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은 왜 돌연 스러지나
2005-03-04 유병철
국내사례
여자 스타의 자살 사례는 많지 않다. 1926년 대한해협에 투신한 가수 윤심덕이 최초. ‘사의 찬미’로 유명한 그녀는 애인 김우진과 함께 이루지 못한 사랑을 슬퍼하며 자신의 몸을 바다에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비극의 여주인공이 됐다.남자 스타로는 1996년 1월 두명의 인기 가수가 자살을 택했다. 1일 ‘또다른 사랑’이란 노래로 10대 소녀 팬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가수 서지원이 유서를 남긴 채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
서지원은 당시 새 앨범에 대한 부담감 등이 작용해 자살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부터 5일 후인 6일 포크계의 영원한 거장 김광석이 자택에서 목을 매 숨졌다. 그의 자살시기는 불과 몇달전 라이브 콘서트 1,000회 공연을 성공리에 마치는 등 가수로서 정상의 인기를 누리고 있을 때여서 팬들의 충격은 더욱 컸다. ‘일어나’ ‘서른 즈음에’ 등 서정적 멜로디와 의식의 가사가 빚어내는 음의 마술사의 죽음에 많은 사람들이 오열했다.이에 앞선 1995년 11월에는 힙합 듀오 ‘듀스’의 김성재가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 김성재의 경우 한때 ‘의문의 죽음’이라며 타살 공방이 벌어졌으나 결국 자살로 사건이 마무리됐다.
해외사례
자살을 선택한 외국 스타의 대표적 케이스는 록그룹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을 들 수 있다. 코베인은 1994년 4월 5일 엄청난 성공에 따른 세간의 소문과 이로 인한 부담감 등으로 권총 자살했다. 워낙 내성적인 성격에다 극심한 약물증세까지 겹쳐 스스로 권총을 자신의 입에 넣었다. 그의 죽음은 그러나 90년대 이후 얼터너티브 록과 모던 록의 흐름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죽음은 역시 로커들의 몫(?)이었다. 60년대 사이키델릭 록의 선두그룹 도어즈의 짐 모리슨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데 이어 롤링스톤스의 창설자 브라이언 존슨이 수영장에서 익사한 채로 발견됐다.독일의 메탈 그룹 헬로윈의 드러머 잉고 슈비첸베르크 역시 알코올 중독에 따른 지병의 악화로 자살했다. 가장 미스터리한 자살은 위대한 블루스 기타리스트 로이 뷰캐넌인데, 술에 만취됐다는 이유로 그가 경찰 유치장에서 목을 매야 했는지 아직도 그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다.
1996년 5월 2일 일본 록그룹 X재팬의 멤버 히데가 목을 매 자살하기도 했다.이밖에 60년대 영국 R&B의 대부라 평가받는 그레이엄 본드는 달리는 열차를 향해 몸을 던졌고, 도니 해트웨이는 투숙 호텔의 꼭대기에서 투신자살했다. 고아였고, 가난했으며, 양아버지에게 강간당한 불우한 시절을 보냈으면서도 세계적으로 사랑 받고 갈채 받은 세기의 연인, 슈퍼스타 마릴린 먼로는 1962년 자살과 타살의 추측이 난무한 가운데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싸늘한 시체가 됐다.스크린에서 인종차별의 벽을 넘으며 흑인 최초로 아카데미영화제 여우주연상 후보(1955년)에 오르며 완벽한 흑인 여성의 이상형으로 떠오른 도로시 댄드리지는 먼로의 뒤를 이어 1965년 할리우드의 한 호텔에서 자살했다.
영화 ‘모로코’ 주연 등으로 1930~1940년대 스크린의 여왕으로 군림했던 마를렌 디트리히와 1930년대 중국의 그레타 가르보로 명성을 얻은 롼링위(玩玲玉)는 수면제로, 1986년 일본 열도를 충격으로 휩싸이게 한 10대 아이돌 스타 오카다 유키코는 건물옥상에서 투신함으로써 각각 죽음을 선택했다.가장 최근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해외 인기 스타로는 2003년 4월 1일 홍콩 배우 장궈룽이 만다린오리엔털호텔에서 투신자살해 충격을 던져줬다. 그의 나이 마흔 여섯. 그는 이날 홍콩 중심가의 오리엔탈 호텔 24층에서 한 장의 메모지를 남긴 채 투신했다. 지난해 주연한 영화 ‘이도공간(異度空間)’에서 그가 맡은 빌딩 옥상에서 자살하는 정신과의사처럼.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자살원인을 동성애에 대한 것이라는 소문만 있을 뿐 지금까지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