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하게 변한 新 고부갈등
“현관문 비밀번호 바꾸겠다” vs “내 아들 집도 마음대로 못가나”
초인종 없이 현관문 열어 “며느리 동의 필요없다”
SNS에 글 올리자… “너네끼리 꽃구경 가니 좋니?”
[일요서울 | 이지혜 기자] 스마트 시대에 고부갈등도 ‘스마트화’ 되고 있다. 시부모들은 SNS를 통해 며느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 도어락을 쓰는 가구가 증가하면서 현관문 비밀번호를 둘러싼 갈등도 발생하고 있다. 비밀번호만 누르면 언제든지 현관문을 열 수 있다 보니 시부모들이 당연하게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요구한다. 문제는 시부모가 아무 연락도 없이 불시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다.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온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거실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놀라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최근 법원에서는 비밀번호 문제로 별거에 들어간 부부에게 이혼을 결정한 판결이 나왔다. 이에 사람들은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반응이다.
A씨는 신혼집 가까이 사는 시아버지가 매번 연락 없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 남편에게 비밀번호 변경을 요구했다. 그러나 남편이 “아버지가 알면 실망하신다”며 이를 거절하자 A씨는 이사를 가자고 재촉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시아버지는 “내가 멍청해서 너희 집을 무단으로 들어가 피해를 줬다. 너희한테 맹세코 가지 않을 테니 염려 마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면서 “비밀번호를 바꾼 며느리는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시부모와 사이가 멀어지자 남편은 A씨에게 사과할 것을 강요했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A씨는 자살 시도까지 한 뒤 결국 두 사람은 별거에 들어갔다.
지난 13일 서울가정법원 가사3부는 A씨 부부의 이혼청구 소송에서 이혼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서로의 관계가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것으로 보이며 혼인 회복을 위해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이혼 책임을 쌍방 모두에게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기혼 여성들은 “재판부가 너무 모른다”라고 혀를 찬다.
“엄연한 사생활 침해 서로 존중 필요하다”
지난 15일 오후 2시께.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키즈카페에서 만난 기혼 여성들은 하나같이 “비밀번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토로했다. 시댁과의 거리는 상관없었다. 그들은 “차라리 디지털 도어락을 없애고 싶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결혼 5년차 김모(30·여)씨는 “신혼 초 집에 온 시어머니가 비밀번호를 물어보기에 아무생각이 없이 대답했다”며 “그때부터 시어머니는 사전 연락 없이 집을 찾아왔고, 집에 사람이 있어도 초인종을 누르지 않은 상태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집에서 낮잠이라도 자고 있으면 ‘팔자 좋다’며 비꼬는데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비밀번호를 바꿨다”라며 “그러나 바로 새 비밀번호를 물어보더라. 핑계가 없어서 결국 알려드렸다”라고 말했다.
이는 김씨뿐만이 아니었다. 시부모의 잦은 방문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비밀번호를 바꿔도 결국은 시부모에게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 최모(34·결혼 2년차)씨는 “집에 오면 초인종을 눌러달라고 말했다가 크게 혼이 났다”라며 “내 아들집에 오는데 왜 너한테 허락을 맡아야 하냐며 고함을 질러서 결국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 가면 어머님이 거실에서 어디 갔다 왔냐고 할지도 모른다. 전혀 놀랍지 않다”고 말했다.
비밀번호 갈등은 시부모의 ‘동의 없는 출입’이 문제다. 김씨 등은 “시부모는 우리집을 아들의 집, 또는 ‘내 또 다른 집’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출입하는 데 동의를 구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라며 “시부모에게 한마디 했다는 이유로 부부싸움을 한 적도 있다. 차라리 도어락을 열쇠로 바꿔버리고 싶다”고 말했다.
‘힘들다’ 글 올리자 시부모 전화 와
새로운 고부갈등은 스마트폰 이용에서도 나타났다. 스마트폰으로 어디서든 자유롭게 SNS사용이 가능해지면서 사진과 게시물 또는 모바일 메신저 프로필 안내말까지 간섭을 받게 된 것이다.
달콤한 신혼의 꿈에 푹 빠져 있어야 할 한모(28·여·결혼 6개월)씨는 벌써부터 시댁이 무섭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아무생각 없이 SNS에 올린 글과 사진 때문에 시부모에게 혼나기 일쑤라는 것이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직 후 시부모는 한씨와 SNS 친구를 맺었다. 조금 더 가까워 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걱정 없이 친구 추가를 했는데 문제는 여기서 부터였다.
