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여제 박인비, 그랜드 슬램을 향한 트라이앵글 완성
전년 우승 부담감 떨치고 시즌 3회 출전 만에 우승
든든한 조력자 남기협 코치와 결혼, 사랑도 청신호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지난해 그랜드 슬램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시즌을 마감했던 골프여제 박인비가 올 시즌 3번째 출전 만에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에 박인비는 48주째 세계랭킹 1위의 우위를 점하며 새 시즌 그랜드 슬램 도전에 청신호를 켰다. 여기에 한국선수 최초로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체육훈장을 받았다. 오는 9월 약혼자 남기협 스윙코치와 웨딩마치를 올릴 예정이라고 밝혀 박인비 선수에게는 2014 시즌이 겹경사로 이어질 전망이다. 세계 정상의 여자 프로골퍼 박인비의 자신감을 만나본다.
세계여자프로골프 랭킹 1위인 박인비는 지난 13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란포 미라지 미션힐스골프장에서 열린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미디어데이 행사에 전년도 우승자 자격으로 참석했다.
그는 “올해의 목포는 그랜드 슬램”이라며 “지난해 놓친 브리티시오픈에서 꼭 우승해 커리어그랜드 슬램을 하겠다. 또 지난해 못한 그랜드 슬램도 달성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면서 “일단 첫 메이저대회인 나비스코 챔피언십부터 우승해야지 않겠나”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박인비는 올림픽에 대한 욕심도 냈다. “올림픽 금메달은 골프선수로 최대의 목표”라며 “올림픽에 국가대표로 나간다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고 자부심과 함께 책임감도 느낀다. 지난 중국 대회에서 올림픽에 대한 대비를 어느 정도 마쳤다”고 말했다.
올해의 선수상에 대해서는 한 번 해봐서 욕심이 덜 하다면서도 “시즌 끝날 때 세계랭킹 1위는 꼭 지키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이를 위해 박인비는 동계 훈련 때 체력훈련에 집중했다며 “전에는 대회만 뛰면 됐는데 지난해에는 각종 언론 인터뷰와 행사에 많이 불려다녔다. 그러다 보니 힘이 부쳤다”면서 “올해는 후반까지도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몸을 만드는 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수잔 페테르센과 스테이시 루이스를 경쟁자로 뽑은 그는 “이 두 선수가 있어서 내 골프도 발전한 것 같다. 서로에게 고마운 존재”라며 “압박감 없이 경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늘 압박감을 받지만 그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지난해만큼 큰 압박감은 처음이었다. 좋은 경험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인비는 올 시즌에 대해 부담감을 벗고 선수 본연의 자세에 충실하겠다고 밝히면서 그랜드 슬램 달성에도 청신호를 켜고 있다. 지난 9일 중국 하이난성 하이커우 미션힐스 골프장 블랙스톤 코스에서 열린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 월드레이디스 챔피언십 대회에서 최종 4라운드에서 6타를 줄이며 최종합계 24언더파 268타를 기록하며 우승을 목에 걸었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는 라이벌인 수잔 페테르센과 맞대결을 펼치는 부담 속에서도 박인비의 퍼팅이 빛을 발하며 페테르센의 추격을 여유있게 뿌리쳤다. 세계 1위의 위엄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컴퓨터 퍼팅, 감각과 노력 둘 다 갖춰
박인비의 컴퓨터 퍼팅은 정확하기로 유명하다. 흔히 퍼팅을 잘하는 비결로 크게 두 가지를 꼽는다. 첫 번째는 타고난 감각이거나 두 번째는 노력의 결과이다. 이중 선수들은 감각에 더 치중한다.
박인비 역시 퍼팅에 필요한 탁월한 감각을 소유하고 있다. 그의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손재주가 퍼팅의 달인으로 만든 비결 중 하나라는 게 측근의 설명이다. 박인비의 아버지 박건규 씨는 “할머니의 손 감각이 매우 좋다. 바느질 솜씨도 좋고 뜨개질도 잘 하셔서 집안 식구들의 옷을 만들어 주실 정도였다”며 “아무래도 인비가 할머니의 그런 손재주를 물려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선천적인 감각을 제쳐두더라도 박인비의 퍼팅은 다른 선수들과 확연히 구분된다. 먼저 퍼팅하는 동안 헤드가 지면으로 최대한 낮게 이동할 수 있도록 유지하고 있다. 또 타고난 거리 조절 능력으로 오로지 눈으로만 거리를 확인한다.
여기에 그립을 쥘 때 힘의 세기를 절반으로 줄여 손 감각을 높인 점도 박인비의 비결이다.
이러한 박인비의 퍼팅 감각이 살아나면서 박인비의 세계 1위 장기집권은 힘을 얻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 1, 2라운드 평균 퍼팅수는 30개가 넘었다. 하지만 3, 4라운드 평균 퍼팅수는 25.9개를 기록해 지난해 메이저 3승을 포함해 시즌 6승을 올릴 때의 평균 퍼팅수 25개와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 정상을 만들어낸 든든한 조력자
박인비뿐만 아니라 그의 곁을 지키고 있는 두 남자가 세간의 화제로 떠올랐다.
