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심 퍼레이드 프로야구, 구단도 팬들도 부글부글

경기의 일부라지만 “실수가 잦으면…” 심판진도 울상

2014-05-26     김종현 기자

오심에 발목 잡힌 LG, 감독사퇴 파문으로 이어져…구단피해 급증
MLB 비디오 판독, 번복판정률 45%에 달해…판정 해결사 급부상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지난 시즌 오심으로 얼룩졌던 한국프로야구가 올해도 오심 논란이 들끓으며 홍역을 앓고 있다. 더욱이 한국야구위원회(KBO)의 대책에도 불구하고 심판 오심은 계속 반복되고 있다. 오심을 저지른 심판진은 비난으로 끝이지만 결국 피해는 구단의 몫으로 남는다. 더욱이 팬심까지 요동치면서 674만 관중 프로야구의 원칙이 실종된 무법천지로 변하고 있다. 원칙이 무시돼 벌어진 세월호 참사의 기막힌 일들이 프로야구에서도 빈번히 벌어지고 있다. 그 실태를 검점해본다.

이미 프로야구는 지난 시즌 오심논란이 도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내릴 정도로 심각한 수준을 기록했다. 이를 반증하듯 프로야구 관중수도 2012년 753만여 명을 기록한 후 다시 600만대로 내려앉았다.

오심논란은 올 시즌도 여전하다. 특히 시즌 초 가장 큰 피해를 본 구단은 LG트윈스였다. 지난 정규 시즌 2위를 차지하며 11년 만에 가을야구에 진출하는 등 우승 전력을 자랑했지만 이번 시즌에는 위기 상황을 이겨내지 못하며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더욱이 오심까지 LG의 발목을 잡았다.

오심의 정점은 지난달 1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NC 다이노스 전이었다. 당시 LG는 부산에서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를 치른 후 홈구장에서 NC와 맞붙었다. LG는 3-8로 끌려가다 7회말 11-11 동점을 만들었고 승리를 위해 전력을 모두 쏟아부었다. 특히 7회말 동점을 만든 후 1사 1·3루의 역전 찬스까지 잡았다. 하지만 정성훈이 2루 땅볼을 때렸고 병살타가 됐다. 임채섭 심판은 1루에서 타자주자 정성훈의 아웃을 선언했다. 하지만 느린 화면으로 확인해보니 명백한 세이프였다.

결국 LG는 이날 경기에서 11-12로 패하면서 무너졌다. 이에 김기태 감독이 자진 사퇴하면서 LG는 한순간에 사령탑도 선수들도 요동치는 초유의 사태를 경험해야 했다.

뿔난 김응룡 감독 선수단 철수

오심의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지난 20일부터 열린 한화 이글스와 넥센 히어로즈와의 주중 3연전에서 오심이 속출했다. 마지막 경기에서 한화가 16-3의 대승을 거두면서 2승 1패의 위닝시리즈를 가져왔지만 3연전 내내 한화는 오심의 희생양이 됐다.

오심은 3연전의 첫 경기부터 시작됐다. 지난 20일 4회말 1사 1·3루에서 넥센 박헌도의 좌익수 뜬공 때 3루주자 김민성이 홈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한화의 좌익수 장운호로부터 시작된 송구는 중계플레이가 정확하게 이뤄졌고 3루수 송광민의 홈 송구는 정확하게 정범모에게 향했다. 이에 정범모는 여유있게 김민성의 오른쪽 정강이 부근을 태그했고 김민성은 홈 플레이조차 밟지 못했다. 하지만 이영재 심판은 세이프로 선언하면서 넥센의 득점을 인정했다. 결국 흐름을 내준 한화는 2점차 패배를 당했다.

한화의 불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1일 경기에서도 석연찮은 판정과 오심이 야구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김응룡 한화 감독은 넥센과의 2차전에서 4-2로 앞선 6회말 2사 2루 수비 과정에서 대타 윤석민의 타구가 페어 판정을 받자 거칠게 항의했다. 이에 김 감독은 오후 8시 53분 선수단 철수 명령을 내리면서 올 시즌 1호이자 개인 통산 5번째 감독 퇴장을 당했다.

