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 소송에 패소까지...귀뚜라미그룹에 무슨일이

어제의 동지가 오늘은 적 진흙탕 속 싸움

2014-04-21     강휘호 기자

해고 된 이들 모여 만든 회사는 눈엣가시?
향후 경동나비엔 행보 주목할 필요도 있어

[일요서울 | 강휘호 기자] 보일러 제조업체로 유명한 귀뚜라미그룹(회장 최진민)이 특허권침해·분식회계 등 규원테크와 벌인 소송전에서 잇달아 패소를 맛보고 있다. 귀뚜라미그룹의 계속된 패소는 중소기업을 죽이려는 억지 소송이라는 비판을 부르는 양상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귀뚜라미그룹이 소송을 걸었던 규원테크의 사장이 귀뚜라미그룹의 총괄 사장까지 지낸 김규원 전 사장(사진)이라는 점이다. 한때는 동지였던 이들의 싸움은 대체 왜 시작됐을까. 일각에서는 귀뚜라미그룹이 소송을 건 숨은 이유가 존재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아울러 귀뚜라미그룹과 라이벌로서 오랫동안 대립각을 세워왔던 경동나비엔(회장 손연호)의 움직임도 주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선 이들 싸움의 당사자인 김 사장의 이력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김 사장은 1989년 귀뚜라미 평사원으로 입사한 뒤 기술연구소, 품질보증팀장, 공장장, 귀뚜라미보일러 대표이사를 지냈고 2007년 그룹총괄사장으로 선임됐다.

그러나 김 사장은 2010년 2월 갑작스럽게 그룹을 퇴사했다. 이를 두고 회사 측은 전적으로 본인의 결정이라는 입장이었고 김 사장 측은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받은 것이라고 맞섰다.

어찌됐던 김 사장은 홀로서기를 위해 2010년 7월 지방에 보일러를 제조하는 중소기업 규원테크를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규원테크에 따르면 귀뚜라미의 압박이 시작된 것도 이 시점이다.

김 사장이 자신의 이름을 따 설립한 규원테크는 종합 보일러제조사로 펠릿보일러, 화목보일러, 하이브리드 보일러 등을 제조·판매하면서 창업 2년 만에 매출 20억 원을 돌파하는 등 승승장구 했다.

그러나 귀뚜라미그룹은 다른 보일러제조사에 규원테크와 거래관계를 끊으라고 요구하거나 대리점들을 돌면서 귀뚜라미그룹 대리점을 내줄테니 규원테크의 제품을 받지 말라는 주문을 했다. 규원테크 측이 밝힌 귀뚜라미그룹의 압박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거래처가 모두 끊길 위기에 놓인 김 사장이 귀뚜라미그룹의 경쟁사 경동나비엔과 합작해 사업의 활로를 개척하려 하자 법적 소송으로 규원테크 피말리기에 들어갔다.

귀뚜라미그룹 계열사 천진귀뚜라미보일러 유한공사가 규원테크에 분식회계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회유책을 가장한 방법도 사용했다. 김 사장에게 계열사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한 것이다. 시달림에 지쳐가던 김 사장은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경산시에 있는 규원테크 사업장을 폐쇄한 뒤 귀뚜라미 계열사가 모여 있는 아산시로 공장을 옮겼다. 이후 김 사장과 귀뚜라미그룹은 자본금 3억5000만 원 규모의 귀뚜라미그린에너지를 설립하고, 이를 통해 공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고소 또 고소

그러나 사업을 시작한 지 다섯 달 정도가 지났을 무렵 귀뚜라미그린에너지 이사회는 운영이 어렵다며 해산을 의결했다. 그 결과는 귀뚜라미그룹이 김 사장을 상대로 “운영과정에서 상법상의 겸업금지 의무와 비밀유지 의무를 어겼고 대표이사 임무에 소홀해 자본잠식 손해를 끼쳤다”며 또 다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것으로 귀결됐다.

다만 대법원과 특허심판원의 판결은 규원테크의 손을 들어줬다. 대구고등법원 제3 민사부는 “원고 측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이를 그대로 믿기 어려우며 인정할 증거도 없고, 귀뚜라미가 당초 약속을 어겼다”고 적시했다. 귀뚜라미그룹 측의 상고에서도 대법원이 그대로 받아들여 청구를 기각하기에 이른다.

