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암물질 먹고 사고 위험 속 비행기 탄 군인들

군수품 납품 비리 어디까지

2014-03-24     오두환 기자

브레이크 디스크 불량, 비행기 사고로까지 이어질 수도
군대에서는 군인들이 불량 부품인지 확인할 길도 없어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군대에서 사용하는 총포, 탄약, 미사일, 함정, 비행기, 식량, 피복 등을 총칭해 군수품이라 부른다. 모두 다 전쟁 시에 필요한 물품들로 군인들에게는 생명, 국가에게는 국방력과 직결되는 것들이다. 이러한 군수품들은 전시든 아니든 철저히 관리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군수품들은 관리는커녕 비리의 온상이 되고 있다. 지난 17일 국방기술품질원(이하 기품원)에서는 최근 7년간 납품된 군수품 관련 공인시험성적서를 검증한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241개 업체에서 2,749건의 위·변조 성적서를 적발했다.

위·변조된 성적서로 납품된 군수품들은 최초의 국산헬기 수리온, 육군의 차기 주력전차 K2 흑표전차, 공군 주력기인 KF-16, 함정 등 최고급 무기에 들어가는 부품들이었다. 또 군인들이 먹는 고추 기름, 미트볼, 카레가루부터 전투복, 전투화, 모자, 낙하산에 이르기까지 군수품 거의 모든 항목이 포함됐다. 우리나라 군대가 ‘짝퉁 부대’라는 오명을 쓸 만큼 다양한 군수품들이 불량으로 드러났다.

고추 기름부터 전차, 비행기 부품까지

기품원은 이번 검증을 군수품 납품의 비정상적인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실시한 지난해 11월 1차 검증의 후속 작업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기품원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큰 이슈가 됐던 한수원 원전비리 사태 이후 내부에서 국방부에 납품되는 군수품에도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돼 본격적으로 검증작업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기품원 발표에 따르면 기동화력 장비와 부속류에 납품된 부품의 위·변조가 2,465건으로 전체의 89.7%에 달했다. 대부분 고무류, 가스켓류, 브래킷(지지 구조대), 볼트, 필터류 등이다. 소모성 부품에 해당하는 부품들이지만 불량 소모성 부품으로 해당 기동화력 장비를 장기간 운용할 경우 장비 내구성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가장 많은 불량 부품이 사용된 무기는 장갑차 K-21이다. 총 268건의 부품 시험성적서가 위·변조됐다. 자주포 K-9은 197건, 차기 전차 K-2 흑표는 146건이다. 수리온에는 불량 와이퍼 기어가 사용됐다. 장기간 운용 시 내구성에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공군의 주력 전투기인 KF-16에는 성능은 물론 안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브레이크 디스크의 성적서가 조작됐다.
해군 무기체계 중에는 울산급 차기 호위함(2,300톤)에 사용된 펌프 주물 제품 등이 성능 및 내구도에 영향을 미치는 불량 부품인 것으로 드러났다.

장병 급식 재료의 경우 장류와 소스류, 가공 식품 등에서 27건의 성적서 조작 사실이 확인됐다. 특히 고추 기름은 세계보건기구가 유해 물질로 지정한 벤조피렌이 기준치(2.0)를 초과했다. 벤조피렌은 암을 유발하는 물질이다.

국방부는 이번에 적발된 시험성적서 위·변조 품목은 위험도가 낮은 비핵심 품목이고, 핵심 품목은 기품원이 직접 품질검사를 하기 때문에 국산무기의 품질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기품원도 아직까지 불량 부품으로 인한 장비가동 중단 등의 결함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제는 비핵심 부품이나 원자재라도 규격에 미달하는 제품을 쓰면 장비의 내구성과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수십억 원짜리 전차도 불량 볼트 하나 때문에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취재진은 실제 부품들이 군장비에 사용될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군 출신 관련자들을 수소문 해 봤다.

