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부진·조합 집행부 금품 수수 드러나며 갈등
잡음 끊이지 않는 재개발·재건축 비리
서울시, 재건축 관계기관 유착 감사 수사 착수
뉴타운 사업 대다수 문제 발생…주민 피해 늘어나
[일요서울 | 박시은 기자] 뉴타운 사업지역인 북아현과 왕십리, 한남 뉴타운 등지에서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조합장들이 부진한 사업과 관련해 비리 연루 의혹으로 해임되는 등 갖가지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재개발·재건축 조합의 비리 의혹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에 착수했고, 용역·인건비를 중심으로 점검을 받을 대상에 오른 정비구역이 알려졌다. 그동안 속병을 앓던 건설사와 입주민들의 기대심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일요서울]이 그 현장을 찾았다.
그동안 서울시 뉴타운 사업은 말 그대로 ‘지지부진’이었다. 그러다 지난해 말부터 부동산 시장에 다시 온기가 돌자 뉴타운 사업도 다시 정상궤도에 오를 것이란 기대가 높아졌다.
하지만 현장 사정은 여전히 녹록치 않은 모양새다. 비리 연루 의혹에 조합장이 해임되는 등 여전히 잡음이 많다. 이에 서울시는 재개발·재건축 조합의 비리 의혹을 감사할 대대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서울시는 지난 9일까지 45개 정비구역의 조합과 추진위원회로부터 운영 규정과 정관, 회의기록, 차입 및 공사·용역 계약서, 세금계산서, 회계·감사보고서, 자금 출납 장부와 통장 사본 등을 제출받아 1차 서면 조사에 착수했다. 서면조사가 끝난 뒤에는 2차 현장 점검이 실시된다. 방만한 자금 관리 실태와 조합 운영진의 횡령, 부당한 용역 계약 비리 등 비리 의혹을 적발하겠다는 방침이다.
검사 대상에 이름을 올린 곳은 신정구뉴타운개발, 한남뉴타운 개발, 가락시영아파트 등이다.
뉴타운 사업의 경우 특히 지역이 가장 큰 한남뉴타운의 경우 5개 구역 중 2곳에서 조합장을 둘러싼 비리 의혹이 불거졌다. 5구역 조합원의 경우 지난 3월 임시총회를 열고, 조합장과 임원진들을 모두 해임시켰다. 당시 조합원들은 “철거업체 선정 과정에서 조합장이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진 게 해임 원인 중 하나였다”고 설명했다.
3구역에서는 기존 집행부가 시공사를 선정하기 전에 전기나 가스 철거 등을 위해 불필요한 비용을 사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조합원들 사이에 갈등이 불거진 상태다.
가락시영아파트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10년 넘게 재건축 조합과 조합원들의 갈등으로 인해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조합원 분담금이 예상보다 최대 1억 원이나 오를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조합이 일 처리를 소홀히했다는 이유로 조합원 간의 갈등이 더욱 깊어졌다.
대법원은 이에 따른 조치로 “재건축 결의에 하자가 있다”며 ‘재건축 취소’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 후 조합원들은 현 조합장 사퇴를 요구하며 해임총회 발의를 열었다.
한 조합원은 온라인상의 모임을 통해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후 이주를 시작해야만 조합원들이 시공사에 대항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시행인가 직후인 2008년부터 100여 세대를 제외한 대부분 가구를 이주시켰다. 이로 인해 시공사에게 평균 무상지분율과 개략적 추가 분담금조차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었다”면서 “결국 매월 약 40~50억 원에 달하는 금융비용이 발생돼 조합 전체의 막대한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뿐만 아니라 “이 같은 논란들은 2007년 사업시행인가를 준비할 때부터 예상됐던 결과”라며 “당시 조합은 법령과 정관을 위배하면서까지 사업시행인가를 받아냈지만 올해 3월 대법원의 파기환송으로 사업시행계획이 취소될 위기에 처했음에도 조합원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이미 현재 조합의 집행부는 수많은 위법 행위로 피소돼 사업 진행을 어렵게 했다”고 덧붙였다.
재개발 사업의 경우 시공사가 먼저 돈을 지불해 집을 짓고, 조합원 분담금에 조합원이 아닌 일반 분양자들이 낼 집값으로 나중에 공사비를 돌려받는 구조다. 그런데 각종 문제로 사업에 차질이 생기면 그에 따라 공사비용이 증가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조합원들의 분담금이 늘어나게 된다. 추가분담금이 예상보다 늘어난 결정적 원인인 것이다.
공사 중단도 못해 낭패
조합원들의 입장에서는 시공사에게 진 빚이기 때문에 추가분담금에 대한 부담으로 공사를 중단하고 싶어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린다. 시공사 역시 마찬가지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각각의 사업마다 다르긴 하지만 미분양일 경우 분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공사비를 받을 수 없어 문제가 된다”며 “조합원들이 돈이 없을 경우 곤란할 때가 있다”고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이 같은 조합의 부정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5년 전부터 서울시는 ‘클린업시스템’을 도입한 바 있다. 클린업시스템은 각 사업지에 대한 전반적 정보를 공개해 그동안 조합원이나 추진위원들은 볼 수 없었던 월별자금출입금내역, 연간자금운영계획 등을 공유할 수 있다. 재개발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고, 집행부의 결정 내용을 투명하게 하기 위한 대책인 것이다.
하지만 클린업시스템은 결과만 알 수 있을 뿐 논의 과정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갔는지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부정부패 방지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국회에서는 시공사 측에서 먼저 지불한 비용인 ‘매물비용’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는 법을 논의 중이다. 건설사가 손해를 본 돈을 법인세로 일부 깎아주는 방법이다. 만약 일정 비용을 돌려받지 못하더라도 사업을 포기하지 못해 비용을 출혈해야 하는 경우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부담이 줄어드는 것이다. 국가가 세금을 덜 받고, 건설사는 세금을 덜 내는 만큼 결과적으로 떼이는 돈이 줄어드는 순환 구조를 구축하겠다는 셈이다. 다만 기존에 들어간 비용 모두를 회수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는 한계가 있으며 현재 갈등을 겪고 있는 사업장들이 원만히 청산 절차를 밟는다는 보장은 없다.
따라서 앞으로도 추가분담금에서 출발한 기존 조합 집행부와 조합원들의 갈등 여지가 여전할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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