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웃는 경제징크스] 포세이돈의 저주

신기루로 사라져 가는 해양 플랜트 사업

2014-06-09     강휘호 기자

연이은 어닝쇼크 … 향후 전망도 장담 못해
확실한 기술력과 안전, 전문 인력 보강 시급

[일요서울 | 강휘호 기자] 재계에도 징크스가 존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업이 중요한 공사를 결정할 때, 논리와 계산 이외의 요소는 조금도 반영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즉, 처음부터 끝까지 세밀하고 철저하게 분석한 뒤 과학적인 근거에만 입각해 일을 진행하지 않겠냐는 설명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도 때론 미신 아닌 미신에 시달린다. 일부 재계 관계자들은 “가끔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불길한 징조들이 더욱 섬뜩하게 다가온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한다. 거칠 것 없어 보이는 이들에게 도대체 어떤 징크스가 따라 다닐까. [일요서울]이 알아봤다.

국내 조선업이 해양플랜트의 늪에 빠져 있는 가운데, 정부가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산업부 인력사업 전담기관인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지난달 29일 영국에서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와 함께 영국 뉴캐슬대학, 스트라스클라이드대학과 고급 해양플랜트 설계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협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산업부는 파견 학생들에게 수업료 전액과 체재비 등 제반 비용을 지원하고, 학교측은 2개월 이상 현지 산업체 인턴십, 연 1회 이상의 국제학회 참석, 현지 산학협력 프로그램 참여 등을 지원한다.

우리나라 해양플랜트 산업은 건조나 상세·생산설계 분야에서 강점을 보이는 것과 달리 부가가치가 높은 기본설계와 FEED(Front&End; Engineering&Design) 등의 분야에서는 경쟁력이 취약한 상황이다.

이러한 고급 설계역량 부족으로 부가가치 절반 이상이 해외로 빠져 나간다는 분석이 있으며 기본설계·FEED 분야는 인력을 양성할 국내 강사진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정부는 이를 타개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우리나라 해양플랜트 산업의 상황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과거 한국 조선업의 미래라고 불리던 해양플랜트 사업은 저주로 돌아오고 있다.

먼저 국내 최대 조선업체 중 가장 수익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던 삼성중공업이 어닝 쇼크를 기록했다. 이를 두고 업계는 삼성중공업이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심각한 손실을 입은 것으로 보고 있다. 더욱이 해양플랜트 부실 여파는 한동안 계속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앞서 삼성은 2010년 이후 조선업 경기가 하락되자 기존 먹거리 상선에서 해양플랜트로 눈을 돌렸다. 이윽고 회사의 전력을 모두 해양플랜트에 쏟아 부었지만, 그 결과 4년이 지난 지금, 적자의 쓴맛만 보고 있는 것이다.

삼성중공업의 지난 1분기 매출액을 살펴보면 전년대비 11.7% 감소한 3조4311억 원을 기록했다. 대규모 영업손실도 입었다. 삼성중공업의 지난 1분기 영업손실은 전년대비 적자전환한 3625억 원을 기록했다. 설립 이래 가장 큰 규모의 적자 규모다.

아울러 삼성중공업은 2012년 수주한 호주의 익시스 해양가스처리설비(CPF)와 2013년 수주한 나이지리아 에지나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저장하역설비(FPSO) 등 2건 해양플랜트 공사를 손실 원인으로 지목했다. 2건의 해양플랜트 공사에서 7600억 원의 손실이 예상됨에 따라 약 5000억원의 공사손실충당금을 실적에 반영한 결과다.

익시스 해양가스처리설비는 삼성중공업이 처음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다. 상세설계 등 후속공정에서 사양 변경으로 작업 물량과 비용이 증가했다. 일종의 수업료를 치른 셈이었다.

에지나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저장하역설비는 초대형 해앙플랜트 프로젝트다. 규모와 금액면에서도 FPSO 사상 최대였다. 하지만 나이지리아 현지 생산 스케줄 등에 차질이 생기며 비용 증가가 예상되고 있다. 현지에서 기자재 생산 거점을 만든 것이 발목을 잡았다.

삼성도, 현대도 못 막았다

또 다른 국내 메이저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도 마찬가지다. 해양 플랜트 쇼크가 조선업계에 몰아친 후폭풍을 현대중공업 역시 감당하지 못했다. 1분기 시장 예상치를 밑도는 어닝쇼크를 기록한 것이 증거다.

현대중공업은 경험이 부족한 해양플랜트 분야에서 설계 지연과 공정 차질이 반복되며 실적이 악화됐다.
1889억 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로 돌아선 것이다. 지난해 4분기 871억 원 손실에 이어 2분기 연속 적자다. 현대중공업은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발생할 수 있는 대규모 손실을 모두 반영하지 않은 상태여서 앞으로도 실적 호전이 쉽지 않을 가능성도 보인다.

더욱이 현대중공업은 2010년 2월 노르웨이 Eni노르게AS로부터 수주한 원통형 FPSO(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설비)의 인도일정이 또 연기됐다. 조선업계가 해양플랜트에 발목이 잡히면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쯤 되자 해양플랜트 사업에서 괜찮은 실적을 거두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잠재적인 위협 요인이 숨어있다는 우려인데, 인펙스로부터 수주한 익시스 FPSO가 삼성중공업이 같은 발주처로 부터 프로젝트를 수주해 막대한 손해를 입은 전례가 있기 때문에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부 전문가들은 바다 속 석유를 끌어 올리려 했던 해양플랜트 사업이 모두 신기루로 사라질 위기라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조선업체들이 수주 실적을 올리기 위해 해양플랜트 사업을 무모하게 추진했던 탓이라는 설명이다.

확실한 기술력과 안전 문제, 전문 인력 보강 등의 준비조차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다. 한 업계관계자는 “조선업계 침체가 왔던 시기에 상선에서 해양플랜트 사업으로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한 것은 좋은 시도라고 본다”면서도 “다만 너무 의욕만 앞섰던 것이 아닌가 싶다.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의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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