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로부터의 훈풍에 겨울 견딘다”

2004-12-28     이인철 
최근 정치권에 합당론이 다시 수면위로 급부상하면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관계에 훈풍이 불고 있다. 열린우리당 내 민주당 출신인사들이 중심이 돼 합당론을 제기하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 내부에서도 동의하는 세력이 상당수다. 점점 고조되고 있는 합당 분위기에 정치권 못지 않게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이 서울 구치소에 수감중인 민주당 출신 범털들이다. 양당사이에 불고 있는 훈풍이 자신들에게까지 미치길 바라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 출신 범털의 옥중생활 현주소를 짚어봤다. 불법 정치자금문제로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민주당 범털들은 최근 정치권의 사면논의가 수면위로 급부상하면서 따뜻한 봄날을 고대하고 있다. 이같은 기대는 여권은 물론 한나라당 박계동 의원이 대정부질의 과정에서 사면을 주장했고, 민주당 한화갑 대표가 청와대 영수회담 말미에서 노 대통령에게 직접 대사면 건의를 하는 등 일련의 과정이 수감생활 중인 이들에게 희망을 던져주고 있는 것. 이러한 가운데 몇몇 범털들은 건강에 문제가 생겨 힘겨운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게 권노갑 전고문이다.

권노갑 수술위해 병원행

권노갑 전고문은 그동안 무죄를 주장해 왔지만, 최근 대법원으로부터 유죄가 확정됐다. 그러나 70이 넘은 고령에 당뇨와 녹내장이 생겨 고생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 때문에 권 전고문은 병치료를 위해 지난 15일 서울시내 모병원에 입원했다. 동교동계 출신 김태랑 전의원은 “어제(15일) 권 전고문이 염동연 의원과 내게 전화를 했다”며 “권 전고문이 ‘치료를 위해 서울의 한 병원에 나와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 전의원은 “권 전고문이 ‘그 동안 여러 가지로 신경 써 줘서 고맙다’는 뜻을 전했지만 신경을 써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아 많은 도움은 못 주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실제 권 전고문의 건강상태는 심각한 상태다.김 전의원은 “당뇨로 인해 발톱이 다 빠졌고 지난번에 한 쪽 발톱 5개를 수술했다”며 “이번엔 다른 한 쪽 발 톱 5개를 수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발뿐만 아니라 눈도 많이 나빠져 수술을 받아야 할 지경에 놓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권 전고문은 대법원의 확정판결에도 불구, 여전히 김영완씨와 관련된 혐의는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는 전언이다.

박지원도 입원중

박지원 전실장의 경우도 건강상의 이유로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한쪽 눈이 의안인 가운데 나머지 한쪽 눈까지 녹내장이 악화돼 실명위기까지 갔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이 무죄취지로 판결해 고무돼 있는 상황이다. 고법의 파기환송심을 기다리고 있는 박 전실장은 이 때문인지 세브란스 병원 주위를 산책하는 모습이 관찰돼 여유를 조금 찾은 모습이다.

정대철, ‘청와대에 섭섭’

반면 윤창열 게이트사건으로 구속돼 2심까지 유죄가 확정된 정대철 전의원은 심기가 불편한 상태다. 정 전의원은 윤창열씨가 정 전의원 부인에게 직접 양심선언을 하는 등 1심과 달리 2심에서 진술을 번복해 내심 무죄판결까지도 기대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윤씨의 양심선언에 아랑곳하지 않고 유죄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법원의 최종판결까지 가게 됐다. 동교동계 출신 열린우리당 핵심인사는 “병원과 구치소에 있을 때 면회를 다녀왔다”며 “심적으로 많이 억울해 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어려울 때 노무현 시대를 열었던 주역중 한 분”이라며 “하지만 영어의 몸이 돼 있어 답답해한다”고 말했다. 2심 재판을 앞두고 정 전의원을 면회했다는 민주당소속 한 전직의원은 “본인이 많이 억울해하고 있었다”며 “청와대가 자신에 대해 너무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게 아니냐며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최근 정치권에선 정 대표에 대한 탄원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김태랑 전의원은 “현직의원들과 행정부쪽 인사들, 그리고 정 전대표의 옛 동지들이 서명을 받아 사법부에 탄원서를 제출하려고 해 나 역시 서명을 한 상태”라며 “비록 탄원서 제출이 옛날 방식이긴 하지만 옛 동지들 마음은 정 전대표에게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라도 할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훈평 전의원은 형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다. 이 때문에 대개 법원으로부터 형을 확정받으면 교도소로 옮기지만 구치소에 계속 남아 있다. 최근 면회를 다녀온 동교동계 출신의 한 인사는 “이 의원은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다 내 탓’이라며 ‘여기서도 배울 거 많고 몸도 건강하고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편 구 민주당 출신 전직 의원 한 명은 이번 성탄절 특사로 나올 것이란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내년 3월’ 사면설

불법대선자금 및 정치자금수수로 구속됐던 정치인들에 대한 정치권의 사면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한나라당 박계동 의원이 대정부질의 과정에서 정치인 대사면을 거론한데 이어 민주당 한화갑 대표도 청와대 여·야영수회담 말미에 노무현 대통령에게 직접 사면 건의를 했다. 이같은 분위기는 여권 내부에서도 감지된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하지만 대부분의 구속된 정치인들이 한 시대를 마감하는 분들”이라며 “사법부가 이런 점을 고려해 매듭지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구속된 분들을 일괄정리할 필요가 있다”며 “그 분들의 여태까지의 공과를 고려하고 기존의 잘못된 정치행태에 대해 정치권이 국민들에게 진심어린 용서를 구하고 대통령이 사면해줄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는 “늦어도 내년 3월 특사에는 수감중인 정치인들을 내보내고 대북송금특검으로 처벌받고 있는 DJ 정부시절 남북관계 핵심들을 사면해 줘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청와대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게 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러한 가운데 청와대와 여권 수뇌부의 최근 움직임은 사면논의가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김우식 대통령비서실장을 비롯해 정동영 장관, 김근태 장관, 정동채 장관, 김원기 의장, 문희상 의원 등이 박지원 전실장과 권노갑 전고문 등을 문병하고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현정부 실세들이 잇따라 문병하고 온 점은 인사차원일 수도 있지만 정부의 사면논의가 진행중임을 시사하는 게 아니겠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