이날 판정은 중계 카메라의 느린 화면으로도 페어인지 파울인지 확인하기 애매한 부분이었다. 베테랑인 김 감독이 이를 모를리 없지만 전날 오심 피해를 당했던 터라 한 점차로 추격당하는 적시타로 이어지자 격하게 분노한 것으로 보인다. 김 감독이 퇴장하면서 경기는 약 11분간 중단되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 프로야구 최고령 감독인 김 감독이 퇴장을 불사하면서까지 선수단을 철수시키는 강수를 뒀음에도 불구하고 한화는 다음날인 22일에도 오심 논란이 일면서 구단뿐만 아니라 야구팬들의 항의도 빗발쳤다. 22일 경기에서는 6회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케일럽 클레이가 김민성에게 유격수 방면의 땅볼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유격수 한상훈의 송구는 다소 높게 향했고 1루수 김태균은 껑충 뛰어 타구를 잡아낸 이후 다시 1루 베이스를 밟았다. 이후 김민성이 1루 베이스를 더 늦은 타이밍에 밟았으나 김준희 1루심은 이를 세이프로 선언했다.

판정 직후 클레이가 주심을 향해 손을 벌리며 판정에 대해 아쉬움을 표시할 정도로 명백한 오심이었다. 공식 결과는 한상훈의 실책이었으나 실제는 오심의 결과였다.

더욱이 21일 선수단 퇴장을 부른 3루 윤석민 페어판정을 내린 당사자가 김준희 심판이었다는 점에서 한화로서는 웃어넘기기 힘든 상황이었다.

오심에 화난 팬 난입 심판 폭행사건

연일 터져나오는 오심에 팬들도 화가 나있는 상태다. 앞서 지난달 30일 광주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 SK와이번스 경기 중 박근영 심판 폭행 사건이 벌어져 세간을 놀라게 했다.

사건은 KIA가 6:3으로 앞서가고 있던 7회초에 벌어졌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남자 취객이 1루 측 서프라이즈 존을 뛰어넘어 경기장 안으로 들어온 뒤 박근영 심판을 위에서 공격해 그의 목에 헤드락을 걸고 넘어뜨렸다.

이는 박근영 심판의 6회초 판정 때문으로 알려졌다. 6회초 1사 만루에서 KIA 안치홍이 상대팀 조동화의 타구를 잡아 유격수 김선빈에게 토스하면서 병살플레이를 시도했다. 하지만 심판은 1루에서 세이프를 선언했다. 그러나 중계 화면에는 아웃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날 폭행을 당한 박근영 심판은 지난해 6월과 9월에도 오심을 범해 2군행 징계를 받은 바 있다.
이처럼 시즌 초반부터 오심이 속출하면서 그라운드에는 불신의 분위기도 팽배해지고 있다. 잘못된 판정으로 선수와 팀은 1차적인 피해를 입고 있고 불신이라는 2차 피해도 발생하고 있다.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는 심판을 믿지 못하고 오심을 한 심판은 자신감을 잃고 위축되고 있다. 여기에 황당한 오심을 지켜본 야구 팬들이 등을 돌리면서 프로야구의 인기가 한순간에 사그라질 수 있는 위기에 봉착했다.

“게임 묘미가 떨어져”
비디오 판독 도입 반대 많아

오심으로 인해 심판진들 역시 위기를 맞고 있다. 흔히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말이 있지만 오심이 어느 범위까지 경기의 일부로 용인될 수 있을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다수의 야구 관계자들은 “야구라는 게임 자체의 묘미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비디오 판독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해설위원은 “심판을 사람으로 본다면 그 어떤 오심도 경기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하고 기계의 힘을 빌려서라도 정확한 판정이 먼저라면 그쪽으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일”이라며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일은 아니다. 메이저리그(MLB)가 찾은 해답은 비디오 판독이었고 일본 프로야구는 아직 도입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 구단 관계자는 “심판마다 조금씩 다른 스트라이크 존은 심판 고유의 권한이 맞다. 눈 한 번 깜박이는 동안 세이프와 아웃이 결정되는 누상에서의 오심도 비난은 할 수 없는 부분”이라면서도 “심판들이 홈에서는 좀 더 집중해 판정하고 오심을 하면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해설위원은 “아무리 베테랑 심판이라도 실수는 한다”며 “룰을 잘못 적용한 게 아니라면 오심 자체에 대한 징계는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현재 심판위원이 경기 중 판정과 관련해 제재를 받는 경우는 단 두 가지다. 야구규칙 적용을 잘못했을 때(경고, 제재금 30만 원 이하)와 심한 오심이 거듭될 때(경고, 제재금 50만 원 이하, 출장정비 10게임 이하)다.
실제 지난 20일 오심을 한 이영재 심판위원에게 엄중경고와 제재금 50만 원이 부과됐다.

야구관계자들은 심판의 자존심을 다시 세우는 방법은 오심을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꼽으면서 “심판들 스스로 부담감과 압박감에서 벗어나는 게 먼저”라고 지적했다.

