인의 대부분은 STX그룹 여신과 관련해 적립한 대손충당금이 차지하고 있었다. 같은 해 산은의 대손충당금은 1조7700억 원으로 전년 7800억 원보다 1조 원 가까이 늘어났다.
산은은 지주회사인 (주)STX뿐 아니라 STX조선해양, STX중공업, STX엔진 등 STX그룹 4개사에 대한 채권을 갖고 있다. 이들 계열사의 시중은행 총여신 규모는 7조 원가량이고 산은은 이 가운데 2조 원가량을 책임진다. STX그룹이 위기에 빠지자 이 여신에 대손충당금을 쌓은 산은이 적자로 돌아선 것이다.
게다가 최근 동부제철을 필두로 동부그룹이 위기로 치달으면서 산은은 다시 한 번 대손충당금 적립으로 몸살을 앓을 전망이다. 전국은행연합회에 따르면 동부제철의 금융권 총여신은 지난 5월 말 기준 2조2200억 원가량이다. 이중 1조 원가량은 주채권은행인 산은에 몰려 있다.
곧 동부제철이 자율협약에 들어가면 동부제철 여신은 ‘정상’이 아닌 ‘요주의’로 떨어지면서 대손충당금을 20%까지 쌓아야 한다. 이후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으로까지 번지면 비율은 20%가 아닌 50%로 치솟는다.
또 동부제철뿐 아니라 동부그룹 전체가 이와 같은 상황에 빠지면 대손충당금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동부그룹의 금융권 총여신은 6조 원가량으로 이중 2조 원은 산은에 집중돼 있다. 결국 산은의 적자는 지난해 STX그룹에 이어 올해 동부그룹의 상황에 따라 갈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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