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웃는 경제징크스] 이슈블랙홀, 월드컵

세월호로 내수 경기 침몰… “소비심리 살려내자”

2014-06-02     강휘호 기자

재계 각 업계 마케팅 본격화, 특수 살리기 돌입
거리 응원에 파묻히는 현안들…국정감사까지 영향?

[일요서울 | 강휘호 기자] 재계에도 징크스가 존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업이 중요한 공사를 결정할 때, 논리와 계산 이외의 요소는 조금도 반영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즉, 처음부터 끝까지 세밀하고 철저하게 분석한 뒤 과학적인 근거에만 입각해 일을 진행하지 않겠냐는 설명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도 때론 미신 아닌 미신에 시달린다. 일부 재계 관계자들은 “가끔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불길한 징조들이 더욱 섬뜩하게 다가온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한다. 거칠 것 없어 보이는 이들에게 도대체 어떤 징크스가 따라 다닐까. [일요서울]이 알아봤다.

지금까지 많은 스포츠 이벤트들은 ‘이슈 블랙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역사적으로 봐도 스포츠는 정·재계 이슈를 막론하고 닥치는 대로 집어 삼켰다. 프로축구, 프로씨름의 태동기가 그랬고 88올림픽과 2002월드컵 역시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여전히 2002년을 떠올리면 ‘월드컵’ 이외의 다른 일들을 쉽게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길거리 응원문화가 정착된 2002년 이후 우리 국민이 가장 열광하는 국제 스포츠 이벤트가 월드컵이 됐다. 우리나라가 대회에서 선전할 땐 모든 현안을 한 번에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다.

그렇다면 2014 브라질 월드컵도 ‘이슈블랙홀’이 될 수 있을까. 올해 월드컵을 앞두고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온 국민을 비탄에 빠지게 만든 세월호참사, 어느 때보다 치열할 것으로 예측되는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등은 월드컵의 인기에도 조금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난 28일 벌어진 우리나라와 튀니지의 평가전에서의 모습은 2014 브라질 월드컵 시즌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이날 우리나라 응원단은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실종자의 조속한 발견을 바라는 마음에서 전반 16분간 침묵을 한 뒤 ‘기억하고 극복하자’는 의미를 담아 응원을 준비했다.

애도는 하되 마냥 슬픔과 혼란 속에 빠질 수는 없는 일, 희망을 갖고 다시 움직이자는 의미가 엿보였다. 조금씩 국민들의 시선이 월드컵을 향해 몰리고 있다.

이를 반증하듯 경제권에서도 차츰 월드컵과 관련된 마케팅이 등장하고 있고 각 언론사 기사들의 상위를 월드컵 이슈들이 선점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기준 한 포털사이트의 많이 본 뉴스 순위를 살펴보면 1위 헤드라인이 ‘박주호, 브라질 WC 출전한다… ‘부상’김진수 대체 발탁’, 2위가 ‘[풋볼리즘]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할 만21살의 날아가 버린 꿈’, 3위가 ‘[박펠레의 브라질입니다③] 홍명보팀엔 3가지가 없었다’ 순서였다.

애도와 축제 사이

재계도 슬슬 기지개를 켜는 것은 마찬가지다. 참사 이후 빙하기를 걷던 내수시장이 더위와 함께 바닥을 찍고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애도 분위기는 여전하지만 소비심리 위축이 장기화를 슬슬 벗어나면서 소비심리가 최악의 국면을 지났다는 분석도 나오기 시작했다.

각종 모임 및 행사가 조금씩 모습을 나타내기도 하고 기업들의 외부활동도 본격화 되고 있다. 아울러 극심한 내수 부진에 허덕이던 각종 업계도 다음 달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조심스레 마케팅에 시동을 걸었다.
월드컵 특수를 향한 움직임이다. 대형마트 업계는 다사다난한 4월을 보내면서 매출이 -6%에서 -2%대까지 역신장을 기록했지만 5월에는 2%와 6% 사이를 오가며 반전했다. 5월의 카드 승인 건수도 전년 동기 대비에는 못 미치지만 전 달보다는 조금씩 상향하는 추세다.

이에 따라 유통업계는 월드컵 마케팅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일례로 롯데백화점 부산 4개점은 ‘Again 2002 사랑과 감사 이벤트’를 진행한다. 맞수 신세계는 백화점과 이마트 등에서 고객 눈길을 끌기 위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아울러 누구보다 월드컵을 기다리는 업계를 꼽자면 맥주업계를 빼놓을 수 없다. 월드컵은 맥주업계에서 가장 큰 이벤트로 꼽힌다. 월드컵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맥주 판매량이 큰 폭으로 상승하는 것은 이제 기정사실이 돼가고 있다.

실제 오비맥주는 2010년 남아공월드컵 당시 전년 동기 대비 매출 신장률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6월 평균 매출 신장률 2.09%를 크게 뛰어넘는 수치를 보였다. 당시 신장률은 자그마치 6.67%를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들도 이러한 현상에 대해 대부분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홍보대행사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같을 것이다. 때문에 지금까지 유통업계들은 홍보를 대대적으로 하지 않는 방법으로 슬픔에 동참하는 모습이었다”면서 “다만 월드컵 시즌이 돌아오면 세계적 축제인 만큼 다양한 마케팅들이 나오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말했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도 “일개 사기업에서 세월호 참사 또는 지방선거와 같은 나라의 일을 이렇다 저렇다 논할 수는 없다고 본다. 다만 여러 가지 이유로 매출이 대폭 하락한 것을 만회하기 위해 월드컵이 하나의 계기가 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향후 호재로 다가올 만한 이슈가 없기 때문에 재계 대부분의 기업이 월드컵 마케팅을 펼치기 시작하지 않겠냐”고 예측했다.

한편 2002년 당시 지방 선거는 월드컵 열기에 밀려 역대 최저 투표율을 기록한 바 있다. 2012년 7〜8월 런던 올림픽이 열렸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새누리당의 공천헌금 파문이 묻혔고, 대선 경선 레이스를 벌이던 기성 정당의 주자들이 관심권 밖으로 밀려났다. 올해도 여야 가운데 누가 이기든 선거 결과에 따른 후폭풍은 어느 정도 잠잠해질 가능성이 있다.

재계 잔혹사라고 불릴 정도로 기업인들의 기피 대상이 된 국정감사도 월드컵과 시기가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월드컵 뒤에서 국정감사의 칼날을 피할 수 있을지도 관심거리다.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