특허 분야 소송도 마찬가지다. 귀뚜라미그룹은 규원테크가 개발한 하이브리드 타입 보일러에 대해 6건의 항목에서 특허를 침해했다며 이를 특허심판원에 제소했다. 하지만 특허심판원은 하이브리드 타입 보일러는 특허발명의 권리범위에 속하지 않으며, 심판비용은 귀뚜라미가 부담할 것을 주문했다.

두 재판 결과대로라면 귀뚜라미그룹이 의도적으로 소송을 걸 명분을 만들고 규원테크를 몰아세웠다는 가설도 설득력을 지니게 되는 모습이다. 자연스럽게 “귀뚜라미그룹은 왜 한 번도 이기지 못하는 싸움을 계속 거는 것일까”라는 의구심도 따라 붙는다. 이를 두고 해당 사건을 잘 알고 있다고 밝힌 한 관계자는 다양한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귀뚜라미그룹의 최진민 회장이 직접 지시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예전부터 최 회장은 귀뚜라미그룹 출신 인사가 보일러 업계에서 재기하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또 “김 사장이 퇴사 하기 전 직원 복지를 두고 최 회장과 마찰이 있었는데, 복지를 늘리자는 김 사장과 이를 묵인하는 최 회장 사이에 앙금이 쌓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와 같은 앙금이 김 사장 해고로 이어졌고 소송 사태까지 번진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를 예측해달라는 질문에는 “사실 여부를 떠나 계속해서 귀뚜라미그룹이 규원테크를 가만히 놔두지는 않을 것”이라며 “특허권 역시 귀뚜라미그룹은 그룹 내 누가 개발을 한다 해도 최 사장으로 특허권 이름을 올린다. 시비를 걸자면 끝도 없이 걸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귀뚜라미그룹은 어차피 돈도 많고 법무팀과 고급변호인단을 구성할 여력이 된다”며 “규원테크의 경우에는 지방 변호사 중에서도 수임료가 싼 변호사를 찾느라 고생이다. 판결 승패를 떠나 그러한 실정만으로도 규원테크가 입는 타격은 시간·비용·인력 등 엄청나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를 전해들은 귀뚜라미그룹 측은 “관련내용을 모른다”는 대응으로 일관했다. 규원테크 측 주장이 단순 의혹이라면 노발대발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반론을 거의 포기하는 모습이었다. 귀뚜라미그룹 관계자는 “법무팀에서 따로 진행하는 사항으로 공유되는 정보가 없다”고 짧게 답변하는 데 그쳤다.

한편 업계 수위를 놓고 귀뚜라미그룹과 다투는 경동나비엔의 행보에도 주목할 만하다. 김 사장이 경동나비엔과 합작하는 카드를 다시 들 수도 있다. 앞서 규원테크가 경동나비엔에 손을 내민 적이 있고 사업 활로가 모두 막히면 경동나비엔 만큼 든든한 조력자가 또 없기 때문이다. 경동나비엔 입장에서도 규원테크의 제품 시장이 자사의 시장과 크게 겹치고 있지 않아 귀뚜라미그룹을 누르려는 목적으로 딱 좋은 제안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있다. 귀뚜라미그룹이 매출 등에서 타격을 입으면 그 반사이익을 최고 많이 가져갈 주인공이 경동나비엔이라는 것은 쉽게 추측이 가능하다.

현재 경동나비엔은 ‘국가대표 보일러’, ‘국내 1등’의 문구와 관련해 귀뚜라미와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귀뚜라미그룹은 공정거래위원회에 경동나비엔이 이러한 표현을 쓰지 못하게 해달라고 계속 제소하고 있다.

또 한국공항공사의 김포공항 대중골프장 조성사업 우선협상자로 귀뚜라미-롯데건설 컨소시엄이 선정된 것도 시끄럽다. 경동-대보건설 컨소시엄(KCC컨소시엄), 금호개발-오렌지엔지니어링 등이 참여한 이번 입찰의 과정이 의심스럽다고 KCC컨소시엄에서 이의 제기를 신청하고 나선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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