조종사 출신의 한 예비역 장교 김모씨에 따르면 “브레이크가 없으면 비행기를 세울 수 없다. 착륙 시 브레이크가 감속시키는 역할을 한다. 자동차와 같다. 브레이크는 아주 중요하다. 브레이크가 고장 나면 자동차보다 위험하다. 브레이크 디스크가 깨지면 활주로를 벗어날 수도 있다”며 “브레이크 디스크 불량으로 사고가 난 적은 없다. 하지만 브레이크 디스크는 열에 민감하다. 무게가 많은 비행기일수록 더. 게다가 전투기는 자동차와 달리 브레이크 디스크를 패드가 잡는 방식이 아니라 디스크끼리 압착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브레이크 디스크가 불량이라면 충분히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밝혔다.

가평에 있는 A부대에서 직접 장갑차를 몰았던 권모씨는 “군인들 입장에서는 불량품이 들어와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대로 사용할 뿐이다”라며 “한번은 엔진오일이 없는데 장갑차를 기동해서 엔진이 들러붙은 경우가 있었다. 장갑차는 멈춰섰고 그러던 중 검열이 나왔다. 어떻게 했는 줄 아나. 다른 장갑차와 번호판을 바꿔 달고 눈속임으로 검열을 넘겼다. 군대가 이런 곳이다”라고 말했다.

또 “양압장치가 고장난 경우도 있었다. 당시 양압장치 고장 사실을 사단에만 보고 했다. 그러던 중 자이툰으로 군수품을 보내게 됐었다. 수송관이 선택한 장갑차가 방금 말했던 엔진이 들러붙고 양압장치가 고장난 장갑차였다. 정말 이 장갑차를 보내냐고 했더니 장갑차가 가는 게 아니고 차대만 가는 거라며 정비대에서 새 걸로 바꿔 보내니 괜찮다고 해 보냈던 적도 있다”고 전했다.

권씨에 따르면 당시 장갑차 속 엔진은 사고차량이나 폐기차량 속 엔진을 떼어와 임시로 살려만 놓은 상태였다고 한다. 당연히 장갑차의 엔진상태가 정상은 아니었다. 권씨는 군대 내부에서도 이 정도인데 납품하는 업체들의 비리는 더했을 것이라는 반응이다.

방산마피아 커넥션 밝혀질까

기품원은 시험성적서 위·변조 결과를 발표하고 해당 기업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총 241개 업체 중 141개 업체가 고발조치됐으며 나머지 100개 업체도 이달 중 검찰에 고발할 예정이다.

이번 조사결과 특이한 점은 중·소 협력업체에 의한 성적서 위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 특히 상위 3개 업체에 약 62%의 위·변조가 집중됐다는 사실이다. 기품원 발표 결과에 따르면 휠터류를 납품하는 A업체가 1,185건, 고무제품을 납품하는 B업체가 333건, 브라켓류를 납품하는 C업체가 178건의 공인시험성적서를 위·변조했다.

검찰은 이점에 주목하고 있다. 기품원이 성적서 조작을 묵인해온 것은 아닌지. 방위사업청과 기품원을 포함해 군수 당국과 방산업체들 간에 광범위한 비리 커넥션이 있지 않은지. 그렇지 않고서는 오랜 기간에 걸친 이러한 비리가 밝혀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큰 문제가 됐던 원전비리 때와 유사한 상황이다.

조사는 검찰에서 하겠지만 해당기관들도 보완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이번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몇몇 업체들이 각종 군수품 납품을 장기간 독과점해온 구조도 뜯어 고쳐야 한다. 경쟁 시스템 도입은 필수다. 군 출신 인사의 방산업체 취업을 제한하는 것도 필요하다.

군수품의 납품 구조를 더욱 투명화하고 품질관리 시스템도 강화해야 한다. 다행히 기품원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공인시험기관 간 협업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원본 공인성적서 확인을 통한 위·변조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다. 이미 2월 12일 시험의뢰 빈도가 높은 FITI 시험연구소 등 23개 기관과 MOU를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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