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증 검사 없이 모든 것 ‘OK’

청소년 탈선 장소로 떠오른 ‘무인텔’

2014-04-21     이지혜 기자

이용객 편의 제공 위한 시스템, 결제 하면 열쇠 나와
입실 후 배달음식 이용해 음주 가능… ‘단속 힘드나?’

[일요서울 | 이지혜 기자] 이용객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직원과 마주치지 않고 입실이 가능한 시스템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무인텔이 10대 청소년들의 탈선 장소로 떠오르고 있다. 신분증 검사 없이 결제만으로 방을 빌릴 수 있어 청소년들도 부담 없이 드나드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모텔이라는 장소의 특성상 주류 배달부도 신분증을 검사하지 않아 음주 및 흡연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생활 침해 등의 이유로 경찰 단속도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16일 오후 4시께, 경기도 외곽에 위치한 무인텔 앞에는 6~8대의 자가용이 주차돼 있었다. 입구로 들어가자 여느 다른 숙박업소와는 다르게 카운터(계산대)가 따로 마련돼 있지 않았고 직원 역시 보이지 않았다. 대신 열쇠가 담겨있는 기계가 놓여있었다. 결제(현금 또는 카드)를 하면 바로 열쇠가 나오는 시스템이었다. 신분증을 검사하는 과정은 생략돼 있었다.

오후 고교 하교시간 퇴근 전에 “빨리빨리”

이른 시간이었지만 무인텔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다. 대학생 또는 30~50대 남녀가 15분에 1번꼴로 드나들었다. 결제하는 시스템 앞에서 두 커플이 마주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늦게 들어온 커플은 서둘러 나갔다가 잠시 뒤 돌아와 대실비를 지불하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오후 5시가 넘자 앳된 얼굴의 남녀가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사복을 입고 있어 청소년인지 갓 20살이 된 학생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이 커플은 입구에서 만난 기자를 보고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내 침착하게 무인텔 안으로 들어갔다. 이후로도 청소년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의 남녀 2커플이 무인텔 문을 열었다. 육안으로는 커플들의 나이를 알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7시께 퇴실하는 남녀에게 다가가 나이를 물었다. “어려 보이는데 성인이 맞느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남녀는 대답하지 않고 사라졌다. 또 다른 남녀에게 질문하자 “성인이 아니라면 모텔에 올 수 있었겠느냐”라고 말한 뒤 발걸음을 돌렸다. 교통편이 좋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는 만큼 대부분의 손님들은 자가용을 이용한 반면, 이들은 버스나 택시 정류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나 신분증을 보지 못해 나이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 뒤로 한 커플이 기자의 질문에 답변을 들려줬다. 취재 목적을 밝히자 그들은 신고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말문을 열었다. 인근 고등학교 3학년 A(19)군은 “무인텔은 신분증이 필요 없어 친구들도 자주 이용한다”며 “어쩌다 성인들과 마주쳐도 교복을 벗으면 학생인 줄 모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A군은 “혹시 아는 어른들과 마주칠까 봐 수업이 끝나면 바로 달려온다”며 “어른들 퇴근 시간 전에 퇴실하면 마주칠 일도 없고, 방안에서 음주와 흡연도 가능해 1석3조”라고 설명했다.

직원 눈치 보는 룸카페 “중학생이나 가는 곳”

칸막이 방에 담요와 베개를 구비해 놓은 룸카페는 ‘미성년자 모텔’이라고 불릴 정도로 미성년자 탈선의 온상으로 떠올랐다. 한 시간에 7000원으로 비용도 저렴하고, 방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밖에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음주와 흡연은 물론 성관계까지 공공연히 이뤄진다. 그러나 기자가 만난 학생들은 “룸카페는 돈 없는 중학생이나 가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고교 2학년 강모군은 “한때는 룸카페가 천국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라며 “그러나 매번 직원과 마주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룸카페 비용에서 조금만 더 보태면 무인텔에 갈 수 있다”며 “그곳은 직원과 마주치지 않아 부담도 없고 침대, 욕조 등 시설도 좋다. 또 옆방에 (소리가)들릴까봐 걱정할 필요도 없다”고 무인텔에 가는 이유를 설명했다.

고교 학생들이 무인텔을 찾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음주’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주류 구입 시 신분증 검사를 하는 일반 업소들과는 달리 무인텔에서 주류를 주문하면 신분증 검사를 전혀 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모(19·고3)군은 “치킨이나 피자를 시키면서 술을 주문하면 바로 가져다준다”라며 “신분증 검사할까 봐 조마조마하게 있을 필요가 없어 일주일에 최소 한 번 이상은 찾는다”라고 말했다.

배달 장소가 모텔이다 보니 굳이 신분증 검사를 하지 않는 것이다. 피자집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박모군은 “모텔은 성인만 출입이 가능한 곳 아니냐”라며 “애당초 배달직원은 손님에게 신분증 검사를 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미성년자 스스로 자제 필요해”

주로 도시 외곽에 생겨나던 무인텔은 최근 도심 한복판에도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특히 지방의 경우는 어디서든 쉽게 무인텔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다보니 학부모들의 걱정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김모(42·여)씨는 “서비스 제공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미성년자 출입을 막는 것이 가장 최우선”이라며 “실내에서 직원이 지켜보고 있다가 미성년자는 내쫓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무인텔 업주 측은 직원이 지켜보는 것은 힘들다고 말한다. 서울 강동구에서 무인텔을 운영하는 업주 B(34)씨는 “무인텔의 매력은 직원을 고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솔직히 무인텔 뿐만 아니라 유인텔은 물론, 호프집, 클럽 등도 미성년자들이 가짜 신분증을 만들어 얼마든지 드나든다”며 “감시보다는 먼저 학생들 스스로의 자제가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경찰은 무인텔 손님들의 사생활 침해 등을 이유로 단속이 힘들다는 입장이다. 신고를 받고 출동하지 않는 이상 객실에 있는 손님들을 일일이 확인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무인텔에서 미성년자들의 탈선이 자주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모텔 투숙객들의 나이를 경찰에서 모두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성년자들의 경우 무인텔 출입을 자제해야 한다”라며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드나들 수 있다는 점에서 무인텔이 범죄 현장으로 이용되는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5월 전북 남원서 가출한 C(17·여)양을 무인텔로 유인해 집단 폭행을 가한 뒤 강제로 성매매를 시킨 10대 청소년 3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그보다 한 달 전인 4월에는 전남 순천에서 50대 남성이 가출청소년을 꾀어 무인텔로 데려간 뒤 성폭행을 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단속은 힘들지만 순찰 시 무인텔 주변을 항상 주시하고 있다”면서 “혹시 미성년자가 보일 경우 출입 금지 등의 지도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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