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흉중 감춘채 ‘가벼운 덕담’

2004-12-13     이인철 
한나라당 차기 대표주자 2명이 한 자리에서 만났다.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이 서울시당(위원장 박성범)이 지난 2일 여의도 63빌딩의 한 고급음식점에서 주최한 송년모임에 참여해 주변의 관심을 끌었다. 박 대표는 스킨십 정치, 이 시장은 원내 의원 접촉 다각화에 나서면서 대권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에 두 사람이 전격 만난 것. 이날 ‘적과의 동침’현장을 스케치했다. 서울지역 현직 의원들과 지난 4·15총선에 출마했다 낙선한 후보들이 오래간만에 한 자리에 모인 이날 송년모임은 주객이 전도된 분위기였다.

은진수, 장광근, 양경자 등 원외후보 등 낯익은 얼굴들이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였지만 당의 대표적인 차기주자인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이 참석을 결정하면서 모든 관심이 온통 두 사람의 만남에 쏠렸다. 송년모임을 준비한 박성범 서울시당위원장은 “50여명 정도가 참석하기로 했다”며 “박 대표와 이 시장, 당 지도부들까지 참석하기로 해 더 관심이 집중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시장이 먼저 도착해 자리에 앉자 분위기가 점점 고무됐다. 이 시장은 “국회의원도 아닌데 왜 왔느냐”는 한 원외후보의 농담에 “국회의원 아닌 사람도 많네”라며 재치있는 유머로 받아넘겼다. 이 시장이 도착하자 갑자기 자리배치를 시작했다.

중앙자리에 이 시장이 앉자, 옆자리를 비워두고 박 대표를 앉히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박 대표와 마주보는 것으로 정리했다. 대신 이 시장의 옆자리는 김덕룡 원내대표 차지였다. 대표적인 이명박 계로 알려진 이재오 의원이 도착했지만, 이 시장이 직접 “이재오 두고 이명박계라고 하던데 박 대표 옆에 앉으라”고 말하자 이 의원이 이에 화답, 박 대표가 앉을 옆자리로 향한 것. 주변에서 “이 해가 넘어가기 전에 앉아라”는 뼈있는 권유를 하자 이 의원은 “국회의원 되고 나서 처음 앉는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홍준표 의원은 이 의원을 향해 도쿄국립경기장에서 진행됐던 한일의원축구경기를 꺼내며 “정국이 어수선한 이 시기 뭣하러 일본을 다녀왔냐”고 가벼운 항의를 하기도 했다. 박 대표가 도착하자 모임이 시작됐다.

박 대표는 예상대로 이 의원 옆자리에 앉았고 이 시장과 마주 보았다. 이 의원은 박 대표에게 “이 쪽 줄에 앉은 것을 기억하라”며 농담을 건네자 이 시장이 “내 계보에서 퇴출했다”고 덧붙였다. 이 의원이 박 대표에게 술을 따라주자, 김덕룡 원내대표는 “각별해서 아주 좋다”며 흐뭇해하기도 했다. 모임이 시작되자 박 대표는 “서울지역 한나라당 의원, 시장, 지역대표들을 보게 돼서 기쁘다”고 인사말을 했다. 박 대표는 이어 “의원들은 상임위에서, 어려운 환경에서 최선을 다한 노고에 감사하다”고 말한 뒤 낙선후보들에겐 “총선이후 함께 해야될 분들이 나라를 위해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위로했다.

박 대표는 또 “여당이 국가와 국민의 생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안을 다수당이 라는 힘을 가지고 강행처리하려 한다”고 열린우리당을 비판했다.김덕룡 원내대표의 권유로 축사에 나선 이 시장도 “서울시장에 있지만 한나라당 소속”이라며 “어려운 가운데 박 대표 중심으로 잘해 나가고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난 국감에서 당이 행정수도 이전문제 등에 대해 잘 도와줘 국감도 잘 치렀고 수도권을 지키는 것도 잘 됐다”며 “미래를 위해서 (수도권을)잘 지켜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웃음꽃을 피우고 서로 덕담을 나누며 화합하는 분위기를 보니 한나라당이 뭔가 될 것 같다”며 “금년초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연말을 잘 장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합사를 하라’는 주변의 권유에 이재오 의원은 “대표를 중심으로 잘해 왔다.

내년 한해 일사불란하게 잘 대처하자”며 “그동안 언론에 대표와 불편한 것으로 나왔는데 오늘 대표 옆자리에 앉은 것을 기억해 달라”고 말해 이날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김형오 총장의 건배사에 이어 모임은 비공개로 들어갔다. 비공개 술자리에서 박 대표와 이 시장은 현안문제에 대해 서로의 견해를 묻고 당의 단결을 도모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박 대표는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이 의원에게 “오늘만 휴가나오셨냐”는 농담과 함께 “원내총무도 지내셨고 경험도 많으시니 4대입법을 어떻게 막을지 지혜도 주시고 도와달라”고 요청했고 이 의원도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국회 예결위 회의를 위해 자리를 먼저 일어선 박계동 의원은 모임 분위기에 대해 “이 정도면 분위기가 아주 좋다”고 말하며 만족감을 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