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중립 지켜라” VS “표현의 자유 인정해야”
교육계에 불어 닥친 세월호 후폭풍
온 국민 추모 분위기 속 교육부 “공무원 집회 참여 안 돼”
헌법에서 보장한 집회 결사의 자유 “나는 국민이다”
[일요서울 | 이지혜 기자] 세월호 여객선 침몰 참사가 일어난 지 20여 일이 지났다. 국민들의 추모행렬이 계속되고 있으며 온 나라가 추모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사고 수습이 늦어지고 정부의 안일한 대처가 계속되자 슬픔은 분노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대구교육청은 SNS에 대통령 비판 글을 올린 교사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으며, 경기교육청은 집회 참여를 제한하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일선 교사들은 표현의 자유 침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거기에 교육부가 수학여행을 전면 금지하면서 발생한 위약금으로 인해 일선 학교와 갈등도 생기고 있다. 교육계에 불어 닥친 세월호 후폭풍을 정리해봤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20여 일이 지났지만 실종자 수습은 물론 사고 수습 및 원인 진상 규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거기에 해경은 지난 7일 구조자 2명을 실종자 2명으로 바꾸면서, 아직까지 세월호 탑승자와 구조자 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답답한 마음을 SNS에 털어놓았다.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비판 글도 많았다. 이 가운데는 대구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는 A(여·43)씨도 있었다. A씨는 지난달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 “더 이상 이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그리고 3일 뒤 A씨는 대구동부교육지원청에서 조사를 받았다.
SNS 정부비판 공무원 품위유지 위반?
대구시교육청은 시민의 제보를 통해 A씨의 글을 확인한 뒤 A씨가 ‘공무원 품위유지’를 위반했는지 여부에 대해 조사에 들어갔다. 현재는 시교육청에서 교육지원청으로 해당 사건이 내려간 상태다.
A씨는 조사를 받은 뒤인 지난 1일 페이스북에 “너는 공무원이니 가만히 있으라. 아니오, 공무원이기 전에 엄마고 사람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라서 이 부끄러운 공직사회의 한 구성이라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는 내용을 게재했다. 현재 A씨의 계정은 삭제됐다.
울산시교육청도 SNS에 정부 비판 글을 올린 권모교사에게 전화를 걸어 “SNS에 세월호 관련 비판 글을 자제하라”고 주문했다. 사실상 구두주의 조치다.
시교육청이 SNS에 대통령 비판 글을 올린 교사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이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의견에서부터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대구시교육청 관계자는 “A씨를 조사한 이유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에 해당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면서 “SNS가 사적공간인지 여부에 대해 자문변호사들의 의견이 엇갈려서 무조건 징계를 내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하고 교육지원청에 내려 보낸 상태”라고 말했다. 공무원 품위유지와 관련해서는 “위반 여부 사안에 대해서 우리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에 대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측은 “정부를 비판하는 (정치적) 표현을 했다는 것을 문제삼고 있는데 교사의 정치적 중립은 공무상의 정치적 중립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서 “개인적으로 SNS에 표현한 것은 공무범위가 아니다”라고 반발했다. 공무원 품위유지 위반에 대해서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정부 책임을 묻고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비판하는 자체가 공무원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표현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집회 참여 희생자 추모 집회가 불법?
지난 1일 경기도교육청은 관할 내 학교에 ‘집회 관련 복무관리 철저 알림’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공문에는 ‘최근 세월호 사고로 인한 전 국민적 추모 분위기 속에 공무원들이 집회에 참여하는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므로 각급 학교장께서는 소속 공무원에게 전파하고 복무관리에 철저를 기하기 바란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온 국민의 추모 물결 속에서 교사는 희생자 추모 집회에 참여하지 말라는 공문 내용이 알려지자 교사들 내에서 반발 기류가 확산됐다.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난 학생들과 교사들을 추모하는 집회에 참석하지 말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는 것이다.
논란이 일자 교육부는 “해당 공문은 지난 1일 노동절에 열린 집회에 참여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고 해명했다. 안전행정부와 교육부가 일선 교육청에 보낸 공문은 ‘5·1 노동절 집회 관련 복무관리 철저 요청’이었는데 경기도교육청이 일선학교에 보내면서 ‘5·1 노동절’부분을 삭제한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경기도교육청이 세월호 참사 추모집회까지 참여를 제한하기 위해 ‘5·1 노동절’ 표현을 삭제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경기도교육청 측은 “공문이 나간 날짜가 노동절 당일인 5월1일이어서 날짜를 삭제했을 뿐 특별하게 의도가 있던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논란이 많이 일어나서 교육부에서 받은 공문으로 정정공문이 다시 나갔다”며 “언론에서 보도되는 내용과 같은 의도는 절대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추모 집회의 경우 집회의 성격과 양상 등을 고려해 판단할 부분”이라면서 “공무원은 복무규정상 불법집회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집회 참여 제한 논란에 대해 전교조 측은 “정부 비판의 흐름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고 비판했다.
전교조 관계자는 “추모 집회의 흐름이 정부비판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에 공무원은 정부비판 집회에 참여하면 안 된다는 뜻”이라면서 “이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민주주의 국가에서 용납할 수 없는 과도한 규제”라고 반발했다.
