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기관행 포기” 고위직 사퇴 도미노 예고

관가 - 공직자 ‘좌불안석’

2014-05-26     이범희 기자

 공직개혁 폭풍에 긴장감 고조…임기 끝나는 이사장의 거취는
공무원 출신 기관장들 연임은 고사하고 중도사퇴 압박 받아

[일요서울 | 이범희 기자] “대통령은 5년마다 바뀌지만 관료는 영원하다”던 공직사회가 적막하다. 흉흉하다는 말이 어울린다는 사람도 있다. 그동안 고강도 개혁만 외칠 뿐 특별한 조치가 없던 관가가 박근혜 대통령의 해양경찰청 해체라는 초강수 조직 쇄신 카드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여기에 공공기관의 해체 및 조직 축소 여파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 관측되면서 고위공무원을 중심으로 인적 물갈이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렇다면 당장 입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인물은 누구일까.

해수부 출신 인사들이다. 12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해수부 소관 공공기관 경영진의 경력을 분석한 결과, 해수부 소관 13개 기관에서 인천항만공사(사장 김춘선), 부산항만공사(사장 임기택), 여수광양항만공사(사장 선원표), 울산항만공사(사장 박종록) 등은 해수부 출신이 사장을 맡고 있다.

해양 관련 경력이 전무한 청와대 또는 인수위 출신 인사도 주목받는다. 인천항만공사 경영본부장을 맡고 있는 양장석 상임이사는 새누리당 부대변인을 지냈다. 울산항만공사의 운영본부장인 김진우 상임이사는 친박연대 사무부총장, 대통령직 인수위 담당관을 지낸 경력이 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이기룡 상임감사는 대통령 교육문화수석비서관실의 서기관 출신이다. 이들은 경력상 해양관련 업무를 맡은 바 없음에도 해양수산부 소관 공사의 임원을 맡고 있다. 낙하산 인사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아울러 (주)부산항보안공사의 최기호 사장, (주)인천항보안공사의 최찬묵 사장 등 양대 항구 보안공사 사장은 특이하게도 모두 청와대 경호실 출신이다.

또한 한국어촌어항협회 이선준 이사는 전 해양수산부 수산정책국장뿐 아니라 대통령 비서실에서 근무한 바 있다. 해양관리공단 곽인섭 이사장의 경우에는 국토해양부 물류항만실장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경력을 거쳤다.

인천항만공사는 출범 이후 3명의 사장과 4명의 건설본부장 모두가 해수부 출신이었던 데다, 현 김춘선 사장은 오는 8월로 임기가 만료된다. 또 세월호 적재와 관련해 관리감독을 해야 할 인천항만공사가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정황이 알려진만큼 이번 세월호 파문에서도 쉽게 빠져나가지 못한다.

이 외에도 낙하산 인사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은 6월, 교통안전공단 이사장은 8월, KOTRA 사장의 임기는 11월이면 끝나는 가운데 이들 수장들은 연임은 고사하고 중도 퇴임마저 고민해야 할 판이다.

금융권 역시 재정부와 한은, 금감원 출신 기관장과 감사 등이 대거 포진해 있어 세월호 참사로 인한 불똥이 튀지 않을 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현재 공모가 진행중인 공공기관에서 일부 관료 출신 후보군은 아예 포기하는 분위기도 이어지고 있다.

기관장이 공석중인 강원랜드, 인천공항공사, 세월호 참사로 수장이 사퇴해 공석이 된 선박안전기술공단, 한국해운조합 등에 관료 출신은 배제될 공산이 높다.


조용한 분위기의 정부청사 숨죽인 채 일만 하는 직원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일요서울]이 지난 21일 찾은 과천정부청사와 세종청사의 기관 사무실은 그동안의 활기찼던 모습과는 달리 웅크린 모습으로 일원화돼 있었다. 점심시간 이후 간단한 티타임 조차도 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공무원들의 모습도 색달랐다. 한 직원은 “요즘 분위기는 삭막 그 자체다. 해양경찰청 등의 해체소식 이후 잔불이라도 튈까 최대한 조용히 지낸다”고 귀띔한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까지 함께 일하던 고위공직자 중 일부가 산하기관으로 내려갔지만 이들도 앞날을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이고, 그들이 떠난 자리를 노렸던 ‘회전문 인사’도 사라질 위기에 놓이면서 노후를 준비하려 했던 고위공직자의 발걸음도 무거워졌다는 것이다.

한 경제부처의 고위 공무원 A씨는 “대통령 담화를 보고 마음을 접었다”면서 “퇴직 공직자 취업제한에 걸리지 않는 중소기업체나 교수 자리를 알아봐야겠다”고 말했다.

2014년 상반기 공무원 명예퇴직 신청이 급감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설명이다. 지난 15일 정부대전청사 각 기관들의 명퇴 신청 마감 결과를 살펴보면 조달청은 4급 이상 명퇴 신청자가 전무했다. 산림청과 중소기업청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산림청은 지난해 4급 5명, 5급 21명이 명퇴했지만 올해는 5급 이하 12명만 신청했다. 중기청도 수시 명퇴자 3인 외에 정기 명퇴자는 한 명도 없었다.

이는 정년이 되기 전에 산하기관이나 유관단체로 옮기면서 안정된 수입을 보장받았던 관행이 사라지게 될 위기에 놓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업무 관련성이 있는 사기업으로의 취업도 더욱 엄격히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 임원급으로 옮겨 고액 연봉을 받아온 루트가 막히는 셈이다. D국장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정년까지 버티겠다는 사람이 늘면 인사 적체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결원이 없는 데다, 승진대기자가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승진 심사가 중단되는 등 심각한 인사 적체가 우려된다.

한 관계자는 “고위 공무원 전원 사표내고 물갈이하지 않는 한 논란의 고리를 끊긴 힘들 것이다. 한 차례라도 살생부 명단에 이름을 옹린 해당 부처에 피바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며 박 대통령 대국민 담화 발표 직후의 관가 분위기를 전했다. 예전처럼 한차례 태풍만 피하고 보자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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