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타항공 ①-한국을 대표하는 핵심 기업의 창업스토리
항공 여행, 안전과 가격을 동시에 잡다
한국경제가 짧은 시간 안에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기업과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이들 기업가들은 독특한 경영이론과 기법들을 창안했으며 한국의 기업풍토에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과 경영이론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삼성을 창업한 이병철은 인재제일주의를, 현대의 정주영은 생산의 혁신을, LG의 구인회는 인화모델을 각각 창안해 냈다. 현재 대한민국이 경제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들 1세대 창업자들의 도전과 혁신적인 창업정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일요서울]은 한국 경제의 한 획을 긋고 있는 기업들의 창업스토리를 출판물 또는 기존 자료를 통해 다시금 재구성해 본다. 이번주 창업스토리의 주인공은 대한민국 항공 시장에 새로운 판을 만들어낸 이스타항공(대표이사 김정식)다.
이스타항공은 창립자인 이상직 전 대표가 안전한 비행과 부담 없는 가격이 동시에 이뤄져 항공 여행의 대중화를 꿈꾸며 탄생했다.
언제부터인가 기존 항공사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비행기 여행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저비용 항공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첫 주자는 한성항공이었다. 한성항공은 프랑스 항공기를 들여와 2005년 8월, 청주에서 제주까지 날아가는 노선에 취항했다.
당시 한성항공이 들여온 비행기는 ATR 기종의 프로펠러기였다. 그런데 이 기종은 기체가 작고 소음이 심했다. 무엇보다 탑승감이 좋지 않은 기종에 속해 고객들에게 저비용 항공사만의 매력과 서비스를 충분히 제공하기엔 아쉬움이 있었다.
비행기 프로펠러기나 제트기 모두 안전에는 문제가 없지만 프로펠러기는 기체가 작고 흔들림이 많아 불편한 느낌을 줄 수 있다. 때문에 한성항공을 이용한 고객들은 저비용 항공사의 비행기로는 불편과 불안을 감수하며 여행해야 한다는 편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한성항공은 대중에게서 조금씩 멀어져 갔고, 2008년 10월 운항을 중단했다.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가 목표
이스타항공은 아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이용하는 항공사를 설립할 꿈을 꾸기 시작했다. 물론 안전한 비행은 그 어떤 가치보다 앞에 뒀다. 한성항공 외에도 영남에어, 제주항공 등의 저비용 항공사가 생겨나자 더욱 이스타항공만의 계획을 꼼꼼히 점검했다. 미국의 사우스웨스트항공, 유럽의 라이언에어, 이지젯 같은 성공한 저비용 항공사가 이스타항공의 모델이었다.
그 결과 이스타항공은 가장 성공한 저비용 항공사들이 가장 안전한 최신형 기종인 ‘보잉737NG’로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국내 언론에는 ‘저비용(low cost)’ 개념이 도입돼 있지 않았다. 언론이 저비용이 아닌 ‘저가(low price)’라는 표현으로 저비용 항공사를 소개하면서 졸지에 ‘저가 항공사(값싼 비행기 회사)’로 불리게 됐고, 소비자들에게 저비용 항공사의 이미지가 싸구려 항공사라는 잘못된 이미지로 전달되곤 했다.
또 저비용 항공사를 저가 항공사로 표기하게 되면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 같은 기존의 전통 항공사는 ‘고가 항공사’, ‘값비싼 항공료를 물게 하는 항공사’가 돼 버리는 문제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인천에서 도쿄 나리타공항까지 운항할 때 항공료는 일반석이 왕복 40만 원에서 80만 원 정도다. 반면 이스타항공은 19만9000원부터 52만 원이라는 파격적인 요금을 제시한다. 기존 고가 항공사에 비해 30% 이상 저렴하다. 하지만 이 같은 짜릿한 가격으로 여행자에게 혜택을 줄 수 있기까지는 끈질긴 노력이 있었다.
어느 금요일 늦은 오후, 한창 업무를 정리하는 사무실에 한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이스타항공 비상탈출 시현을 12월 28일에 하겠습니다.”
“그게 마지막 테스트입니까?”
“네.”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비상탈출 시현은 비행기가 불시착했을 때 승무원이 승객을 신속하고 안전하게 대피시킬 수 있는지를 시현해 보이는 시험이다. 항공사를 운영하려면 누구나 국토해양부로부터 항공운항증명(AOC)을 받아야 하는데 비상탈출 시현은 인가를 위한 마지막 관문인 셈이다.
이스타항공의 직원 모두는 석 달 동안 항공운항증명을 받기 위해 숱한 노력을 다했다. 철저한 예비 심사를 통과하고, 항공기가 실제로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도록 기내를 정비했다.
비행기 한 대를 띄우기 위해
감독관의 현장 검사까지 마치는 동안 날고 싶다는 이스타항공의 꿈은 더욱 간절해졌다.
액션 영화에서는 비행기에 불이 나거나 폭발 위험에 닥치면 주인공이 낙하산을 입고 멋지게 뛰어내린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현실성이 없다. 민간 항공기는 더욱 그렇다. 승객의 숫자만큼 낙하산을 구비할 공간도 없거니와 국제선 순항고도의 대기 온도는 영하 54~56℃ 정도다. 굉장히 추운데다가 기압마저 매우 낮기 때문에 뛰어내렸다간 저산소증으로 숨이 막히거나 저체온증으로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상황이 이런 만큼 비상 상황에서 승객들에게 낙하산만 쥐어 주고 뛰어내리라고 하는 항공사는 있을 수가 없다.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기장은 무조건 가까운 공항을 찾아 날아간다. 하지만 공항이 너무 멀거나 이동이 불가능할 땐 바다나 맨땅에 불시착해야한다. 비행 중 위험이 발생하면 기내에 장착돼 있는 기압감지계가 작동하고 곧 승객의 머리 위로 산소마스크가 내려온다. 승객들은 마스크를 착용한 후 비행기가 물 위에 떨어질 것에 대비해 시트 밑에 있는 구명조끼를 입는다. 그러고 나서 진행하는 것이 바로 비상탈출이다. 비상탈출은 굉장히 순식간에 이뤄진다.
대형 항공사들은 회사 소유의 연습장이 있지만 이제 막 첫발을 내딛는 후발 항공사가 연습장까지 보유한다는 건 꿈꾸기 힘든 일이었다. 자존심을 던지고 대형 항공사에 부탁도 해 보고, 할 수 있는 일은 갖은 방법을 동원해봤지만 도와주겠다는 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2007년 10월, 이스타항공을 처음 설립할 때부터 저비용 항공사(LCC:Low Cost Carrier)의 미래에 희망을 갖고 격려해주는 사람도 드물었다. 거의 매 순간 반대 의견과 맞닥뜨려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저비용 항공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 결국 비행기를 이용하는 국민들과 이익을 공유하는 일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시련을 견뎌냈다. 어둠을 뚫고 찬란하게 떠오를 태양을 맞기 위해 여명 속을 항해하는 중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긍정적인 생각 끝에 이스타항공은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냈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박시은 기자>
<출처=촌놈 하늘을 날다│
지은이 이상직│고즈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