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회생 박주영, 홍명보호 골잡이 이어갈까
박주영, 홍명보 감독이 준 기회를 선취골로 화답
전지훈련서 참패한 대표팀 그리스전으로 사기 충전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벤치 신세를 면치 못하다가 극적으로 임대이적을 감행해 월드컵 출전 의지를 확고히 했던 박주영(왓포드)이 첫 소집에서 한 방으로 마무리하며 홍명보호의 갈증을 해소했다. 실전경험 부족으로 예전에 비해 다소 둔탁한 몸짓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골 결정력에서는 탁월한 인상을 남겨 축구대표팀의 해결사로 떠올랐다. 얼마 남지 않은 브라질 월드컵, 숨 가쁜 홍명보호의 여정을 살펴본다.
오는 6월 브라질월드컵 본선무대를 앞두고 축구대표팀은 지난 6일(한국시간) 그리스 아테네 카라이스카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그리스 축구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전반 18분 박주영의 결승골과 후반 10분 손흥민(레버쿠젠)의 추가골로 2-0 완승을 거뒀다.
이에 한국은 그리스와의 역대 매치 전적에서도 3승 1무를 기록하며 압도적인 우위를 지켰다.
이날 경기는 초반부터 한국팀의 무서운 기세로 주도권을 이어갔다. 특히 대표팀에 첫 합류한 박주영이 전반 18분 손흥민의 로빙 패스를 받아 논스톱 왼발 슈팅을 날렸고 곧바로 그리스 골망을 흔들면서 분위기를 압도했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박주영-구차철(마인츠)-손흥민-박주영으로 이어지는 연계플레이가 펼쳐진 점은 놀라웠다. 그동안 대표팀 공격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여기에 손흥민이 후반 10분 역습 상황에서 넣은 두 번째 골 역시 대표팀 에이스임을 입증하기에 충분했다. 당시 구차철은 그리스 수비수들의 느린 발을 간파하고 손흥민을 향해 공간 패스를 넣었다. 이에 손흥민은 각도가 크지 않았음에도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득점에 성공했다.
박주영 선취골로 비난화살 해소
이번 평가전의 관심사는 단연 박주영이었다. 그간 그를 놓고 회의론까지 나돌며 홍 감독의 집착에 가까운 실험에 대해 우려섞인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박주영이 전반 18분 만에 골을 터트리며 비난의 화살을 한순간에 무마시켰다.
이로써 박주영은 2011년 11월 11일에 열린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월드컵 아시아예선 이후 무려 846일 만에 A매치 득점포를 쏘아 올리며 축구대표팀의 주전자리를 확고히 했다.
그간 대표팀 발탁을 놓고 논란이 됐던 박주영은 드라마 같은 반전의 역사를 걸어왔다. 어린 시절 축구천재로 불리며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던 그는 신인시절 K리그 무대를 휩쓸었다. 이어 유럽무대까지 거침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유럽에 진출하면서 극심한 부침에 맞닥뜨려야 했다. 프랑스 AS 모나코에선 비교적 성공적인 시간을 보냈지만 팀의 강등과 함께 이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적 과정에서 프랑스의 릴이 아닌 잉글랜드 아스널로 행선지를 바꾸면서 논란은 시작됐고 급기야 병역 문제로까지 번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 감독의 결단으로 박주영은 2013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며 자신의 기량을 입증했다. 하지만 셀타비고 임대와 아스널 복귀과정에서 또 다시 벤치에 머무르면서 박주영의 재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막다른 길에 몰린 박주영은 소속팀과 월드컵에서 뛰기 위해 지난 겨울 2부리그의 왓포드로 이적했다.
이에 홍 감독도 소속팀의 활약과 대표팀의 선발을 우선적으로 연결해 대표팀을 구성하겠다는 원칙을 뒤로한 채 그리스전에서 박주영에게 마지막 기회를 줬다.
이에 박주영은 굳은 의지를 드러냈다. 평가전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아직 호흡은 모르겠다. 하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많은 선수들이 나를 어색하지 않게 도와주려고 하고 나 역시 팀에 녹아들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오늘 훈련을 비롯해 그리스전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오버해서 할 생각은 없다. 내가 가진 것을 그대로 코칭스태프에게 보일 것”이라고 각오를 전했다.
그 때문일까 박주영의 진가는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이날 돋보인 골 결정력과 미리 뛰어 공간 잡기 등의 개인기를 비롯해 볼을 받는 위치나 수비 뒤로 이동 등 홍 감독 축구 스타일을 여실히 드러냈다.
또 박주영이 대표팀에 한동안 합류하지 못해 조합 플레이에 우려가 있었지만 K리그 FC서울 시절 호흡을 맞추던 이청용(볼턴), 기성용(선덜랜드)과의 콤비네이션, 광저우아시안게임과 런던올림픽을 거치면서 맞춘 홍명보호 스타일에 녹아들면서 우려를 기우로 돌렸다.
