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에 얼어붙은 서민경제

단체 여행 자제… 영세업자들 깊어가는 한숨과 체념

2014-05-02     이범희 기자

진도 일대 어시장 활력 잃어 “조업 중단할 수 밖에”
참사 애도, 공연계 행사 줄줄이 취소-연기-축소


[일요서울 | 이범희 기자] 세월호 침몰 사고여파가 거세다. 여행·레저 업계에 불어닥친 후폭풍은 물론 단체 수학여행·섬여행 등이 잇따라 취소되면서, 연관 업체들도 시름을 앓고 있다. 또 이같은 자제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경제전반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5월 특수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 업체들의 불만도 상당수다. 게다가 현재의 자숙, 추도 분위기에서 영세업자들은 힘겨운 상황을 드러내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갑오징어가 한 마리에 2만 5000원이나 하더라. 물가가 엄청 뛰었다. 특히 바다를 보면 아이들이 생각나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진도 전체 분위기가 가라앉았을 뿐 아니라 경직되어 있다. 아이들 사고로 해산물조차 사먹으려 하면 우울해진다. 아이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진도에 살며 [일요서울]과 전화인터뷰한 박순자(가명·61세)씨의 말이다. 그는 진도 앞바다에서 벌어지는 구조작업 탓에 조업을 포기한 어민들이 늘어난 데다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구호물품과 사회분위기상 주변상권이 죽었다고 설명했다.

인근 식당에서 따뜻한 밥이라도 먹게 되면 ‘역적'이라도 된 듯 흘겨보는 분위기가 팽팽하다는 이유에서다. 서남수 교육부장관이 쇼파에 앉아 라면을 먹다 세월호 희생가족들로부터 혼쭐이 나기도 했다.

자숙분위기 업계 전반으로 확산

이처럼 세월호 참사에 따른 충격과 불안, 그리고 사망자 수가 늘어나며 형성된 사회적인 자숙·추도 분위기가 겹치며 영세업자들과 업계의 한숨과 불만이 곳곳에서 퍼지고 있다. 특히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전국의 주요 관광지 주변 상권은 꽁꽁 얼어붙었다.

지난 28일 [일요서울]이 찾은 인천연안여객터미널은 한산함이 아닌 썰렁함 그 자체였다. 출입국하는 관광객보다 서성이는 취재진이 더 많았다. 세월호의 직격탄을 맞은 듯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이곳을 통해 입·출입하는 여행객의 모습은 보기 어려웠다. 오후 5시 가량 배 한 척이 들어오면서 여행객이 일부 나왔지만 이들도 분위기를 염려한 탓인지 서둘러 여객장을 빠져 나갔다.

인근에서 좌판을 벌여 생계를 유지했다는 A씨는 “이렇게까지 한적한 적이 없다"며 “사회 분위기 상 누가 이곳을 이용하려 하겠는가. 세월호 애도분위기가 끝나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대부분의 주변 상인들도 “일찍 들어갈 거다"며 상점문을 닫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내수 경기 활성화를 위해 올해 처음 도입한 관광주간 특수도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신규 예약은 물론 기존 예약마저 취소가잇따르고 있다.

한국관광협회중앙회가 조사한 결과 서울 지역 일부 여행사에서 학생, 공무원들의 단체 여행 취소율이 지난달 18일 기준으로 절반 이상을 호가한다.

선박을 이용한 상품은 그 수치가 더 높고 무더기 해약까지 발생하고 있다. 경기도 교육청이 상반기 배편으로 가는 수학여행을 전면 금지하면서 다른 지방자치단체들의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예약 취소사태가 이어지며 손님이 뚝 끊기자 식당, 민박집, 펜션 주인들은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고 울상이다. 여기에 관계된 제2,3의 업체들도 줄도산이 우려되는 실정이다. 평소 같으면 알록달록 차려입은 관광객들로 붐벼야 할 곳들도 대체적으로 한산한 모습이다.

도봉산 입구에서 수년간 음식점 사업을 했다는 A씨는 "말해 뭐하나? 세월호 참사로 전국민이 애도하는 가운데 산을 찾지않는다고 하소연 할 수가 있나. 산 사람이라도 살자는 말조차도 꺼내기 어렵다"며 “우리 집이 두부를 전문으로 하는데 2주간 두부업체로 부터 받은 두부가 2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자연스레 두부업체의 경영난이 심각함을 시사한 것이다.
어린이 날, 부처님 오신날, 어버이 날로 이어지는 황금연휴 덕을 보려던 업계도 완전 개점휴업 상태다. 수도권의 테마파크들은 대체로 사고 발생 이후 방문객이 25~30%정도 감소했다. 일부 테마파크는 아예 어린이날 행사를 위한 홍보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곳도 많다. 대규모 공연을 준비했던 업체들도 ‘축제'라는 말을 감추며 간소히 치른다는 계획이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봄철 최대 성수기를 맞아 준비했던 홍보 마케팅과 행사 등이 모두 최소되면서 업계는 사실상 개점휴업상태다"라며 “당분간 이 영향이 지속될 거 같아 걱정이다"고 말했다.

카드사들도 어린이날과 어버이 날 등 5월 특수 고객 유치를 위한 각종 이벤트를 취소하고 나섰다. 일부 카드사들은 올 상반기 정보유출 사태에 이어 세월호 사고까지 연이어 터지면서 올해 상반기 영업은 사실상 포기상태인 것으로 알려진다. A카드사의 개인 신용카드 이용액은 지난달 16~22일 4.4%나 감소했다.

더 큰 문제는 전면에 나선 곳보다 후면에서 벙어리 냉가슴앓이를 하는 영세업자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세월호 참사의 쇼크로 한국경제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 이 상태로라면 상반기 경기회복이 예상보다 휠씬 더뎌질 것이란 우려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정부는 올해 경제정책방향에서 경제회복의 모멘텀을 내수활성화로 보고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1분기 민간소비 증가율은 전반기(0.6%)의 절반인 0.3%에 그쳤다. 설비투자 증가율은 5.6%에서 -1.3%로 곤두박질 쳤다.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