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신간]괴짜 물리학자와 삐딱한 법학자 형제의 공부 논쟁
내가 주인공이 되는 ‘진짜 공부’를 해라
경제 비평가이자 칼럼니스트 윤석천이 우리가 알기 어려운 불편한 경제의 진실을 파헤친다. 경제신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사면서, 단순히 보이는 것 이외의 진실이 숨어 있는 기사를 발췌해 인용하고 그 뒤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알아야 할 진짜 경제를 보여준다. 경제기사를 읽는 것을 넘어 사유하는 방법을 안내한다.
중요 공직에 출마하는 선배 교수의 휴직기간 연장에 대해 망설이지 않고 ‘반대’ 표를 던지는 ‘돌출적인’ 교수, 젊은과학자상(2003), 서울대 학술연구상(2012), 한국과학상(2014)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포경수술 실태를 고발한 논문으로 국제인권상(2000)을 수상한 과학자. 괴짜 과학자 김대식 교수에게 따라 붙는 이력이다.
검사로 임용됐지만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유학 가는 아내를 따라 외국으로 떠났다가, 대한민국 법조계의 실상을 날카롭게 파헤친 ‘헌법의 풍경’으로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한 김두식 교수도 남다르다는 점에서는 결코 지지 않는다. 이 책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이들 형제가 ‘공부’를 화두로 열띤 논쟁을 벌인 결과물이다.
형제가 나눈 평소의 대화를 가감없이 엮은 이 책을 읽다보면 이렇게도 다른 형제가 한집안에서 성장하고, 또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형제가 얼마나 다른지는 서로의 정치적 견해를 두고 다투는 1장에서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데, 김대식 교수는 진보진영의 엘리트주의를 격하게 비판하고, 김두식 교수는 인권의 현주소와 민주주의의 역행을 예로 들며 진보진영을 적극 옹호한다.
평소의 사적인 대화를 공개하기로 마음먹은 만큼 저자들은 우리 사회의 핵심 현안을 에둘러 비판하지 않는다. 공부라고 하면 으레 따라붙는 엘리트, 창의성 및 탁월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내용으로 대화는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에서 노벨상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 장원급제 DNA와 장인 DNA의 차이, 과장된 이공계 위기, 영재교육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으며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엘리트주의의 한계를 분석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공부는 무엇이 문제일까. 저자들은 공부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공부가 항상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기 위한 수단인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성공 스토리에는 언제나 명문고(혹은 특목고) 졸업, 서울대 입학, 사법시험 합격이라는 타이틀이 따라붙는다. 과학자라고 해서 하나도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시험 잘 치는 사람들에게만 과학을 맡겨온 결과는 분명하다. 노벨상은커녕 새로운 이론, 새로운 발견 하나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 우리 과학계의 현실이다. “스티브 잡스를 만들고 싶다면서 공부 잘하는 애들 중에서 잡스를 찾으려면 그게 되겠습니까”라는 김대식 교수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우리나라 엘리트주의에 불을 지핀 고정관념 중 하나는 ‘한명의 천재가 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것이다. 김대식 교수는 이러한 주장은 이공계의 발견·발명의 일반적인 실상과는 크게 다른 것으로, 엘리트주의에 물든 우리의 대표적인 오해라고 지적한다. ‘우연성’에 기초하는 과학에서는 10억원을 한명에게 몰아주는 것보다는 10명에게 1억원씩 나눠주는 게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만명의 공부하는 사람이 먹고살 수 있어야 한명의 천재가 나오는 것으로, 천재로 불리는 아인슈타인도 유럽이라는 거대한 과학의 인프라가 없었다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는 설명이다.
이 책이 지금까지의 ‘공부’ 논쟁과 가장 파격적으로 다른 부분은 ‘진짜 공부’를 하기 위해서 입시나 교육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답습하고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뒤틀린 입시나 교육제도를 바로잡기 위해 대학교수의 시각에서 먼저 접근한다.
그리고 대학의 교수 채용 시스템이 우리의 과학계는 물론 똑똑한 학생들의 미래를 망치는 주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우리가 늘 경쟁상대로 삼고 있는 일본과 비교하면 결과는 비참하다. 15대 0이라는 과학계 노벨상 숫자의 차이를 만든 일본의 비결은 국내 박사를 우대하는 임용 시스템에 있다.
교육과 입시 문제는 사회비평의 주된 주제 중 하나다. 하지만 이 책이 특별한 것은 ‘공부’를 평생의 업으로 삼아온 형제 교수가 자신들의 속내를 모두 드러내놓고 본격적인 논쟁을 벌인다는 점이다. 문과와 이과라는 차이는 물론이고 정치적 입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각자 경험한 한국사회의 공부와 공부를 둘러싼 제반 제도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이 책은 앞으로 우리 사회 공부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책이 될 것이다.
김대식, 김두식 지음 |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