하루는 야근을 하면서 SNS에 “오늘도 이 시간까지 회사다. 집 밥 먹은 지가 언젠지 모르겠다. 우리 OO이(남편 애칭) 보고 싶다”라고 글을 올렸다. 1시간쯤 지나서 시부모에게 전화가 왔다. 아무생각 없이 전화를 받은 한씨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시부모는 남편을 별명으로 부른다며 화를 냈다. 남들이 보는 곳에 그렇게 적어놓으면 다른 사람들이 남편을 우습게 볼 수 있다면서 앞으로는 호칭을 붙이라고 주문했다. 지난달에는 남편과 드라이브 한 사진을 올렸다. 벚꽃 사진과 함께 “꽃이 너무 예쁘다”는 글을 올렸다. 이번에는 시부모에게 답글이 달렸다. 시부모는 한씨의 글에 “정말 예쁘구나^^ 나도 꽃구경 한 지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너희끼리 가니까 즐겁니?”라는 답글을 달았다. 놀란 한씨는 즉시 글을 삭제하고 시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모(34·여)씨는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좋아하는 남자 연예인으로 바꾸고 소개 메시지를 “이런 남자”라고 바꿨다. 이를 본 시부모는 이씨에게 “결혼한 여자로서 할 행동이 아니다”라고 화를 냈다. 이씨는 “한번은 육아에 스트레스 받아 카톡 소개 메시지에 ‘예전이 그립다. 힘들다’라고 적은 적이 있다. 그날 시부모님이 집까지 찾아오셨다. ‘네가 힘들면 밖에서 일하는 내 아들은 얼마나 힘들겠냐. 왜 너밖에 생각을 못하냐. 사람들이 내 아들을 뭐라고 생각하겠냐’며 꾸중을 하셨다”라며 “지금은 시부모 눈치가 보여 카톡 프로필을 지정해 놓지 않았다. SNS는 옛날에 탈퇴 했다. 내가 올리는 글만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무서웠다”라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기혼 여성 사이에서는 ‘SNS 계정을 2개 준비하라’는 말도 나온다. 시부모용 계정을 따로 만들어 이용하라는 것이다. 이씨는 “새로 결혼하는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은 절대 시부모를 SNS에 친구추가 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구형 휴대전화 기기를 구입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시부모도 할 말 있다 “SNS 간섭 우리도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며느리들의 불만에 대해 시부모도 할 말이 많다. 며느리 또한 SNS를 통해 간섭을 한다는 것이다. 남모(57·여)씨는 “딸에게 배워 SNS에 푹 빠진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하지 않는다”라며 “여행이나 음식 먹고 사진을 올렸는데 그것을 본 며느리가 ‘돈을 낭비한다’고 잔소리를 했다. 그 뒤로는 며느리 눈치가 보여 사진도 올리지 않고 말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며느리와 친해지기 위해 SNS을 이용했다가 싫은 소리를 들은 사람도 있었다. 이모(51·여)씨는 “며느리와 가까워지려고 SNS 친구도 맺고 글 올리면 멋있다, 예쁘다는 글도 달아줬다”라며 “그런데 며느리는 내가 댓글을 다는 게시물을 모두 삭제했다. 섭섭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김모(55·여)씨는 며느리의 SNS에서 손자 사진 보는 재미에 푹 빠졌지만 댓글을 달지는 않는다. 하트 스티커와 함께 ‘우리 손주 너무 예쁘다’라고 글을 올렸다가 며느리로부터 “간섭 받는 느낌”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다른 사람들도 스티커를 붙이고 답글을 달아서 나도 한 줄짜리 댓글을 달았다. 그런데 며느리는 친구들과 자유롭게 소통하는 공간에 내가 끼면 불편하다고 말을 했다”라며 “그 뒤로는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진만 보고 나온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가족문제상담소 관계자는 “한달에 3~4번은 SNS와 관련된 상담이 들어온다”라며 “옛날에는 직접 눈앞에서 보지 않으면 생활을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인해 멀리서도 일상생활 확인이 가능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관계자는 이어 “특히 SNS는 젊은 층 뿐만 아니라 중·장년층으로 사용 연령대가 확대되고 있어 앞으로 이러한 갈등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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