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다시 돌아온 바다이야기…

“대박의 꿈…1년에 5천 만 원 날려”

2014-03-17     이지혜 기자

30대 남성부터 70대 노인까지 “한 판 땡기자”
“CCTV·삼중문·게임 등급 분류 등 단속 쉽지 않아”

[일요서울 | 이지혜 기자] 8년 전 경찰의 집중단속으로 사라진 ‘바다이야기’로 불리는 불법 성인 게임장이 다시 돌아왔다. 주변 CCTV 설치 및 회원제 운영 등 한층 더 치밀해졌다. 경찰 단속을 피하기 위해 게임장 주변을 감시하는 알바생도 고용하는 등 지능적인 모습도 보인다. 이에 경찰이 지속적인 단속 의지를 밝혔다. 불법 성인 게임장에는 ‘대박 한 판’을 꿈꾸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부푼 꿈을 가지고 발걸음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게임으로 돈을 잃은 사람들은 “후회하기 전에 나가라”고 조언한다.

지난 12일 오후 8시께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어느 대로변, 반짝거리는 유흥업소 간판 사이로 ‘성인 게임장 황금성’ 현수막이 보였다. 2층에 위치한 게임장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담배 연기가 밀려왔다.

“오늘도 망했다” 무심히 화면만 바라봐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제일 먼저 먹다 남은 자장면 그릇이 눈에 띄었다. 먹은 지 오래된 듯한 그릇으로 보아 사람들이 오랜 시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변에는 화면에서 돌아가는 카드를 맞추는 게임기 50여 대와 30여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어서오세요~” 직원은 모두 3명으로 계산대를 담당하는 사람 1명과 게임 진행요원으로 보이는 사람 2명이 있었다. 예전에 자주 볼 수 있었던 여자 직원은 눈에 띄지 않았다. 게임장 입구에는 도박, 사행성 게임 금지라고 적혀 있었고 ‘적발 시 퇴출’이라는 문구가 붉은 색으로 강조돼 있었다. 그러나 게임 방법은 현금으로 포인트를 충전하고, 게임으로 포인트를 3만 점 이상 쌓으면 다시 현금으로 돌려주는 방법이었다. 엄연한 사행성 게임이다. 그러다보니 계산대에는 외부 CCTV화면이 여러 개 보였고, 창문에 서서 외부를 감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아 포인트 충전은 하지 않고 게임장을 둘러봤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온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하루 일당을 이곳에 쏟아부으면서 행복한 ‘한판의 꿈’을 꾸고 있었다. 게임에 집중하는 그들의 눈은 반짝였다. 그러나 이내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발을 굴렀다. “오늘도 망했다”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옆자리에는 게임기에 발을 올려놓고 잠을 청하는 사람이 보였다. 얼굴은 몹시 피곤해보였고 행색은 초라했다.

구석에 마련 된 탁자에는 5명의 사람들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 머리가 하얀 할머니도 있었다. 그들은 담배를 피우면서 가족 이야기부터 시작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하루 이틀 본 사이가 아닌 듯 친밀해 보였다. “OO형, OO누나”라는 호칭이 오고갔다.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옆에서 “벌써부터 이런 곳 들락거리면 안된다”는 소리가 들렸다. 50대 남성 김모씨는 “내 딸 같아서 하는 소리”라며 “지금은 요령피우지 말고 열심히 일해야 할 때”라고 훈계를 시작했다. 몇 달 전부터 이곳을 찾기 시작했다는 김씨는 “생활이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게임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먹고 사는게 힘들어서 받는 스트레스를 게임으로 풀고 있다며, 언젠가는 크게 돈을 따서 나갈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김씨는 “밥은 라면으로 때우며 일급을 모두 게임에 투자하고 있다”며 “한 번 (게임장에)발을 들이면 빼기 어려운 곳”이라고 말했다.