또 교육부가 헌법에서 보장한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경기 김포에 위치한 중학교 교사 A(30·여)씨는 “교사이기 전에 나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우리나라는 헌법에서 엄연히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보장한다”면서 “공무원법이 헌법보다 위에 있는 것이냐. 말도 안 되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회사원 조모(28·여)씨는 “나랏돈 받는 공무원이기 이전에 투표권을 보장받는 한 나라의 국민”이라며 “사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밝히고 행동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세월호 희생자 추모 집회를 왜 정치적 행동으로 보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라고 덧붙였다.
수행여행 취소 일부학교 위약금 ‘난감’
교육부는 세월호 사고 이후 수학여행에 대한 안전 우려를 이유로 모든 학교의 1학기 수학여행을 전면 금지하고 위약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선 학교들은 교육부가 말을 바꿔 위약금 지원에 대해 ‘모른 척’을 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위약금 지원을 약속 받고 수학여행을 취소했는데 이제와서 교육부가 입장을 바꾼 것이다.
특히 위약금이 1억 원을 넘은 민족사관고등학교는 교육부의 입장 번복으로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민사고는 이달 중 유럽으로 수학여행을 계획했지만 세월호 사고 이후 교육부에 위약금 관련 문의를 한 뒤 여행을 전면 취소했다. 학생 160여 명이 납부한 비용과 공연관람료 등 환불수수료를 합치면 위약금은 1억9000여만 원에 달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위약금 보상은 정해진 것이 아니다”라며 말을 바꿨다. 분명 계획 취소 전 위약금 문제에 대해 교육부로부터 “예산편성 권한도 있어 위약금 지원이 가능하다”는 대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민사고는 교육부로부터 지원을 전혀 받지 못했다.
또 수학여행 하루 전 계획을 취소한 B고교도 위약금 4천만 원이 발생했지만 지원을 받지 못했다.
이에 교육부는 보도 자료를 배포하고 “수학여행 중단 조치로 인한 위약금 문제 등은 여행업계 및 항공사 등의 협조로 대부분 해소된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교육부는 민사고에 대해서 “교육부에서 지양토록 제시한 고액 해외활동이므로 통상적인 수학여행으로 볼 수 없어 지원이 불가하다”면서 “그러나 학교 교육과정 운영 중 발생한 사안이므로 외국항공사에 대해 적극적으로 협조해주도록 재요청하고 학교·교육청과 협력해 해결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발표했다.
수학여행을 둘러싼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수학여행 폐지론이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갑론을박이 거세다. 거기에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수학여행 자체에 있지 않은데 안전대책보다 수행여행 자체를 취소하는 것은 코미디라는 비판도 일고 있다. 이러한 비판은 특히 학생들을 중심으로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다.
고등학교 2학년 이모(18·여)양은 “수학여행 중 사고가 났다는 이유로 수학여행을 없앤다면, 학교폭력은 학교를 없애서 해결하면 되겠다”고 꼬집었다. 전교조 측도 “본질을 제대로 보지 않은 정부의 도피성 응급조치이자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비판하면서 “체험학습에 대한 안전대책이나, 전반적인 수학여행의 올바른 정립을 위한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단원고 정상화 생존자 대입 특례 적용?
단원고등학교 정상화를 위해 경기도교육청과 교육부, 세월호 희생자 유족대책위원회, 생존자 가족대표 등은 회의를 열고 단원고 회복과 지원방안에 대해서 논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 6일 발표된 초안에는 생존 학생들의 대입 특례가 포함돼 있어 논란이 일었다. 정부와 교육청은 “아직 논의 단계일 뿐 결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지만 비판은 끊이지 않았다.
이날 경기도교육청은 단원고를 위기극복 연구학교로 지정하고 2학년 학급을 기존 10학급으로 유지하되 학생 수를 대폭 줄여 운영하는 계획을 검토했다. 이어 대학 측에 현재 2학년 학생들의 대입특례를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고교 등록금 면제 및 심리 치료 확충도 논의했다.
이 가운데 뜨거운 감자는 바로 대입 특례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친구와 선생님을 잃고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위해 세운 대책에 ‘대입’이 들어가는 것은 잘못됐다는 의견이 줄을 잇고 있다. 또 이미 상처받은 학생들이 대입을 앞두고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회사원 김모(29·여)씨는 “아이들에게서 세월호 꼬리표를 떼주지는 못할망정 평생 ‘세월호 특례 출신’이라는 말을 듣게 하려는 것이냐”면서 “피해보상이 어떻게 대학 특례로 연결되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 누구 머리에서 나온 생각인지 궁금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고등학생 최모(19)군은 “대입 특례는 고등학생에게 가장 민감한 사안”이라면서 “지금은 다들 가슴아파해도 막상 내년 대입에서 단원고 학생들이 특례를 받게 된다면 또래 학생들 마음이 먼저 돌아설 것이다. 이는 정부가 아이들을 이간질시키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반발 여론이 거세게 일자 경기도교육청은 “현 시점은 아직 희생자 수습과 장례지원에 만전을 기해야 할 시점으로 구체적인 회복 지원방안을 종합적으로 발표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jhook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