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야, 대학이야?”

‘군기 논란’에 휩싸인 체대

2014-04-07     이지혜 기자

군기 잡기 폭로한 후배 집 앞 찾아가 “도끼로 찍고 싶다”
체대 교수 성폭행 논란 “윗물이 더러우면 아랫물도 더럽다?”

[일요서울 | 이지혜 기자] 사학 비리, 성추행 논란으로 흔들렸던 상아탑이 이번에는 체대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체대의 신입생 ‘군기잡기’가 그 모습을 쏙쏙 드러낸 것이다. 자유롭게 시간표를 만들 수 있는 대학에서 ‘주5일 등교’를 강요하고, 복장·화장 등까지 규정하는 모습을 보면 ‘대학’인지 ‘군대’인지 헷갈릴 정도다. 이러한 행태는 여대도 다르지 않다. 그 와중에 체대로 이름 높은 용인대에서는 교수가 학생을 성폭행하는 사건까지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체대의 현주소를 집중 조명해봤다.

지난 2월 서울 소재 S대학교 ‘생활체육학과 규정’을 담은 A4용지 한 장의 사진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규정에 따르면 인사법은 “안녕하십니까. OO대학교 생활체육학과 14학번 OOO입니다”로 정해져있었다. 말투는 다나까만 사용할 수 있으며 ‘요’자는 사용 금지다. 뿐만 아니라 ‘압존법 사용’, ‘전화예절(선배가 먼저 전화 끊기 전까지는 전화 끊지 않기)’, ‘용의복장(염색·파마 금지, 지퍼·단추 끝까지 채우기·츄리링 금지·크로스백 금지)’, ‘여자 용의복장(화장금지, 머리 묶기, 반바지·악세사리·밝은 색 바지·속눈썹 연장·구두·치마·매니큐어·고데기 금지)’, ‘엘리베이터 타지 않기’ 등이 명시돼 있다.

이것저것 다 ‘금지’
“과 전통 훼손하고 있어”

이러한 내용이 담긴 규정이 공개되자 비판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규정이 너무 심하다며 ‘군대’인지 ‘대학’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라는 의견도 나왔다. 논란이 증폭되며 비판글이 홈페이지 게시판을 가득 채우자 해당 학과는 홈페이지에 “무심코 던진 돌이 여러분들에게 고소장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그만해달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과 측은 “우리 과의 전통을 훼손하고 있다는 것을 꼭 알아줬으면 좋겠다”면서 “(규정을) 최초 유포한 학우에 대해서 조사를 의뢰해 놓은 상태이다. 과대에게 자수한다면 징계는 최소한으로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비판적 여론에 대해 ‘과 전통이며 우리는 당당하다’는 입장을 보인 것이다. S대학에 대한 여론이 채 식기도 전에 이번에는 경기도에 위치한 K대에서 한 학생이 체육학과의 규칙을 공개했다.

K대 역시 ‘다나까 사용’과 ‘매일 출석체크’, ‘복장 규정’이 요구됐다. 또 ‘명찰 차기’. ‘사탕·껌 금지’, ‘(겨울에도)주머니에 손 넣기 금지’, ‘캠퍼스 내에서 웃고 떠들기 금지’, ‘기합 받을 때 전방 15도 유지’ 규정도 있었으며 이는 학교 내에서 뿐만 아니라 인근 지하철 정류장까지 적용됐다.

여대도 마찬가지, 집 앞으로 찾아가 협박도

해당 학생은 “개강 첫 주 내내 오후 12시부터 1시까지 ‘화합의 장’이라는 명분으로 기합을 받았다. 개강 셋째 날 기합시간에는 구타까지 있었다. 새내기 교육을 똑바로 시키지 못한다는 이유에서 13학번 학생회 선배들이 엎드린 상태로 고학번 선배에게 걷어차였다”고 폭로했다.

체대의 군대식 ‘군기논란’은 군대를 가지 않는 여학생들이 모인 여대도 마찬가지였다. S여대 신입생이 공개한 규정은 위에 언급했던 S대와 K대의 규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추가로 1학년 신입생들에게 학교생활에 충실하라는 이유로 아르바이트를 금지시켰다.

S여대 학생인 김모(21·여)씨가 “학교 근처 버스정류장에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몇 미터 거리에서부터 ‘선배님 안녕하십니까’하면서 달려오기에 조폭인 줄 알았다”고 말할 정도다. 누리꾼들의 비난이 이어지자 S여대 측은 범인 잡기에 나섰다. S여대 신입생은 “선배들이 유포자의 컴퓨터 IP주소를 통해 접속한 지역을 찾고 후배들의 집주소를 뒤지고 있다”며 “나도 공동체를 해한 범인으로 몰리면 어떻게 될지 너무나 두렵고 무섭다”고 말했다. 이 학생이 올린 모바일 메신저 대화내용에는 S여대 고학번들이 ‘결국 최초 유포자는 여기 있다는 거지’, ‘내가 경찰서에 가는 한이 있어도 찾아낸다’, ‘아이피주소 인증해라’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D여대 생활체육학과는 다른 학교들과 마찬가지인 규정들을 학교에서 2km넘게 떨어진 지하철역까지 지켜야 한다. D여대는 폭로한 신입생의 집 앞까지 선배들이 찾아간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있었다. 특히 이들은 신입생의 집으로 가면서 자신들의 SNS계정에 “OOO(신입생)을 도끼로 찍어버리고 싶다”는 글까지 올려 충격을 줬다. 이에 해당 신입생은 “선배들이 집주소를 어떻게 알았는지 진짜 집 앞까지 찾아왔다”며 “자퇴하러 학교는 어떻게 가나 무섭다”고 말했다.

용인대 성폭행 논란 “눈 떠보니 모텔이네”

‘군기잡기’로 체대가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가운데 용인대학교에서 무도대학 교수가 자신의 제자를 성폭행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1월 무도대학 A교수가 자신이 지도했던 학생과 함께 술을 마신 뒤 인근 모텔로 데려가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학교 측은 지난달 11일 A교수에게 경위서를 제출받았고, 24일 인사위원회를 열어 해당 교수의 직위 해제를 결정했다. 현재 A교수는 성관계를 맺은 사실은 인정하지만 강제가 아닌 합의하에 이뤄진 관계라고 주장하며 변호사를 선임해 재판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용인대에서는 지난해 10월에도 무도대학 교수가 학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법원으로부터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은 일이 있었다.

이에 대해 용인대 4학년에 재학 중인 나모(25·여)씨는 “체대 문제를 지켜보니 한숨이 나온다”라며 “윗물이 더러우니 아랫물도 더러운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체대의 군기문화의 원인과 대책은 무엇일까. 이창섭 체육개혁을 실천하는 교수연대 대표는 지난 4일 [일요서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많이 개선되고 있는 상태”라며 “노력과 시간이 투자되면 점차적으로 남은 잔재들까지 해소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체대생들은 운동이라는 매개체로 맺어진 인간관계”라며 “운동의 특성상 상해위험이 있고, 운동효과를 올리기 위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군대식 문화가 자리 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예전에는 문제되지 않았던 부분들이기 때문에 일종의 고착화가 됐지만 지금은 굉장히 많이 개선됐다”라며 “아주 조금 남아있는 잔재들이 부각된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지도자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인식 개선으로 인해 군대식 문화가 많이 사라진 것”이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면 완전히 (군대문화가)없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jhook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