한 해설위원은 “심판들이 해당 팀에 원치 않는 피해를 입혔다는 것 때문에 비난을 받는 것”이라며 “자기편은 없고 온 사방에서 손가락질을 하니 점점 위축되고 더 안 좋은 상황이 나오는 것 같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심판들 스스로 부담·압박감 벗어나야

그러나 심판들도 “우리도 힘들다”고 푸념만 하고 있을 때는 아니다. 실수도 반복되면 잘못이 되는 것처럼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할 때라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KBO는 오심논란이 끊이질 않자 이르면 후반기부터 비디오 판독을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양해영 KBO 사무총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오심이 빈발하면서 팬들의 불신을 사는 현실에 이르렀다”며 “6월초 열리는 단장회의와 이사회에서 비디오 판독 확대 방안을 논의하고 야구계의 공감대가 형성되면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실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 메이저리그처럼 세밀하게 비디오 판독을 할 수는 없지만 구단과 팬들의 불만이 워낙 큰 만큼 방송사의 도움을 얻는 등 가능한 범위 내에서 이르면 후반기부터 비디오 판독을 확대하겠다”고 전했다.
이에 KBO는 곧 관계자를 미국 MLB 사무국에 파견해 비디오 판독 운영 실태를 파악할 계획이다.

올 시즌부터 비디오 판독 제도인 ‘챌린지 시스템’을 도입한 MLB의 경우 451경기가 치러진 5월 5일 현재 비디오 판독이 220번 있었다. 이 가운데 99번이나 판정이 번복됐다. 2.05경기에 한번 꼴로 비디오 판독이 실시돼 판정번복 확률이 무려 45%에 달했다. 당초 MLB 사무국은 판정번복 확률을 20%정도로 예상했는데 무려 두 배 가까운 수치를 보여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MLB에서는 비디오 판독을 위해 300억 원을 들여 30개 경기장에 각각 카메라 12대씩을 설치했다. 이에 TV 생중계와 상관없이 자체카메라로 오심 여부를 판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메이저리그식의 비디오 판독 시스템 도입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에 KBO는 한국 실정에 맞는 제도를 구축하는 데 고심 중이다. 현재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방법은 TV화면을 보고 4심이 합의해 판정하는 것이다.

앞서 각 팀의 단장들은 지난 4월말 간담회를 갖고 KBO와 오심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4심 합의로 비디오 판독을 확대하는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4심 합의는 국내 프로야구 규모상 당장 MLB처럼 구장마다 10억 원 이상의 비용을 들여 카메라 장비를 갖추고 비디오 판독 중앙센터를 설치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신 심판 4명이 모여 TV 중계화면에 잡히는 장면만이라도 제대로 판독을 하자는 취지다.

현재 4심 합의는 특정 심판이 경기 도중 규칙 적용을 잘못할 경우에만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비디오 판독의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KBO도 명백한 오심이라고 다른 심판들이 판단할 경우 4심 합의로 재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특히 현장에서도 4심 합의에 대해 긍정적이다. 선동열 KIA 감독은 “비디오 판독이 당장 어렵다면 4심 합의제를 실시하면 된다”고 말했다.

선 감독은 “벤치에서 어필할 만한 장면은 TV에서 리플레이를 보여준다. 심판실의 대기심이 TV를 보면 왠만한 오심을 알 수 있다. TV카메라로도 명확하게 알 수 없는 것까지 바로 잡아달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비디오 판독도 4심 합의도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위해서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우선 현실적으로 지금 당장 비디오 판독 확대 시행은 어려운 상황이다. 무엇보다 시즌중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야구 요강, 대회규칙 등이 이미 결정된 상황에서 바꾸기 힘들다. 또 각 구단들의 이해관계에 앞선 경기들의 소급 적용 등의 난제도 산적해 있고 KBO뿐만 아니라 중계를 하는 방송사와의 합의도 필요하다.

결국 올 시즌은 이대로 치르고 다음 시즌에 적극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야구팬들의 성숙한 인내가 필요한 시점이다. 또 그렇기에 올해 남은 시즌 동안 심판들이 자체적으로 오심을 예방하려는 노력이 더욱 요구 되고 있다. 지난 20일 김응룡 한화 감독이 오심에 대해 “심판의 위치가 잘못됐다”고 지적한 것처럼 심판들 스스로 실수를 줄이기 위해 기술적으로 심리적으로 재정비하기를 기대해 본다.

오심도 경기의 한 재미일 수 있지만 요즘 경기 외의 내용이 야구팬의 구설에 오르는 건 프로야구의 몰락을 부추길 뿐이다. KBO의 뼈를 깎는 노력과 결심이 필요한 때다.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