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세요”
2005-07-14 이수향
“인터뷰는 거절합니다”
5일 오후 전화를 통해 들려오는 이영숙씨의 목소리는 다소 상기되어 있었다. 그러나 들뜬 목소리 이면에는 허스키하면서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남편의 출소를 맞이한 그로서는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또 그동안 가슴졸이며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것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가 그는 또다시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을 터.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반갑지 않은 전화치레와 인터뷰 요청에 시달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런 그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기가 내심 껄끄러웠다.“어디세요?”라는 그의 질문에 조심스레 신분을 밝히고 직접 인터뷰 신청을 했다. 그러나 예상대로 그는 “죄송합니다. 지금은 인터뷰할 때가 아닙니다”라는 말로 정중히 거절했다. 그의 말인즉 현재 그는 ‘기자’라고 하면 본인임을 부인하거나 전화를 받지 않는 식으로 계속 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통화내내 “언론에 그 어떤 기사도 원치 않는다”는 말을 반복했다.
“서로에 대한 감정은 변함없습니다”
한편 “서로에 대한 감정은 여전한가”에 대한 질문에 이씨는 “당연한거 아닌가요?”라며 반문했다. 김씨의 오랜 수감생활로 인해 부부다운 생활을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감정만큼은 처음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는 것. 김씨를 향한 이씨의 애타는 ‘사부곡’은 유명하다. 본인 건강이 어떠냐는 질문에 이씨는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씨는 “오랜 수감생활로 인해 남편의 건강이 무척 악화된 상태”라며 남편을 염려했다.이미 알려졌다시피 이들 부부는 각각 폐암과 자궁경부암 판정을 받은 암환자. 이씨는 2000년 자궁경부암 말기판정을 받고 자궁뿐 아니라 방광의 상당부분을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았다.
말 그대로 자기 몸 하나도 제대로 추스르기 힘든 ‘중환자’인 셈. 그러나 96년 우연한 서신왕래로 김씨와 본격적인 인연이 닿게 된 이씨는 98년 ‘보스의 여자’가 되기로 결심한 후 아픈 몸을 이끌고서도 김씨의 옥바라지를 묵묵히 해왔다.특히 김씨가 청송교도소에서 복역중일때 그의 고생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단 10여분간 남편의 얼굴을 보기 위해 일주일에 한번꼴로 왕복 20시간에 가까운 거리를 병든 몸을 이끌고 면회를 다녀야 했던 세월이었다. 자신도 암말기환자로서 고통속에서 투병중인 상태였지만, 옥중에서 폐암과 싸우고 있는 남편 앞에서 정작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 무슨 말을 한들 믿어주겠습니까”
그간 눈물로 지내온 세월이기에 세상 밖으로 나온 김씨를 맞는 이씨의 심정은 남다를 터. 하지만 이씨는 현재 굳게 입을 다물고 있는 상태다. 이씨는 통화내내 “지금 저희들은 언론에 오르내리는 자체가 불편하고 부담스럽습니다. 이해해주세요”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며 양해를 구했다. 세상에 나타나도 될만하다 싶을 때가 올 때까지는 그저 조용히 묻혀 살고 싶다는 것이 이씨의 말이다.그가 언론에 나서기를 꺼리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남편의 출소에 대해 세간에서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또 마치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니는 범죄자에 대한 낙인도 이들 부부에게는 무거운 부담으로 작용하는 듯 보였다. 통화결과 이씨는 남편의 재범을 마치 당연시 여기는 듯한 일부 사람들의 시선을 깊이 의식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할말이 없다”며 한사코 입을 열지 않던 그는 “출소직후인 지금 그 어떤 말을 한들 세상 사람들이 믿겠습니까”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아무리 ‘좋은 일을 하고 살겠다’는 계획을 떠벌려봤자 소용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씨는 “지금은 아무도 우리 부부의 말을 믿지 않을 겁니다… 네… 당연히 안믿겠죠…”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씨는 세월이 지나면 열심히 바르게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을 공개할 용의도 있다고 밝혔다.
“시간이 지나면 세상 사람들도 믿어주겠죠”
“한 3년쯤 지나고서 남편이 올바른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있는 것을 눈으로 보게 되면… 그때는 사람들도 믿어주지 않을까요…”라는 것이 이씨의 말이다.김씨 역시 부인 이씨의 생각에 동의하는 눈치. 이들 부부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일체 사절한 채 앞으로의 일만 바라보고 살아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전했다. 과거의 잘못된 과오를 지우고 어렵고 불우한 형편의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모습을 행동으로 차차 보여줄 것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그 무슨 얘기도 할 필요없다는 것이다.이씨에 따르면 부부는 앞으로 할 일이 많다고 한다. 그는 “우리 부부는 앞으로 할 일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놓은 상태입니다”라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다만 세상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겠다는 확고한 결심이 남편에게는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만 간략히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