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입장바꿔’ 생각할까?

2005-04-04      
지난 24일 오후 서울대 관악캠퍼스 주차장에서 김영란 대법관이 탄 검은색 에쿠스 승용차가 갑자기 후진하면서 뒤편에 주차된 아토스 차량을 들이받고 5m가량 더 돌진하다 도로 끝 인도 턱에 부딪혀 멈춰선 사고가 발생했다.이 사고로 차에서 내리려던 김 대법관은 차량이 인도 턱과 부딪히는 충격으로 차 밖으로 튕겨 나가 쓰러져 머리와 어깨, 무릎 등에 타박상을 입었지만 큰 부상을 당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아직 정확한 사고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차를 운전했던 운전기사가 “승용차를 세운 뒤 뒷문을 여는 순간 차가 뒤로 밀리다 순간적으로 급발진했다. 놀라서 차 문을 열고 브레이크를 다시 잡았는데도, 차가 왔다갔다했다” 는 주장과 현장에 짙은 타이어 자국이 남은 것으로 미뤄 급발진의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번 사고의 원인과 관계없이 급발진에 대한 책임소재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급발진 사고의 당사자가 바로 ‘대법관’ 이기 때문이다.급발진 사고가 ‘운전자의 운전 미숙으로 발생하느냐’ 아니면 ‘차량결함으로 발생하느냐’ 를 두고 제조사와 피해 당사자들이 공방을 벌이던 중 대법원이 “자동차 급발진 사고는 제조사 책임이 아니다” 라는 판결을 내린 전력이 있기 때문에 대법원 ‘수장’ 의 사고에 더욱 귀추가 주목되는 것이다.그러나 대법원측은 아직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제조사 손을 들어주다 대법관의 사고로 한순간에 입장을 바꾸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아직 사고 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답변하기 어렵다” 면서 “이번 사고가 지난해 내려졌던 판례를 뒤집지는 못할 것이다. 혹, 판례를 뒤집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제조공정에 문제를 발견했을 경우에 한할 것” 이라고 말했다.한편, 차량 제조사인 현대자동차측은 고위층의 사고에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현대차측 관계자는 “후진 상태에서 급발진으로 인해 사고가 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안다. 당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운전자 과실인 것 같다” 고 밝혔다.이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현대차측은 신경이 쓰이는 눈치다. 대법관의 차량 사고로 인해 한동안 잠잠하던 급발진 논쟁이 다시 불거지고 대규모 소송으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