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살신성인 의사자 3인 故 박지영·정현선·김기웅씨의 삶

“너희 다 구조하고 나갈거야” 진정한 영웅들

2014-05-19     박시은 기자

살신성인, “난 모두 구조 뒤 나갈게”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었던 그들의 희생

[일요서울 | 박시은 기자]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승객을 구하려다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승무원 故 박지영(22·여), 정현선(28·여)씨와 아르바이트생 김기웅(28·남)씨가 의사자로 선정됐다. 끝까지 승객들의 탈출을 도왔던 이들의 사연이 알려지자 의사자 추진의 움직임이 시작됐고, 이에 보건복지부는 지난 12일 이들을 의사자로 인정했다. 대한민국을 충격과 슬픔에 잠기게 한 세월호 침몰 사고가 어느덧 한 달이 흐른 가운데 이들의 삶을 [일요서울]이 되짚어 봤다.

세월호 참사에 따른 슬픔의 무게는 여전히 무겁기만 하다. 승객들을 버리고 가장 먼저 도망친 선장의 이야기는 대한민국 전체의 공분을 샀다. 세월호 참사를 부른 갖가지 원인들에 대한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보건복지부는 지난 12일 ‘2014년도 제3차 의사상자심의위원회’를 열고 살신성인의 희생정신을 보여준 고 박지영 씨, 고 정현선 씨, 고 김기웅 씨를 의사자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가장노릇 하던 꽃다운 22세

고 박지영씨는 올해로 겨우 22세다. 그는 2011년 수원과학대 산업경영학과에 입학해 2학년 1학기까지 다니다가 어려워진 가정 형편 때문에 휴학했다. 4년 전 병을 앓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어머니와 동생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앞장선 것이다. 이후 그는 비정규사무직원으로 청해진해운사에 입사해 승무원으로 일해왔다.

박씨는 사고 당시 배가 45~60도 기운 상황에서 3층 식당(매점)에 있던 학생들을 안심시킨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선체 내부가 기울면서 아비규환의 상황이었으며 식당 내부에는 구명조끼도 없었다.

이 때 그는 학생들이 입을 구명조끼를 찾기 위해 선실 곳곳을 돌아다녔고, 구명조끼를 거둬 돌아온 뒤 학생들에게 차례로 입혔다. 당시 학생들은 ‘모두 움직이지 말라’는 안내방송에 따라 누워서 테이블 등에 기대며 안간힘을 다해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그는 공포에 질려 울음을 터뜨리는 학생들에게 다가가 웃으며 “안심해, 우리 모두 구조될 거야”라고 토닥였다.

그러다 선체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자 박씨는 학생들에게 “빨리 바다에 뛰어들어”라고 외쳤고, 바다로 탈출하기 시작했다.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본인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벗어주며 “나는 너희들 다 구조하고 나갈 거야”라고 말하며 끝까지 구조 활동에 매진했다. 하지만 결국 박씨 자신은 구조되지 못했다.

승객들을 버리고 탈출한 선장과는 다르게 승객들을 위해 힘쓰다 결국 목숨을 잃은 사연이 알려지자 곳곳에서 안타까움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이런 와중에도 박씨의 어머니는 세월호의 성금을 거절해 더욱 큰 감동을 자아냈다. 그녀의 어머니는 서울대 미술대학 동아리 회원들과 음악대학 학생들이 모은 세월호 성금을 거절했다. 박 씨의 어머니는 “마음만 받겠다”며 “형편이 더 어려운 실종자 가족들을 도와달라”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는 가운데 고인의 모교인 수원과학대는 고 박지영씨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하기로 했다.

결혼 앞둔 연인, 한날한시에 떠나

의사자로 지정된 승무원 고 정현선씨와 김기웅씨는 결혼을 앞둔 연인이었다.

특히 정씨는 10년간 선상에서 일한 베테랑 직원이며 스킨스쿠버다이빙에도 능해 충분히 배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단 한 명의 승객이라도 구하기 위해 배 안으로 뛰어들었다 목숨을 잃었다.

정씨의 동료와 유가족은 “평소에도 책임감이 강하고 정이 많았다”며 “‘정 장군’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여직원들 사이에서 항상 리더의 역할을 해왔다”고 밝혔다.

정현선씨의 연인인 김기웅씨는 인천대학교 학생이다. 그는 4년 전 군복무를 마친 뒤 용돈벌이를 위해 선상 불꽃놀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이 일을 계기로 김씨와 정씨는 인연을 맺게 됐다. 두 동갑내기 커플은 같은 인천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올해 가을에는 결혼계획까지 세우고 있었다.

사고 당시 김씨는 선박이 급격히 기울고 있음을 느끼고, 잠자고 있는 동료들을 깨워 탈출을 시도했다. 동료들과 함께 나오던 중 여자친구인 정씨가 아직 선내에 있다는 것을 알고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정씨와 승객 1명을 더 찾아낸 후 함께 탈출을 시도했지만 동갑내기 커플은 차마 선내에 있는 승객들을 두고 여객선을 떠나지 못했다. 두 사람은 동행한 승객을 먼저 탈출시킨 뒤 기울어지는 선내로 다시 뛰어 들어갔고, 그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 모습이 됐다. 남은 생의 불꽃을 채 터뜨려보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한 것이다.

구사일생으로 구조된 김씨의 친구는 “물이 들어찬 마지막 순간까지 두 사람이 함께 있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시신은 함께 발견됐고, 양가 부모들은 곧 영혼결혼식 일정과 절차를 논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씨는 사고 당일인 지난달 16일 세월호가 아닌 오하나마호(청해진해운이 운영하는 ‘인천-제주’간 여객선)에 승선하기로 돼 있어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김씨는 세월호 이벤트 일정이 잡힘에 따라 지난달 15일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인천으로 되돌아갔고, 그날 저녁 세월호에 승선한 것으로 밝혀졌다.

더욱이 이들이 의사자로 지정된 지난 12일은 김씨의 생일이기도 했다. 김씨의 어머니는 눈물로 얼룩진 생일상을 차려놓고 아들의 29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그의 어머니는 “의사자로 선정된 것이 고맙기도 하지만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의사자가 됐다는 것보다 마지막 순간까지 누군가를 도왔다는 사실이 부모의 가슴을 뜨겁게 울린 것이다.

한편 의사상자는 생명, 신체 등 타인의 위해를 구제하다가 사망하거나 신체의 부상을 입은 사람으로 의사자의 유가족에게는 보상금, 교육보호, 취업보호, 의료급여 등의 예우가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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