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새판 짜기…이재용에 시선집중
소재 넘긴 이서현 건설ㆍ화학 불투명한 이부진
지배구조ㆍ후계구도 변환 vs 유사업종 통합ㆍ수익성 강화
전자ㆍ화학부문 수직계열화 이뤄…건설ㆍ금융부문 남아
현재 웃는 자는 이재용…앉아서 챙긴 핵심사업 ‘쏠쏠’
관건은 삼성물산?…이부진 주식매집 땐 3세 경영자 바뀌어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삼성이 계열사들을 쪼개고 합치면서 전면적인 사업재편에 나섰다. 문제는 순환출자구조인 삼성그룹이 계열사들의 합병과 지분매입 등으로 전체적인 지분구조가 약간씩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 측은 부인하고 있지만 이는 곧 ‘이재용의 전자, 이부진의 건설ㆍ화학, 이서현의 패션ㆍ광고’라는 공식이 다소 깨지면서 후계구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결국 삼성이 차세대동력으로 꼽는 소재와 기존의 캐시카우인 전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몰린 반면 건설의 향방은 불투명해지면서 편중된 3세 경영이 될 공산도 존재한다.
삼성은 지난해부터 삼성SDS, 삼성에버랜드를 각각 합병과 부문 인수 등으로 키웠다. 삼성SDS에는 삼성SNS를 편입시켰고 삼성에버랜드에는 제일모직 패션부문을 인수시켰다. 또 올해 들어서는 지난달 31일 남은 제일모직을 삼성SDI에 합쳤고 이달 2일에는 삼성석유화학을 삼성종합화학에 합병시켜 시장을 놀라게 했다.
쪼개진 제일모직 에버랜드-SDI로
현재 삼성은 이건희 회장의 삼남매가 각각 고유부문의 지분을 확보하고 일부 계열사의 경우 경영에도 참여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자는 이재용, 건설ㆍ화학은 이부진, 패션ㆍ광고는 이서현이라는 영역분류가 공식처럼 굳어져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업재편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각자의 영역분류가 조금씩 어그러지면서 후계구도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특히 이서현이 이끌던 제일모직이 삼성에버랜드에 패션부문을 넘길 당시와 비교해 제일모직을 삼성SDI에 흡수합병하는 현재는 무게 자체가 다르다.
또한 제일모직에서 패션을 떼어 내고 차세대 동력인 소재를 키우겠다고 선언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흡수합병 발표로 거대한 소재기업을 탄생시킨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삼성은 지난해 연말 사장단 인사에서 이서현 당시 제일모직 부사장을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사장으로 승진시킴으로써 이를 준비한 셈이다. 결과적으로 이서현 사장은 패션과 소재를 함께 갖고 있다가 패션을 분리한 후 모체는 소재와 함께 오빠인 이재용 부회장에게 넘긴 셈이 됐다.
더불어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경우 호텔을 포함해 건설ㆍ화학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돼 왔다. 하지만 삼성석화가 삼성종화로 흡수합병되면서 이부진 사장의 삼성석화 지분은 희석돼 다소 낮아지는 모양새다. 원래 이부진 사장은 삼성석화의 최대주주였으나 합병된 새 법인에서는 6대주주로 내려앉는다.
또 제일모직이 삼성SDI에 흡수합병되는 것도 삼성석화에 대한 이부진 사장의 영향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제일모직이 삼성석화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삼성SDI에 합쳐지면서 이마저도 희석되는 효과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삼성SDI가 커지는 것으로 반사이익을 보는 쪽은 이재용 부회장이다. 삼성전자는 삼성SDI의 최대주주인데 삼성 삼남매 중 삼성전자를 보유한 사람은 이재용 부회장뿐이다. 여기에 함께 커지는 삼성종합화학의 3대주주는 삼성SDI인 점을 감안하면 이와 같은 그림이 뚜렷해진다.
석화끼리 통합…그룹 내 지배력 강화하는 계열사는
이처럼 삼성의 계열사 새판짜기가 가속화되면서 이번에는 어떤 계열사가 통폐합 대상으로 떠오를지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바로 직전 손댄 계열사가 전자-소재, 화학-화학인 만큼 이제는 건설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힘을 받고 있다. 삼성그룹 내 건설ㆍ토목부문을 갖춘 계열사로는 삼성물산, 삼성중공업, 삼성엔지니어링 등이 있다.
특히 삼성물산의 경우 삼성 순환출자고리의 핵심으로 꼽히는 만큼 삼성물산이 삼성엔지니어링을 흡수합병하는 시나리오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삼성물산의 최대주주가 국민연금을 제외하면 삼성SDI인 탓에 이재용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이 더욱 커지게 된다.
앞서 재계에서는 삼성물산이 건설ㆍ화학부문의 이부진 사장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이번 사업재편으로 삼성물산의 향방이 이재용 부회장 쪽으로 쏠릴 개연성이 포착되면서 새로운 시나리오들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즉 이제는 ‘이부진의 건설ㆍ화학’도 장담할 수 없게 되면서 이재용 부회장의 영역이 어디까지 넓어질지가 관전포인트로 굳어진 형국이다.
물론 아직 변수는 많이 남아 있다. 만약 이부진 사장이 삼성 계열사가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 매집에 나서면 순위가 뒤바뀔 수 있다. 또 금융부문의 경우 현재까지는 이재용 부회장에게 넘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우위를 점하고 있으나 이 역시 장담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삼성그룹 내 금융부문은 삼성생명을 비롯해 삼성화재, 삼성증권, 삼성카드 등이 있다.
이와 관련해 삼성 관계자는 “이번 사업재편은 어디까지나 유사업종 통합과 수익성 강화 측면에서 이뤄진 것이며 후계구도와는 관계가 없다”면서 “향후 사업재편 역시 현재까지 확실한 것은 없으며 건설ㆍ금융부문 등에 대해서도 나온 바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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