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ㆍ4 공천 뒤집기 전국 선거판 뒤 흔든다
새누리당 상향식 공천 뒤집은 하향식 쿠데타
국회의원 공천 개입 차단 목적…현실은 ‘대놓고’ 개입
상주 성백영 후보 공천 박탈 해놓고 중앙당은 ‘모르쇠’
상향식 공천 반발 전국으로 확산, “차라리 하향식 공천해라!”
[일요서울 | 정치팀] 상향식 공천을 둘러싼 새누리당 내홍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상향식 공천에 반발한 상당수 후보자들은 새누리당이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대안으로 도입한 ‘상향식 공천’이 사실상 ‘하향식 공천’이라며 공천 과정을 비난하고 있다. 일부 후보자들은 탈당 혹은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더 나아가 지역구 국회의원 개입 논란까지 불거지고 있다. 이러한 반발 기류의 타깃은 중앙당 공천관리위원회다. ‘보이지 않은 손’이 중앙당 공천위에 작용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은 상향식 공천 도입 당시 “이런 식이라면 정치 신인이 발붙일 수가 없고, 돈 선거가 만연할 우려가 있다. 풀뿌리 지역조직을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가게 된다”며 우려했던 것이 현실화됐을 뿐만 아니라 당내에서조차 이번 상향식 공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무늬만 상향식 공천일 뿐 하향식 공천이나 마찬가지다. 어쩌면 이것이 상향식 공천의 현주소다.”
6·4 지방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새누리당에 공천을 신청한 한 후보자가 기자에게 던진 말이다.
또 다른 새누리당 당직자는 “앞뒤 상황을 따져보자면 올해 들어 갑자기 상향식 공천이 도입됐고, 그만큼 준비가 치밀하지 못한 측면이 있을 수 있다. 의도가 뭐든 정치발전을 위해 제대로 작용하면 좋겠지만, 일단은 허점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새누리당은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주겠다’며 상향식 공천을 추진했다.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없었던 일’로 하면서 선택한 차선책이다. ‘밀실공천’의 부작용을 없애고 당원과 국민에게 후보 선출권을 주겠다고 약속했을 뿐 아니라 철저히 국회의원의 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취지에서 도입한 제도다.
일단 겉모습은 상향식 공천이다. 당원 50%+여론조사 50%나 100% 여론조사의 경선 방식이 후보자들 간 합의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무늬만 상향식 공천일 뿐 하향식 공천이나 다름없다.
서울시당 부결했으나 중앙당이 경선 통보
이러한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일요서울]이 입수한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위원장 홍문종 사무총장, 부위원장 김재원)가 서울시당에 내보낸 공문, 서울시당 공천관리위원장이 송파병 당원협의회에 보낸 공문을 보면 알 수 있다.
새누리당 송파병 광역의원에 후보 신청을 했다가 고배를 마신 A씨는 이번 공천에 대해 ‘하향식 공천이나 마찬가지’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서울시당으로부터 단수 후보로 공천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음주운전 혐의로 경선 자격을 박탈당한 B씨가 서울시당에 재심을 요구했으나 부결되기도 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경선을 치르게 됐다. 알고 보니 지역구 국회의원이 개입했더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어 “법정 소송을 통해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서 A씨가 언급한 인사는 친박계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김을동 의원이다. 김 의원의 입김으로 인해 경선이 치러진 것 아니냐는 말이 알려지자 새누리당 주변에서는 “국회의원의 내리찍기에 의한 하향식 공천이 진행되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일요서울]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새누리당 서울시당 공천관리위원장이 광역의원에 A후보를 단수후보로 선정하고, 나머지 지역은 경선을 진행해달라고 공문을 보냈다. 그러자 B씨가 재심신청을 했으나 서울시당에서 부결했다. 그런데 중앙당에서 서울시당 공천관리위원장에게 경선을 진행할 것이라는 결정사항을 통보하며 중앙당 지침을 따를 것을 종용했다.
뿐만 아니라 A씨는 서울시당 공천관리위원회에서 재심이 부결됐으나 중앙당 공천관리위원의 경선시행 공문 이전에 송파병 지구당에서 A씨에게 유선으로 경선비용과 경선 홍보물을 보낼 것을 지시해 서울시당 기탁금 계좌로 600만 원을 송금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A씨는 “중앙당의 결정 이전에 이미 당협위원장인 김을동 의원이 자의적으로 경선을 지시하고 진행한 명백한 증거”라며 “지역구 국회의원이 공천에 개입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중앙당이 무리하게 상향식 공천을 추진하려다가 이러한 문제를 일으켰다. 법적 대응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A씨는 새누리당을 상대로 ‘후보자선정 결정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해 놓은 상태다.
중앙당 형평성 논란 상주는 박탈, 대구는 유지
경북 상주도 무늬만 상향식 공천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상주시는 전국에서 가장 먼저 100% 여론조사 경선으로 시장 후보를 뽑는 등 상향식 공천의 모범 지역이 되는 듯했다. 그러나 ‘공천은 곧 당선’으로 여겨지는 이 지역엔 성백영 후보가 공천을 받았으나 박탈당하면서 무공천 지역으로 결정됐다. 새누리당 중앙당은 성 후보 측 선거운동원이 불법 콜센터 사무실을 차려놓고 사전 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구속되면서 성 후보의 자격이 박탈됐던 것이다.
