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 공간 한정… ‘성’에도 무방비
2004-11-19 김현진
‘성’이 유일한 생계수단
여성들이 노숙자로 전락하는 이유는 ‘돈’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정의 폭력 때문도 상당하다. 과거에는 정신질환이나 정신지체로 버려진 여성들이 노숙자로 전락했다면 최근에는 가정폭력이나 불화를 견디지 못해 아이를 데리고 집을 뛰쳐나온 여성 노숙자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실제로 지난 10일 영등포역 대합실을 배회하고 있는 여성 노숙자 민모(46)씨의 경우도 이에 해당된다. 다른 노숙자들과 마찬가지로 겹겹이 옷을 껴입은 민씨는 노숙자로 전락하게 된 것은 남편의 상습적인 구타 때문이었다.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시작한 결혼생활이었지만 민씨는 아이를 가질 수 없었고 이를 빌미로 남편의 상습적인 구타가 이어졌다.
여기에 남편의 의처증 증세까지 겹쳐 혹시나 결혼 전에 문란한 생활을 해서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 아니냐며 괴롭히기까지 했다. 집안 사람들조차 오히려 그녀에게 ‘집안 대를 끊어 놓으려 한다’는 차가운 시선을 보냈고, 남편의 구타도 못 본 척했다. 처음엔 어떻게든 견뎌 보려 했지만 남편의 구타와 괴롭힘은 점점 강도가 높아졌다. 이를 잊기 위해 민씨는 술에 의지하게 됐고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취해 있는 걸 보면 남편은 또 다시 그녀를 때렸다. 정신이 들 때쯤엔 아픔을 잊고자 다시 술을 마시는 악순환이 이어졌다.결국 민씨는 알코올중독자가 됐고 집에서도 쫓겨나고 말았다. 처음엔 영등포 쪽방에서 생활했지만 이미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 중증 알코올중독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수중에 있던 돈이 모두 떨어지면서부터는 길거리로 나앉아 역 대합실을 전전하며 구걸을 하기도 했고 지하도나 길바닥에서 잠이 들기 일쑤였다.“처음 길거리에서 잠을 청할 때는 비록 알코올중독자 신세였지만 두려움이 앞섰다”는 민씨. 그러나 당장 먹을 것과 잠자리를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자 어느 곳도 가리지 않게 됐고 덤벼드는 남자들마저 적응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나중에는 먹고살기 위해 다른 노숙자들을 상대로 몸파는 일을 생계수단으로 삼았다는 게 민씨의 전언이다. 서울역에서 만난 한 노숙자는 “여자든 남자든 며칠만 밖에서 잠을 자게 되면 모두 이성을 잃게 된다”며 “함께 노숙생활을 하는 여자들 중 몸을 팔아 용돈을 버는 사람이 있다는 걸 대부분 알기 때문에 밤이 되면 욕구를 참지 못한 노숙자들이 접근해 흥정을 벌이기도 한다”고 전했다.
남편폭력이 가출 원인
이모(45)씨는 2년 동안 쉼터에서 생활하다가 퇴소를 앞두고 있다. 이씨는 전남편과 사별하고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남편은 도박에 빠져 사는 사람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채업자가 찾아와 이씨에게 몇 백, 몇 천만원에 달하는 돈을 요구했다. 가게 일로는 이자를 갚기에도 벅찼다. 남편에게 도박을 그만 두라고 말을 하면, 남편은 온몸에 피멍이 들도록 이씨를 때렸다. 이씨가 아이를 임신하고 있을 때도 폭력은 계속됐다. 그녀는 “출산을 하고 100일이 안 되었을 때였다. 그 날도 남편이 술을 먹고 들어와 때리기 시작했다. 아이가 맞은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그날 밤 이씨는 아이와 함께 가출을 했다. 한동안 가정폭력 쉼터에서 생활했다. 하지만 가정폭력 쉼터는 단기보호시설이기 때문에 몇 달 후에 퇴소를 해야 했다. 이후 영등포역 상담소를 통해 현재 있는 가족 노숙인 쉼터를 소개받았다고 전했다.노숙인 다시 서기 지원센터 거리지원팀 관계자는 “ 물리적, 심리적 폭력과 성폭력 등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거리로 여성들이 내몰리는 것은 가정해체, 교육기회 박탈, 가정폭력 등 불우한 가정환경이 가장 큰 이유”라고 강조했다. 잔뜩 움츠리고 앉아 한끼 식사와 잠자리를 걱정하고 있는 여성 홈리스들은 다가올 겨울이 더더욱 춥기만 하다.여성 홈리스 쉼터 ‘수선화집’ 김기혜 소장“정부시설 입소 조건 너무 까다로워”
-현재 여성 홈리스들이 많이 있나.▲노숙자 전체적으로 보면 남자 50명 중 한명 꼴이다.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대부분 가정 폭력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나.▲몸과 정신이 멀쩡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모두가 불행한 가정환경이나 신체장애 등으로 버려진 채 한밤중에 지하철역을 전전한다.
-쉼터에 처음 왔을 때 여성 홈리스들 상태는 어떠했나.▲어떤 여성은 한쪽 손에 남편에게 찔린 칼자국도 있었다. 눈이 멀어 앞을 못 보는 여성도 있었다. 어떤 여성은 악취 때문에 목욕을 몇 번이나 시켜야 했다. 인간으로서의 삶이 아니었다.아버지한테 성폭행 당한 것 때문에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는 아이도 있었다. 또 한 애는 길거리에서 잠을 자다 남자 노숙자의 애를 임신한 상태였다.
-이곳에는 어떤 과정으로 오게 되나.▲늦은 밤 청량리역과 용산역 등을 돌며 이런 사람들을 찾아 ‘수선화의 집’으로 데려온다.
-‘수선화의 집’에서 홈리스들의 생활은.▲정부시설은 입소 조건이 까다로웠고 입소자들은 3개월이 지나면 자립할 능력이 없어도 무조건 나가야 한다. 이곳은 정부지원 쉼터가 아니다. 개인이 하는 곳이기 때문에 숙식을 제공하고 외부로부터 보호해주는 역할 정도를 하고 있다. 여성 홈리스들은 호적상 남편이나 가족이 있는 사람이 많아 정부 지원도 못 받는다. 불안한 재정 상태 때문에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