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앞에 무너진 대법원 판사의 아들
2005-08-04 이수향
박씨는 졸업 후 전공을 살려 친구인 김모(37)씨와 동업으로 의류사업을 시작하면서 해외시장을 찾을 정도로 희망에 부푼 나날을 보내왔다. 박씨는 또 부친이 판사 출신으로 대법관을 역임한 뒤 지금도 재야 법조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할 정도로 집안 환경이 좋다. 또한 용의자 박씨는 부인, 자녀 둘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려왔다. 그러나 문제는 돈이었다. 남보다 좋은 주변 환경에도 불구하고 박씨는 계속된 의류사업 실패로 많은 부채에 시달리게 되면서 고리의 사채를 끌어다 썼고 결국 빚은 5천만원에 이르게 됐다. 빚독촉에 시달린 그는 결국 ` ‘납치’ 범행을 계획하게 됐다.
박씨는 의류사업 동업자인 김씨로부터 최근 소개받은 윤모(32)씨와 함께 범행을 실행에 옮겼다. 박씨는 윤씨와 지난 25일 0시께 잠실 종합운동장 인근에서 여대생 임모(20)씨를 스타렉스 승합차로 납치했다. 그런 뒤 무려 14시간 동안을 승합차에 태운 채 끌고 다니며 임씨 집에 전화를 걸어 몸값 1억원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납치극은 임씨가 기지를 발휘해 14시간만에 차안에서 탈출하면서 뒤틀어지기에 이르렀다. 임씨의 신고를 받은 경찰의 추적으로 공범 윤씨가 검거됐고, 사건 연루자를 확인한 경찰은 김포공항을 통해 제주도로 도주했던 박씨를 지난 27일 체포하면서 이 사건은 비극의 막을 내렸다.
박씨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 대상은 미리 선정하지 않았고 부유층이 거주하는 아파트 입구 골목길에서 귀가하는 여성을 노렸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경찰은 임씨가 같은 아파트에서 사는 이웃 주민이라는 점을 주목하고 저지른 계획범행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만약 계획 범행이라면 박씨가 단순히 빚을 갚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이 아닌 다른 의도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추정을 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박씨 같은 명문가 자녀가 단지 5천만원의 빚 때문에 납치극을 벌였다는 사실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