성 후보는 “승복할 수 없다”면서 “자원봉사자 1명이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구속됐기 때문에 공천을 박탈한다고 했는데 직접 연관성이 없는 사건을 결부시켜 소명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또 수사기관에 참고인 조사조차도 받은 적이 없고, 수사기록 어느 한 구석에도 ‘성백영이 지시했거나 돈거래를 했다’는 등 직접 관련이 됐다는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무공천 지역으로 결정한 것은 상주시민들의 민심을 역행하고 상향식 공천을 무시한 무원칙한 경선 개입”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새누리당 100% 시민여론조사 경선 첫 공천자로서 상주시민들이 선택한 공천결과를 존중하기 위해 재심을 청구한다”며 “새누리당이 민주주의와 당의 결정에 역행한 경선불복 후보가 출마 가능하도록 손을 들어 준 것은 상향식 공천정신에 위배되는 초법적인 행위로서 상주시민의 민심까지 당이 박탈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김태환 경북도당 위원장은 “성 후보와 관련 혐의가 없는 지지자의 사전선거 운동을 두고 어떻게 공천을 취소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고, 김종태 경북도당 공천관리위원 역시 “법적 근거 없는 초법적인 공천 취소”라며 중앙당 결정과 경북도당의 입장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러한 논란에도 중앙당은 공천위의 결정이라는 말만 반복하며 ‘모르쇠’로 일관해 보이지 않는 손이 중앙당 공천위에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실제 지역 국회의원이 다른 예비후보 선거사무실 개소식에 참석해 특정후보를 뽑아달라고 부탁했다가 선관위의 구두 경고를 받았을 뿐 아니라 지역의원이 공천위에 압박을 넣은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다.
성 후보 공천 박탈과 관련해 당내에서조차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비슷한 사례임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대구는 공천 유지, 상주는 공천 박탈'했기 때문이다.
실제 새누리당 권영진 대구시장 후보는 불법 콜센터 사무실을 차려놓고 지지를 당부하는 문자와 전화 등 불법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대구시 선관위 조사를 받고 있다.
특히 선관위는 불법 콜센터로 의심되는 안동 권씨 종친회 청장년회 사무실로 출동했지만 이들이 사무실 문을 걸어 잠그고 선관위 관계자 및 경찰과 1시간 넘게 실랑이를 벌이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당에선 권 후보에 대해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다만 당내에선 ‘성 후보와 마찬가지로 권 후보도 공천을 박탈하거나 같이 공천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경북 울진과 영덕도 상향식 공천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울진군수와 영덕 도의원 후보로 나섰다가 탈락한 김용수 전 울진군수와 영덕 김기홍 도의회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선 불복을 주장했다. “공천 과정에서 강석호 의원의 부당한 개입으로 인해 정당한 공천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주된 이유다.
김 전 군수는 임광원 현 울진군수의 2차례 탈당 전력, 2010년 군수 선거 때 불법 선거자금 수수로 벌금 70만 원과 추징금 500만 원 선고, 부인의 선거법 위반 등 비리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는 점을 제기, ‘후보 부적격 자료’를 제출했다.
김 전 군수는 “당선이 되더라도 군수직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 자명하지만 은밀한 장소에서 임 군수와 강석호 국회의원의 보좌관이 회동하는 등 강 의원은 많은 의구심을 일으키는 행동을 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전화 여론조사를 신뢰할 수 없다. 공천 철회를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기하는 등 법적 투쟁에 나서겠다”고 반발했다. 영덕 김기홍 도의회 원내대표도 강 의원의 발언을 폭로, 선거 개입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중앙당이 지난 8일 예정됐던 청송군수 100% 여론조사 경선을 돌연 중단시키고 무공천을 결정한 것에 대해 한동수 예비후보가 부당함을 호소하고 있다. 한 예비후보 측은 경찰 조사를 받고 있지만 확정판결을 받지 않은 이상 무죄추정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에서 이러한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새누리당 후보 당선 NO “무소속으로 끝장보겠다”
특히 지역 국회의원들의 개입 논란이 심해지자 경선 룰에 대해 불만을 품고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후보들이 나오고 있다. 일부는 경선에 참여해 출마를 하지 않은 만큼 대리인을 무소속으로 내세워 새누리당 후보를 떨어뜨리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이들은 국회의원들이 경선을 통해 특정 후보를 낙점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새누리당을 뛰쳐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부작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상향식 공천제를 시행한 것은 목적보다는 기초선거 무공천 대선공약을 깼다는 비판을 면하기 위함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후보자들은 상향식 공천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일부 후보들은 중앙당 공천관리위를 겨냥해 포문을 열기도 했다. 한 예비후보는 “공천위가 지역의원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특히 일부 후보들은 향후 행보에 대해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역구 의원의 공천 개입으로 인해 후보 자격 논란이 일고 있는 이들이 공천을 받은 것에 대항하기 위해 대리인을 내세울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새누리당 경선에 참여해 무소속 출마가 어려운 한 후보는 “다른 후보를 무소속으로 내세워 새누리당으로부터 공천을 받은 후보가 되지 못하게 ‘낙선운동’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지역구 국회의원에 대한 비리를 터트릴지 여부에 대해서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상향식 공천을 놓고 각종 파열음이 나돌면서 당 내부에서도 지방선거 패배에 대한 우려감이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새누리당의 한 당직자는 “세월호 침몰 참사만으로도 지방선거 악재로 작용한 가운데 상향식 공천에 대한 문제점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다. 자칫 새누리당 성향의 무소속 후보와 새누리당 후보들 간의 대결이 펼쳐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새누리당 내에선 중앙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상향식 공천을 하겠다고 선언해 놓고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것은 ‘자신과 친분이 있는 인사들을 챙겨 20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기 위한 꼼수’라며 상향식 공천이 잘못됐다고 평가절하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더 나아가 일부에선 “이럴 바에는 하향식 공천을 하라”고 직격탄을 날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