소중한 사람을 잃어 “항상 후회하고 있다”

A(41)씨는 몇 년 전 도박으로 살고 있던 집 전세금을 모두 잃었다. 동네 사람 따라 들어간 게임장에서 몇 번 돈을 따자 ‘대박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들락거린 것이다. 그렇게 잃은 돈이 1년에 5천만 원이 넘었다고 한다.

지난 13일 저녁 서울 홍대인근에서 만난 A씨는 과거 이야기가 나오자 후회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도박에 빠져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것이 가장 후회된다며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지난 2010년 그가 게임장을 다닐 무렵 그의 곁에는 결혼을 생각하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7살 어린 여자친구에게 좋은 것만 해주고 싶은 마음에 비해 가진 돈이 적었던 그에게 게임장은 ‘기회’였다. 큰돈을 따면 바로 ‘손 털고 나와서’ 결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도박에 빠진 A씨의 모습에 여자친구는 크게 실망했다. 잦은 다툼 끝에 결국 A씨는 그녀와 헤어졌다. 그 당시에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여자친구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꼭 대박나서 당당한 모습으로 다시 그녀를 찾아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대박의 꿈은 A씨를 찾아오지 않았다. A씨는 주말에 경마장까지 다니기 시작했다. 가지고 있던 돈을 다 쓰자 집 전세금까지 가져다 썼다. 1년 뒤 더 이상 쓸 돈이 없어지고 나서야 A씨는 게임장에서 발을 뺄 수 있었다.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마음을 다잡은 A씨는 착실히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좁은 월세방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더 이상 게임장을 찾지는 않는다.

A씨는 “지나가다 게임장을 보면 가끔씩 다시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면서도 “그러나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고 싶다는 꿈을 생각하며 지나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게임장을 다니는 사람들은 스스로 절제하지 못한다”면서 “돈 잃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불법 사행성 게임장은 꼭 없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고위주 단속 진행
금전적 이득·손실 ‘불법’

성인게임장에서 불법은 정확히 어떤 행위를 말하는 것일까. 게임물심의위원회에 따르면 등급을 받지 못한 게임기는 모두 불법이다. 또 금전적인 이득과 손실이 생긴다면 이 역시 불법이다.

게임물심의위원회 관계자는 “성인게임장의 불법 여부는 게임장 내 배치된 게임기가 위원회의 등급을 받은 것이냐 받지 않은 것이냐를 가지고 구분할 수 있다. 또 등급을 받았더라도 받은 내용과 다른 것을 유통한다면 이 역시 불법”이라며 “일반 국민들은 게임기의 등급 확인 여부를 알기 어렵다. 그러나 게임으로 인해 어떤 것을 얻거나, 금전적인 이득과 손실이 발생한다면 이는 등급분류 받은 내용과 다르기 때문에 불법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게임 단속에 있어서 등급 받은 내용과 일치 여부 확인은 전문성이 필요한 작업”이라며 “옛날 바다이야기처럼 상품권이나 돈이 나오면 무조건 불법이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위원회 직원의 확인이 필요하다. 그래서 현재 지방경찰청에 위원회 직원 2~3명이 파견을 나가 단속지원반을 운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경찰은 단속을 어떤 식으로 진행하고 있을까. 현재 서울 경찰은 지방청 광역수사팀과 각 경찰서 풍속단속반이 교차 또는 합동으로 진행한다.

서울경찰청 생활질서계 관계자는 “첩보가 들어오는 곳이나 112신고가 반복해서 들어오는 중복업소에 대해서 단속을 진행한다”며 “처음 신고 받은 뒤 출동하면 현장에서 단속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중복신고가 들어오면 주변 상황 등을 충분히 조사한 다음 단속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돌아온 불법 사행성 게임장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지능적으로 변해 경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사행성 게임장을 운영하는 사람들 스스로 불법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주변에 CCTV를 설치해서 사전에 단속반을 막거나, 이중문·삼중문으로 입구부터 경찰 침입이 불가하게 막는다”며 “또 게임장에 아무나 들이지 않고 자기들끼리 신분이 확실한 사람 위주로 들여보내기 때문에 단속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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