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만 피한 정로환 발암물질 파문

3년 전 안전성 문제 제기…여전히 사용 '충격'

2014-04-14     이범희 기자

크레오소트에 함유된 ‘크레졸’…사망할수도
식약처의 미지근한 대처…은폐 의도 있었나

[일요서울 | 이범희 기자] ‘정로환’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갈색의 환. 이상한 냄새. 하지만 아주 잘 듣는 약. 오죽하면 해외여행 좀 다녀본 사람들이 라면스프와 함께 꼭 지참하라고 권하는 약이 됐을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그런데 이 제품이 3년 전 안전성 문제로 홍역을 치렀지만 현재까지 문제의 성분을 계속해서 사용하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일부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근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3년 전 여론 악화 때 “국민의 눈만 속였다”는 비난에서 동성제약(대표 이양구)이 자유롭지 못하다.

동성제약의 기업슬로건은 “사랑하는 사람들, 건강한 사람들. 인류사랑, 人類愛(인류애)”이다. 1957년에 설립돼 의약품과 화장품 사업을 영위하는 중견 제약업체다. 대표적인 의약품으로는 정로환과 훼미닌, 세븐에이트, 버블비 등이 있으며, 화장품으로는 더커버클래식, 에이씨케어 등이 있는데 이 중 가장 유명한 게 ‘정로환’이다.

창업자 고 이선규 회장은 정로환을 만들기 위해 직접 일본에 건너가 제약 기술을 배워왔다. 제품 출시 전 이 회장은 배탈의 원인을 찾기 위해 해운대, 경포대 등 해수욕장 화장실을 뒤지며 설사 환자의 유형을 분석하기도 했다. 러일전쟁 때 일본 군인들이 사용하면서 러시아를 정벌(征露)하는데 큰 역할을 한 약이라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정로환은 출시 첫 해 매출 50억 원을 올리며 동성제약 간판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문제의 성분은 무엇

정로환의 주성분은 ‘크레오소트’외에 진피, 황련, 향부자, 감초 등으로 구성된 한약재다. 그 중 목재를 태워 만드는 크레오소트는 크레졸, 페놀, 구아이콜 등이 주성분인 페놀계 혼합물이다. 이 성분 때문에 일본은 물론 국내 일부에서도 정로환이 과연 안전한 약인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예전에는 살균제, 지사제 등으로 사용됐으나 안전성 문제로 현재는 거의 사용되고 있지 않거나 일부 국가에서 나무 방부제로 사용하고 있다.

크레오소트에 포함된 페놀도 급성 독성 증세로 불규칙한 호흡, 근육약화와 경련, 경기, 혼수, 호흡 정지 등을 일으킬 수 있다. 또 페놀과 다른 화합물들을 흡입, 피부 노출시켰을 때 간 효소 수치 상승, 간 비대 등의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고 건강한사회를위한약사회(이하 건약)는 설명한다.

정로환에 사용되는 또 다른 성분 중 하나인 크레졸 또한 미국 환경보건청(EPA)에서 지정한 발암성물질이다. 섭취 시 심각한 위장관 손상을 일으킬 수 있고, 심지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유럽연합(EU) 역시 독성, 부식성으로 분류했다. 크레졸의 최소위해수준(MRL)은 0.1mg/kg/day(65kg 성인기준)로 정해져 있다. 건약측의 지적에 따르면 정로환을 용법대로 복용할 때 크레졸 MRL을 7~10배 정도 초과할 수 있다.

건약 측 관계자는 [일요서울]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식약처도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3년 전 내용이 재생산되는 이유에 대해선 잘 모르겠지만 성분에 문제가 있는 것은 맞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크레오소트는 정상세포도 사멸시키는 강력한 살균제”라며 “지사제의 경우 크레오소트를 대체할 수 있는 탑닌산염 같은 성분들이 있음에도 교체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한다.

2011년 3월에도 건약 측이 이 같은 설명을 덧붙여 정로환의 안전성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정로환의 안전성 여부를 검토한 식약처 중앙약사심의위원회는 2011년 7월 허가사항의 일부 내용을 추가·변경하는 선에서 그쳤다. 여러 문헌을 재검토한 결과 크레오소트에 함유된 발암성분인 크레졸에 대한 자료가 없어 판단이 힘들고, 정로환이 타 지사제에 비해 효과가 빠르다는 이유에서였지만 독성정보에서는 ‘발암물질’로 규정한다.

동성제약측은 당시 건약이 정로환에 대한 안전성 문제를 지적하자 성분 교체 의사를 내비쳤지만 여론이 잠잠해진 틈을 타 유야무야 넘기고 그대로 사용하다 최근 또 다시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수많은 약물 중에는 미량의 발암의심물질이 첨가된 경우가 많다”며 “특히 한약제 혼합물들은 성분을 정확히 분석하기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로환에는 크레오소트 44.4㎎이 들어가 있지만 크레졸이 얼마나 함유됐는지는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덧붙였다.

하지만 건약 측은 “누구나 손쉽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약일수록 더욱 안전해야 하고 그것을 약속할 책임은 제약사와 식약처에게 있다”며 제대로 된 정로환 재평가가 필요함을 촉구했다.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