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토로] 이창섭 전국대리점연합회 대표

“대리점 고시로는 제2 남양사태 막기 역부족”

2014-05-19     박시은 기자

교섭안 등 핵심 내용 빠져…진정성 부족해
시행능력·징벌 의미 없어 방지법 제정 필요

[일요서울 | 박시은 기자]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대리점 고시’ 시행을 발표하면서 남양유업 사태가 다시 한 번 세간에 회자되고 있다. 공정위는 일명 ‘갑의 횡포’라 불렸던 제 2의 남양유업 사태를 막겠다는 포부를 드러냈지만 제재 강도가 떨어지고 한계가 많다는 지적이 많다. 남양유업 방지법을 여전히 매듭짓지못한 상태에서 대리점 고시 시행은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일요서울]은 남양유업 사태의 중심에 서 있었던 이창섭 전국대리점연합회(이하 전대련) 대표를 만나 대리점 고시 시행에 대한 생각과 향후 갑을관계가 나아갈 길을 들어봤다.

이창섭 전대련 대표는 [일요서울]과의 인터뷰에서 “공정위의 대리점 고시 시행령은 무의미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남양유업 방지법(대리점거래공정화법·대리점법) 통과도 기대를 하고 있지만 지난해부터 계속 같은 상황에 머물러 있어 여전히 많은 노력이 필요한 때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지난 12일부터 ‘대리점 고시’ 시행을 시작했다. 지난해 갑을논란 강풍의 핵심이었던 남양유업 사태 관련 문제가 더욱 구체화된 것이다. 하지만 그 효과를 두고서는 이창섭 전대련 대표와 같은 부정적인 시선이 더 많은 모양새다.

공정위가 발표한 대리점 고시의 내용은 본사와 대리점 간의 계속적 재판매거래 등에 있어서의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의 불공정행위를 유형별로 구체화한 세부유형 지정고시다.

우선 현행 공정거래법 시행령에서는 일명 밀어내기인 구입 강제 행위에 관해 ‘거래상대방이 구입할 의사가 없는 상품 또는 용역을 구입하도록 하는 행위’라고만 규정돼 있었지만 이제는 보다 세분화 됐다. 구체적인 내용은 ▲본사가 대리점에서 주문하지 않은 상품을 일방적으로 공급하고 대금을 청구하는 행위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상품, 신제품, 판매 부진상품, 재고품에 대해 대리점에게 일정 수량 이상 구입하게 하는 행위 등이다.

또 경제상 이익제공 강요에 대해서도 ▲본사가 판매촉진 행사를 실시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대리점에 부담시키는 행위 ▲본사가 채용·관리하는 사람의 인건비를 대리점에 부담시키거나 대리점 근무자를 본사에 파견 받아 근무하게 하는 행위 ▲대리점에 거래와 무관한 기부금, 협찬금 등을 강요하는 행위 등으로 구체화했다.

이 외에도 ▲계약에 부당한 거래조건을 추가하는 행위(불이익 제공) ▲영업지역이나 거래조건을 일방적으로 정하는 행위(부당한 경영간섭) ▲판매목표 강제행위 등도 세부적으로 정리해 금지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이 조항들을 두고 “사문화된 조항을 늘리는 것밖에 안된다”고 지적했다. 고시는 상위 법령에 따른 구체적인 시행 지침을 담은 것일 뿐이므로 법이나 시행령을 명문화한 것에 비해서는 제재 강도가 떨어진다. 즉 시행령 자체만으로는 큰 효력이 없는 셈이다.

때문에 이 대표는 “이미 남양유업 방지법에 포함된 내용을 시행 내용에 넣고, 남양유업 방지법은 통과되지 않는 이 상황이 법 제정을 저지하고 피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보인다는 의구심이 든다”고 밝혔다. 법안에 있는 내용을 시행령에 포함시킨 것은 시행령만으로도 방지법 실행이 충분하니 법안 제정은 불필요하다는 뉘앙스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긍정적 에너지의 상생도모 선도할 것

그는 “핵심적인 내용이 빠져있다”면서 단체교섭안과 관련된 내용이 들어가 있지 않은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특히 개별사업자가 1:1로 기업과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를 입은 사업체들이 함께 모여 회사 측과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장치적 내용이 빠져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약자와 강자 사이에서 힘의 균형을 맞춰주고, 공정한 거래를 지향해야 하는 공정위가 외부의 견제장치를 마련하는 것에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공정위가 제시한 내용의 경우 세분화됐을 뿐 사후 처리 내용에 해당하는 부분이 다수이기 때문에 공정위에 제재를 요청했을 때 피해를 최소화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공정위에 신고를 할 때쯤이 되면 이미 거의 폐업 상태에 다다른 경우가 많다”며 “신고에 따른 결과가 나오는 기간만 1~2년가량이 소요된다. 이미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 없듯 폐업이 된 후 제재를 가한다고 해서 이미 입은 피해를 충분히 보상받을 수 없고, 보상받기까지의 과정도 힘들다”고 말했다. 사후 처리에 대한 논의보다 이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도록 ‘교섭권’에 관한 부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그는 “시행령에 관한 부문을 공정위에서 시행할 능력이 여의치 않아 실효성이 없는 사문화된 시행령에 불과하다”고 바라봤다. 70만 개가 넘는 대리점을 모두 조사할 수 있는 조사관의 숫자부터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에 이를 올바르게 시행할 능력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 대표는 “고시 시행력 의지에 의문이 들면서 공정위가 소나기를 피하고 싶은 심정으로 고시 시행을 시작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따라서 지난해 남양유업 사태를 시작으로 드러난 수많은 불공정거래 관행이 개선되려면 남양유업 방지법 제정이 가장 우선으로 필요하다.

이 대표는 “남양유업 사건 이후로 시장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면서 “이제는 기업들도 예전과 같은 방법으로는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얘기하고 있고, 남양유업 방지법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법안 제정만큼이나 대리점과 기업 간의 긍정적 에너지로 발산된 상생문화가 정착돼야 함을 강조했다.

이 대표는 “지난해 남양유업 사태를 온몸으로 겪으면서 진짜 상생 문화를 올바르게 형성하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필요함을 느꼈다”고 말한다. 서로를 ‘적’으로 보는 활동방향이 아닌 사회적 약속을 실현하고 상호간의 공감대를 형성해 신뢰를 쌓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현재 전대련은 매일유업과 지난해부터 공식적으로 교섭을 시작했다”면서 “양 측은 오랜 노력 끝에 공감대가 형성됐고, 진짜 상생을 이뤄내기 위해 많은 프로그램들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매일유업과의 교섭을 시작으로 다른 기업들도 전대련과의 교섭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향후 매일유업을 포함한 10여 개의 기업들과 전대련이 함께 공식적인 발표가 있을 예정이다”고 말했다. 이어 “한 때는 기업들 사이에서 기업헌터로 오해받았던 전대련이 매일유업과의 대화 노력을 통해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끼면서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는 “남양유업 방지법을 6월 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밝혔다. 남양유업 방지법 통과로 공정위 ‘대리점 고시’ 시행을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를 잠재울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