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업 지고 커피·편의점·아침식당 뜨다
2014 월드컵에 울고 웃는 현장
경기 시간 새벽 편성…서민·자영업자 울상
한국팀 성적 변수로 남아…소비심리 향상 기대
[일요서울 | 박시은 기자]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월드컵에서 치킨과 맥주, 일명 ‘치맥’의 조합은 빠질 수 없는 단짝이 됐다. 그런데 이번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월드컵과 치킨의 만남이 사실상 이별에 가깝다. 브라질과의 시차로 인해 경기 시간 대부분이 새벽과 오전시간에 잡혔기 때문이다. 그동안 월드컵 특수를 노려온 치킨업계가 울상을 짓는 반면 예상치 못했던 상품군인 커피숍과 편의점, 음식점들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월드컵에 울고 웃는 현장을 [일요서울]이 들여다봤다.
서민들의 창업 아이템으로 각광받는 치킨업계의 월드컵 특수가 예년만 못하면서 서민 자영업자들은 울고, 커피·편의점 시장을 잡고 있는 대기업들은 웃는 모양새다.
한국 국가대표의 첫 경기가 펼쳐진 지난 18일, 아침 서울시 중구의 한 식당은 아침부터 손님들로 북적였다. 출근 전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찾은 손님들이었다. 식당 종업원 A씨는 “아침에 그렇게 정신없이 사람이 몰린 건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분식집 역시 평소보다 손님이 배로 증가했다.
직장인들이 많이 몰려있는 을지로 근방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곳은 매출이 2배 가까이 뛰어올랐다. 예상치 못한 월드컵 특수에 평소보다 문을 여는 시간을 1시간씩 앞당긴 곳도 많았다.
커피숍 역시 마찬가지였다. 직장인 A씨는 “회사에서 월드컵 경기를 시청하기 위해 출근을 서둘렀다”며 “서둘러 출근한 동료들 대부분 졸음을 깨우기 위해 커피를 사서 들어오더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인 B씨는 “이번 월드컵 조별리그 경기가 새벽 4시, 5시에 시작되다보니 아예 24시간 커피숍을 이용해 밤을 새면서 커피숍 내 대형스크린으로 경기를 시청하자는 모임도 추진되고 있다”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운영하는 대기업 입장에선 기대감이 높아질 만한 모습이다.
또 다른 곳에서도 신바람이 났다. 바로 24시간 편의점이다. 아침시간대 도시락과 삼각김밥 구매가 늘어난 것이다. 편의점 업계는 향후 도시락과 삼각김밥 판매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종류를 늘리고 판매에 보다 적극적으로 뛰어든다는 분위기다.
이 같은 현상은 편의점뿐만 아니라 유통망 전반에 걸쳐서 나타났다. 이번 월드컵 기간 동안 아침식사 대용 또는 간편 간식으로 섭취할 수 있는 냉동 및 즉석 식품 매출이 지난해 대비 평균 165% 증가했다.
이밖에도 숙면을 유도하거나 피로 회복을 돕는 제품들도 월드컵 특수를 제대로 누리고 있다. 브라질 월드컵의 중계 일정으로 이른 아침에 잠자리에 드는 사람들의 숙면 유도 제품, 또는 새벽 응원 후 일상생활에서 피로를 느끼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피로 회복 제품군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백화점 내 숙면 용품 상품군 매출은 평소보다 22.8% 증가했고, 피로 회복에 도움이 되는 비타민 및 건강식품의 매출 역시 예년 대비 11.8%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4년마다 돌아오던 선물 실종
반면 치킨업계는 울상이다. 시차 때문에 배달 아르바이트생을 따로 더 고용해야 할 만큼 월드컵특수를 제대로 누려왔던 업계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이다. [일요서울] 취재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축구 경기 시청과 떼놓을 수 없는 치킨이지만 이른 아침부터 먹기에는 부담스럽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동안 치킨은 월드컵 특수의 주인공이나 다름없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스포츠경기엔 치맥’을 즐기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한국 대표팀 경기가 주로 저녁시간에 열린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는 전년대비 매출이 최대 90%까지 신장하기도 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다만 이번 브라질 월드컵과 비슷한 취약 시간대인 오전 3시30분, 4시에 경기가 열렸던 때에는 매출 최대 증가가 20%대 선에서 그친 바 있다. 따라서 오전 7시, 오전 4시, 오전 5시에 열리는 브라질 월드컵 조별예선 경기에서 기존과 같은 특수를 노리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업계에서는 “일찍 자고 새벽 경기를 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저녁 주문마저 줄 것 같다”는 걱정까지 나오고 있다.
한 호프집 사장은 “남아공 월드컵때는 하루 매출이 300만 원 이상 올랐었는데 이번 월드컵에는 마음을 접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4년마다 돌아오는 선물같던 월드컵 특수가 실종된 셈이다.
치킨 배달 e-쿠폰을 판매하는 오픈마켓에서도 시차 탓에 4년 전보다 월드컵 특수가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들은 저녁 경기가 있었던 남아공월드컵 당시에도 치킨 배달 쿠폰 구매가 세자릿수 증가율을 보였지만, 새벽경기가 있었던 날에는 증가율이 미비했던 것을 이유로 들었다.
또 아직 세월호 참사의 여파와 함께 한국 국가 대표팀의 평가전 경기 성적이 좋지 않았다는 점도 월드컵 특수가 주춤하는 이유로 지목되기도 한다. 치킨업계 뿐만 아니라 기대하던 월드컵 특수를 제대로 누리지 못해 울상인 곳이 많다는 것이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대형마트들이 준비한 응원용품과 축구용품 판매 증가폭도 20~ 30%에 그쳤다. 이마트 응원티셔츠 판매량은 7000장 정도로 남아공월드컵 당시 3만장이 팔려나갔던 것과 비교하면 극명한 차이가 난다.
한 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세월호 여파로 사회 분위기상 들떠 있기 어려운 데다 경기가 1시 이후 새벽 시간대에 열리다 보니 응원문화가 시들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한국팀의 성적이 변수로 남아 있어 유통업계와 식음료업계는 경기 결과에 따라 마케팅을 확대할 움직임이다. 지난 18일 러시아와 1-1로 비긴 한국이 이후 경기에서 선전해 16강에 진출하면 지금의 분위기와는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극복되지 않는 내수침체에 골머리를 앓는 정부도 이를 내심 기대하는 눈치다.
한국금융연구원 관계자는 “한국이 16강에 진출하며 선전하는 결과를 보이면 추경 정도의 경제효과가 기대된다”며 “내수침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소비심리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경기 결과가 좋다면 소비심리를 끌어올리는 효과로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16강에 진출하면 요식업 중심으로 긍정적인 영향이 본격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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