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웃는 경제징크스] 할인의 최후

가격경쟁만 화끈…눈물 흘리는 유통업계

2014-05-12     강휘호 기자

정상 가격이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 소비자들
화장품부터 외식·호텔까지 ‘안전지대는 없다’

[일요서울 | 강휘호 기자] 재계에도 징크스가 존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업이 중요한 공사를 결정할 때, 논리와 계산 이외의 요소는 조금도 반영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즉, 처음부터 끝까지 세밀하고 철저하게 분석한 뒤 과학적인 근거에만 입각해 일을 진행하지 않겠냐는 설명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도 때론 미신 아닌 미신에 시달린다. 일부 재계 관계자들은 “가끔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불길한 징조들이 더욱 섬뜩하게 다가온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한다. 거칠 것 없어 보이는 이들에게 도대체 어떤 징크스가 따라 다닐까. [일요서울]이 알아봤다.

요즘 유통업계에선 이상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 정상 가격을 달고 나오는 제품들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노 세일’을 외치는 브랜드들은 시장점유율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형국이다.

특히 화장품 업계는 날이 갈수록 이러한 현상이 심해지는 추세다. 오죽하면 점포를 운영하는 점주들도 “소비자들이 정상 가격을 무조건 거품으로 바라본다”고 하소연할 정도다.

소비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저가형 화장품 매장에서 만난 한 여성 고객은 “필요한 제품을 사기 위해 세일 기간을 기다리는 것은 당연하지 않냐”면서 “정상 가격으로 사서 손해를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미샤는 매달 10일을 ‘미샤 데이’로 정하고 전 품목 20% 할인 행사를 펼치는가 하면, 1년에 두 차례 ‘빅 세일’ 기간을 지정해 소비자의 구미를 자극한다. LG생활건강의 더페이스샵도 과거 노 세일 정책을 고수했지만 LG생활건강에 인수된 이후 ‘희망고데이’ 등을 통해 할인행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아모레G의 이니스프리와 에뛰드하우스, 엔프라니의 홀리카홀리카, 한국화장품의 더샘 등 역시 할인 정책에 동참해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소비자들은 이미 온라인 등지에서 ‘로드샵 세일 달력’까지 만들어 필요한 제품을 세일하는 기간에 맞춰 구매하고 있다.

반대로 ‘노 세일’을 고수하던 스킨푸드는 과열 경쟁 속에서 업계 5위까지 내려앉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스킨푸드의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 대비 5.2% 감소한 1738억 원으로 집계됐다.

2010년까지만 해도 ‘화장품 브랜드숍 매출 3위’를 자랑하던 스킨푸드는 현재 네이처리퍼블릭(1717억 원)과 토니모리(1703억 원)에도 위협을 받는 처지다. 스킨푸드의 ‘무분별한 세일보다 거품 없는 확고한 가격정책을 유지해 소비자 신뢰를 얻겠다’는 철학이 유명무실해 보이는 상황이다.

아울러 정상가격을 지킬 수 있는 업종의 마지노선이었던 외식업계와 호텔업계도 별반 다를 것 없는 처지다. 연중 가격 할인 혹은 무제한 프로모션이 넘쳐나고 소셜커머스에 등록되는 일이 많아지면서 정상 가격의 의미가 흔들리고 있다. 또 각종 제휴카드 혜택도 이를 부추겼다.

일례로 미스터피자의 경우 방문포장 30%, 모바일 할인 15~20%, 온라인 할인 20%, E-쿠폰, 각종 제휴 할인 등을 내세우고 있어 제값을 다 내는 쪽이 억울할 만하다. 도미노피자도 현재 진행 중인 이벤트만 화끈한 화요일, 1피3닭페스티벌 등 13가지에 달하고 할인 정책도 미스터피자 못지 않다.

콧대 높게만 보였던 호텔 역시 대세에는 어쩔 수 없었다. 국내 유명 호텔인 라마다, 롯데, 힐튼, 베니키아 등도 소셜커머스 등에서 많게는 60%가 넘게 가격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더 놀라운 것은 예로 든 것이 화장품, 외식, 호텔 업계일 뿐 그 외에도 대부분의 업계가 같은 현상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도대체 왜?

물론 ‘반값할인’, ‘대박세일’, ‘단독특가’ 등 소비자들의 이목을 단번에 이끌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만 제품의 특성이라든가 품질과 같은 기준들이 무분별한 할인 정책으로 인해 흐려진다면 여러가지 꼼수가 난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우선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들을 살펴보면 경기 불황이 첫손에 꼽힌다. 많은 기업들이 불황을 이겨낼 방법으로 할인 정책을 펼쳤는데 처음에는 묘수로 보였던 것이 악수로 돌아왔다.

너무 빈번한 할인 행사는 소비자로 하여금 ‘정상 가격을 주고 제품을 사면 호구’라는 인식을 만들어 냈다. 즉, 정상 가격을 믿지 못하는 불신을 일으킨 것이다. 더욱이 할인 행사가 영업이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예측과는 달리 여전히 경기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두 번째 이유로는 다양한 판매 채널의 확대가 지목된다. 소셜커머스(일종의 할인쿠폰 공동구매 웹사이트)는 이미 호텔·음식·문구·가구 등 모든 품목을 다루는 거대 시장으로 변모했고,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들을 최대 90% 수준까지 할인 판매하는 인터넷 웹사이트도 생겨났다.

언제 어디서든 싼 가격을 주고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구조로 정상 가격을 고수하는 제품들이 설 곳을 잃어가는 현상이 자연스럽게 대두됐다.

이를 두고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혹자는 ‘할인의 저주’라는 말을 한다. 가격 경쟁에만 치중하다보면 생길 수 있는 결과”라면서 “노 세일 정책이라는 것은 ‘애초에 합리적인 가격을 통해 신뢰를 쌓는다’는 의미로 세일은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할인이 할인으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정상 가격으로 보이는 모습에는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또 “제품 경쟁력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침체된 소비시장을 개척해 나갈 필요가 있다. 가격만 후려치는 것은 소비자의 불신만 키우고 기업들의 건전한 경쟁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행여나 애초에 세일을 염두해 가격을 책정하는 꼼수를 부리면 손해는 소비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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