박인비의 약혼자이자 스윙코치인 골프선수 남기협(33)씨가 세계랭킹 1위를 만들어낸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박인비는 2008년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뒤 4년여간 슬럼프에 빠졌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는 남기협 코치를 만난 뒤 점차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남 코치는 현재 박인비와 투어에 동행하며 매니저부터 스윙코치까지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결국 투어를 뛰는 박인비는 마음 편히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어 경기력을 한층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는 LPGA투어에서 뛰고 있는 한국선수들이 박인비를 부러워하는 이유기도 하다.
이 같은 부러움은 LPGA 투어에 남자친구나 애인이 동행하는 골프커플이 속속 등장하는 이색광경을 낳았다.
이미 박인비는 지난 10일 약혼자 남 코치와 올 가을 시즌 다섯 번째 메이저대회인 에비앙 챔피언십(9월 11~14일)이 끝난 뒤 9월 또는 10월 중 웨딩마치를 올릴 예정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박인비는 “당초 2014시즌이 끝난 뒤 한국 골프장에서 결혼식을 할 생각이었으나 날씨가 추워 하객들에게 불편을 끼칠까봐 시즌 중 결혼식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신혼여행지는 몰비드로 정했다”면서 예비신부의 수줍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박인비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페테르센도 올해부터 남자친구와 투어를 함께 하고 있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올해 바뀐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남자친구가 생겼다”라고 밝혔다.
페테르센의 남자친구인 크리스찬은 스키선수 출신의 프로지망생으로 페테르센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외조를 펼치고 있다.
이 덕분인지 페테르센이 부쩍 얌전해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는 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클럽을 내팽개치던 돌발행동을 보였으나 남자친구와 투어를 시작하면서 부쩍 줄어들었다.
지난해 말 미국대표 여자 골프스타 폴라 크리머도 비행기 조종사와 약혼을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크리머는 2010년 US여자오픈 우승 이후 3년 가까이 우승 소식을 전하지 못하다가 지난 2일 끝난 HSBC위민스 챔피언스에서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려 사랑의 힘을 과시하기도 했다.
남 코치뿐만 아니라 박인비를 만든 또 한 남자는 바로 박인비의 캐디인 브래드 비처(31)다. 그는 ‘올해의 캐디’로 뽑히는 영예를 얻었다. 특히 비처는 박인비가 슬럼프에 빠졌을 때도 그의 곁을 지켜줬다. 박인비는 비처에 대해 “최고의 조력자이자 친구”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LPGA투어 9승을 포함해 총 13승을 합작하며 최고의 파트너쉽을 발휘하고 있다. 이에 지난해 비처는 박인비로부터 인센티브만 23만 달러(약 2억4650만 원)를 받았다. 비처는 이 돈으로 호주에 새로운 집을 장만했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가문의 영광’ 체육훈장으로 함박웃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박인비의 열풍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그는 올해의 선수상 수상 공로가 인정돼 체육훈장 맹호장을 받아 함박웃음을 지었다.
박인비는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훈장수여식에서 문화체육관광부 김종 제2차관으로부터 맹호장을 받았다.
그는 “지금까지 받은 상들 중에 가장 값지다. 앞으로도 국위선양을 위해 열심히 뛰겠다”고 말했다.
박인비는 또 “아버지께서 모범 납세자 상은 받으신 적이 있는데 집안에 훈장 받은 사람은 제가 처음인 것 같다”며 “가족들이 ‘가문의 영광’ 이라고 하신다. 시즌 첫 승을 생각보다 빨리 거둬 기쁘다. 우승하고 좋은 상을 받는 겹경사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체육훈장은 체육 발전에 이바지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주어지는데 골프선수 중에는 박세리, 김미현, 최경주, 박지은, 양용은 등이 맹호장을 받은 바 있다.
올 시즌 결혼까지 앞두고 있는 박인비는 분주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커리어 글랜드 슬램 달성에 대한 각오는 남다르다. 특히 올 시즌 3번째 대회 출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우승 징크스를 벗어났다.
박인비는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 월드레이디스 챔피언십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LPGA대회는 아니지만 이번 우승은 제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면서 “US여자오픈 우승 징크스를 벗어버릴 수 있게 돼서 너무 좋다. 이제 마음 편하게 미국으로 건너가서 대회에 출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올해 샷은 물론 마음과 몸 모두 지난해에 비해 좋아졌다”며 “지난해는 사실 퍼팅 빼고는 잘 되는 게 별로 없었다. 퍼팅 하나로 버텨냈다. 하지만 올해는 모든 게 잘 되고 있다. 기대해도 좋다”며 올 시즌 맹활약을 예고했다.
특히 그는 “올해는 메이저대회 중 우승이 없는 브리티시여자오픈과 에비앙 챔피언십 우승이 최대 목표다. 지난해에 비해 홀가분한 마음으로 도전할 수 있는 게 특히 좋다”고 전했다.
지난해만큼만 행복하게, 즐겁게 치자는 마음가짐을 밝힌 박인비, “올해 되니깐 다시 욕심이 생긴다”며 다시 승부욕을 불태우고 있다. 그 욕심만큼 2014년 시즌에도 한국여자골프의 위상을 알리고 세계 정상의 기량으로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해 골프사를 새로 써내려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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