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신념 수혈 거부로 사망 시 의사 책임 없어
[일요서울|이지혜 기자] 종교적 신념으로 수혈을 받지 않겠다는 환자의 요구에 따르다가 환자를 사망케 했더라도 의사를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내려졌다.
대법원 2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26일 수술 중 수혈을 하지 않아 환자를 사망케 한 혐의(업무상과실치사)로 기소된 대학병원 외과의사 이모(57)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환자의 신념과 생명이 서로 동등하다고 평가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고, 두 가치가 양립할 수 없는 경우라면 이 중 하나를 존중한 의사의 행위는 처벌할 수 없다는 법리를 최초로 선언했다.
재판부는 "응급상황에서 생명과 직결된 치료방법을 회피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될 수 없지만 환자의 자기결정권의 행사가 생명과 대등한 가치가 있는 헌법적 가치에 기초하고 있다면 환자의 의사도 존중돼야 한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어떤 경우에 수혈을 거부하는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생명이 서로 동등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려사항을 언급했다.
구체적으로는 ▲수혈거부를 하게된 배경과 경위 및 목적 ▲수혈거부 의사가 일시적인지 아니면 상당기간 동안 지속돼 온 종교적·양심적 신념에 기초한 것인지 여부 ▲실질적으로 자살을 목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지 여부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지 여부 ▲환자의 나이 및 지적능력, 가족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환자는 이같은 결정을 하기에 앞서 수혈을 거부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과 수혈을 대체할 수 있는 의료기술의 한계 등을 충분히 설명을 들어야 하고, 의사는 이같은 설명과 함께 철회 의사를 재확인하는 등 환자가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데 아무런 하자가 없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의사가 무수혈 방식으로 수술이 가능한지 판단할 때에는 그것이 환자를 위한 최선의 진료방법인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는 엄격한 주의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2007년 12월 여호와의 증인 신도였던 이모(여·당시 62세)씨의 요구로 무수혈 방식으로 인공고관절 수술을 진행하다 혈관 파열로 수혈이 필요한 상황이 됐는데도 수혈을 하지 않아 이씨를 사망케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에 대해 1·2심은 "환자의 결정을 존중해 수혈을 하지 않은 행위는 형법상 피해자의 승낙에 의한 행위에 해당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