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런 사람이야”…‘짬짜미’가 부른 비극

[일요기획] 관피아를 고발한다- ❶ 해피아편

2014-05-12     박형남 기자

학연·지연 똘똘 뭉친 해피아…“장관쯤이야…”

[일요서울 | 박형남 기자] 관료와 업계의 유착관계, 공직자가 퇴직 후 자신의 영향력이 미치던 기관의 기관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반칙’을 하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로 인해 관피아(관료+마피아)가 득실거리고 있다. 물론 이들이 전문성을 발휘한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인맥을 이용해 해당 기관의 이권을 보호하는 역할도 맡아 공공기관 방만경영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이 드러난 바 있다. 그러나 ‘전자’보다는 ‘후자’쪽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게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이다. 이같은 지적이 이어지자 정부는 세월호 침몰 참사를 계기로 칼을 빼들기 시작했다. 전직 관료들의 잘못된 관행을 손보겠다는 태세다. [일요서울]은 연속 기획으로 대한민국을 멍들게 한 ‘관피아’를 파헤친다. 첫 번째로 세월호 침몰 참사로 ‘공공의 적’이 된 해피아(해수부+마피아)를 짚어봤다.[편집자 주]

모피아(재무부+마피아), 산피아(산업통상지원부), 검피아(검찰+마피아), 교피아(교육부+마피아), 철피아(코레일+마피아) 등 대한민국 공공기관이 뿌리 깊은 마피아 조직으로 이뤄져 있다. 이들 중‘해피아(해양수산부+마피아)’는 비교적 주목을 받지 않아 왔다. 이유는 해양수산분야라는 업무상 특수성 때문이었다.

이해관계 맞물려 조직 끈끈

그러나 세월호 침몰 참사로 ‘해피아’의 존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선박관리, 검사 체계 등 해양안전에 대한 총체적 부실이 드러났다. 그 뒤에는 ‘해피아’가 있기 때문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실제 해수부 출신 퇴직 관료들이 해양 안전, 운항을 담당하는 산하기관 및 관련 민간기관에 재취업하면서 선박 관리ㆍ감독 기능을 무력화시켰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의 근본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피아’로 불리는 이들은 현재 어디에 몸담고 있을까.
공공기관경영정보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해수부 산하 14개 공공기관 중 11곳의 기관장이 정부부처 및 청와대 출신이다. 공기업 기관장인 임기택 부산항만공사 사장(해수부 공보관, 국토부 해사안전정책관), 김춘선 인천항만공사 사장(국토부 물류항만실장), 선원표 여수광양항만 사장(해수부 감사관, 국토부 해사안전정책관), 박종록 울산항만공사 사장(국토부 국립해양조사원장, 해양정책국장), 곽인섭 해양환경관리공단 이사장(국토부 물류항만실장, 물류정책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등은 해양수산부와 국토해양부 출신들이다.

준정부기관인 선박안전기술공단 부원찬 이사장(해수부 감사담당관, 국토부 해양교통시설과장)도 관료 출신이다. 이 외에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한국어촌어항협회, 항로표지기술협회, (주)인천항보안공사, (주)부산항보안공사 등도 농림수산식품부, 해수부, 청와대 출신 관료들이 기관장을 맡고 있다.

민간기관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선박 검사를 위임받은 민간기관인 한국선급은 해수부 퇴직 관료들의 대표적인 재취업 기관으로 손꼽힌다. 1960년 출범한 이래 11명 중 8명이 해수부, 해무청, 항만청 출신이다. 안전 운항을 관리하는 해운조합도 12명 중 10명이 해수부 출신이다.

해수부 출신들이 산하기관의 장을 맡다 보니 관리 감독이 쉽지 않다. 자신들 위에 있던 상관이나 친한 동료들이 산하 기관장으로 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리 감독이 이뤄지지 않은 것.

새누리당 윤명희 의원실에 따르면 선박안전관리공단의 선박 검사 합격률은 100%에 육박한다. 2010년 99.99%, 2011년 99.98%, 2012년 99.96%로 검사 자체가 무의미한 실정이다.

또 선박안전관리공단은 최근 3년간 간부 4명이 선박 검사 점검표를 허위로 작성한 사실이 적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징계는 가벼웠다. ‘견책’에 그쳤던 것. 해수부가 방조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해피아’간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렇듯 해피아들은 각 기관들을 장악하면서 세월호 침몰 참사를 키웠다.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지 못한 채 형식적인 절차만 밟아왔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실제 해수부와 해양경찰청 등에 따르면 세월호는 지난 2월 한국선급으로부터 구명뗏목 46개 중 44개가 안전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사고로 인해 이 검사가 잘못됐다는 게 드러났다. 정상적으로 펼쳐진 구명뗏목은 1개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펼쳐지지 않았다. 이 외에도 출항 전 제출한 점검 보고에서 탑승 인원, 선원수 등을 사실과 다르게 적시하기도 했다. 즉, 해피아들이 자리 나눠먹기에 치중하고, 관리감독은 뒷전이었다는 얘기다. 선박 관리만 매뉴얼대로 잘 작동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구멍투성이’임에도 불구하고 ‘해피아’로 불리는 해수부 출신 기관장들은 상대적으로 연봉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해수부 산하 공공기관 중 ‘알짜’ 조직의 기관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많게는 3억 원대 연봉을 받았고, 한 기관장은 당기순이익 적자를 내고도 성과급 명목으로 수천만 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기관경영정보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인천항망공사 김춘선 사장은 지난해 3억 855만 원, 해양환경관리공단 곽인섭 이사장은 2억 6160만 원, 부산항만공사 임기택 사장은 2억 1466만 원의 연봉을 받았다. 기본급은 1억 2천만 원 안팎이지만 기타성과상여금 명목 등으로 성과급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선박안전기술공단 이사장을 사의한 부원찬 전 이사장은 8억 5천만 원 적자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5천여 만원의 성과급을 받기도 했다.

특히 전문성이 요구되다 보니 학연 지연으로도 얽혀 있다. 부산 경남 전남 등 특정 지역 출신들의 비중이 높다. 게다가 한국해양대, 목포해양대, 부경대 등 특정 대학 출신이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해양수산분야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인사들 간에 문화가 형성돼, 자연스레 ‘해피아’ 조직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윤진숙, 해피아에 놀아나다?

학연 지연 등으로 인해 장관조차 조직 장악이 쉽지 않다. 해양수산 분야와 동떨어진 국회의원이나 관료들이 장관을 맡다 보니 업무 이해도가 떨어진다. 더구나 조직 장악도 힘들다.

윤진숙 전 장관이 대표적인 예다. 박근혜 정부의 파격 인사로 불렸던 윤 전 장관은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양연구본부장을 지내다 해수부 장관으로 전격 기용됐다. 해수부 공무원들 입장에선 정책보고서를 제출하던 사람이 장관이 된 것을 못마땅하게 여길 수 있었다는 게 중론이다. 국정감사 등에서 드러났던 모습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국회의원들의 질문 공세에 윤 전 장관이 답변을 제대로 못하자 해수부 공무원들은 관련 자료를 전달하기는커녕 뒷짐만 지는 경우가 종종 목격되기도 했다.

이러한 관행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관피아 관행을 끊겠다”고 천명했고 정치권도 해결책 마련에 앞장서고 있다. 세월호 침몰 참사를 불러일으킨 ‘해피아’들의 관행 및 부정부패를 과연 어떻게 뿌리 뽑을 수 있을지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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