결국 박주영은 홍 감독이 여론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스스로 증명해냈다.
다만 박주영은 최근 실전경험이 부족해 예전과는 몸 감각이 둔해진 모습을 노출시켰다. 더욱이 볼 터치에 확실한 자신감이 부족해 수비수와 1대1로 맞서 정면 승부해야 하는 장면에서 한창 때의 시원스런 돌파를 기대할 수 없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박주영의 화려한 신고식에 영국 현지 언론들의 관심은 더욱 뜨거웠다. 영국 ‘데일리스타’는 이날 박주영의 득점 소식을 전하며 “벵거 감독, 보고 있는지? 박주영, 한국 대표팀서 복귀 골을 신고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박주영을 왓포드로 임대 보낸 아스널 아르센 벵거 감독의 결정에 대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이 언론은 “13개월 동안 한국 대표팀에 소집되지 않았던 박주영이 전반 18분 만에 구자철의 멋진 패스를 받아 득점에 성공했다”며 박주영의 득점을 집중 조명했다.
그러면서 박주영이 국가대표 경기서 득점포를 터트릴 만큼 실력이 있지만 아스널에서 제대로 된 기회를 잡지 못했다고 전했다.
옥석 가리기 종료 국내파 없던 일로
홍 감독은 그리스전을 통해 ‘옥석 가리기’의 마지막 점검을 가졌다. 이에 최정예 멤버를 소집하면서 사실상 베스트11이 확정된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선수들 간의 명암은 엇갈렸다.
그리스전 선발 명단을 보면 정성룡(수원 삼성)과 이용(울산 현대)을 제외하면 모두 해외파였다. 박주영이 원톱 공격수를 책임졌고 손흥민, 구차철, 이청용이 2선 공격진으로 박주영의 뒤를 받쳤다.
기성용과 한국영(가시와 레이솔)이 중앙 미드필더에 섰고 포백 수비라인에는 김진수(알비렉스 니가타), 홍정호(아우크스부르크), 김영권(광저우 에버그란데), 이용이 포진했다. 골키퍼는 정성룡이 안정을 찾으며 다시 꿰찼다.
결국 해외파가 대거 합류하자 홍명보호의 경기력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앞서 열린 평가전과 달리 전술의 짜임새가 높아졌고 공격진은 개인기를 바탕으로 그리스의 수비진을 휘저었다. 특히 선제골 장면과 추가골 장면에서도 유럽파의 수준급 기량을 엿볼 수 있었다.
반면 1월 해외 전지훈련과 코스타리카, 멕시코, 미국 평가전에서는 부진한 모습을 드러낸 국내파는 이번 그리스전에서 전지훈련 이전부터 홍명보호에 이름을 올렸던 정성룡, 김승규(울산 현대), 이용, 김신욱(울산 현대), 이근호(상주 상무)를 제외하고는 1월 전지훈련에서 살아남은 국내파 선수가 없었다.
해외파가 절대적이지는 않겠지만 확연한 기량 차이는 드러냈다. 이에 홍 감독 역시 국내파를 한 번에 정리하고 해외파 특히 유럽파 중심으로 팀을 꾸려갈 것으로 보인다.
최상의 시나리오 불구 수비 불안 여전
이제 오는 5월 13일까지 대한축구협회는 홍 감독이 선택한 예비 엔트리 30명의 명단을 국제축구연맹(FIFA)제출한다. 28일에는 튀니지와의 홈경기를 마친 후 미국 플로리다주의 최종 전지 훈련 장소로 이동할 계획이다. 최종 엔트리는 6월 2일까지 FIFA에 제출하지만 사실상 튀니지전 명단이 그대로 월드컵까지 이어진다고 보고 있다. 다만 부상 등을 이유로 선수 교체가 필요한 경우 대체 선수를 선발할 수 있다.
그리스전을 통해 최상의 시나리오를 그린 홍 감독은 김신욱과 김보경, 이근호를 투입해 상황별 공격 시나리오도 점검했다. 또 기성용 대신 하대성(베이징 궈안)을 투입해 플랜B의 경쟁력도 확인했다.
그러나 몇몇 포지션에서는 여전히 물음표가 달려 있다. 그리스전을 앞두고 홍 감독이 꼽은 최대 경쟁 포지션은 오른쪽 풀백과 골키퍼다. 하지만 그리스전을 앞두고 소집됐던 오른쪽 풀백 경쟁자인 차두리(FC 서울)와 황석호(산프레체 히로시마)가 부상으로 빠졌고 정성룡과 김승규의 주전 골키퍼 경쟁은 여전히 치열한 가운데 이번에도 수비는 불안했다.
특히 측면 수비는 그리스전에서 가장 큰 문제로 드러났다. 좌우 측면을 맡은 김진수와 이용의 공격 가담 때는 준수했다. 하지만 수비 때는 구멍이나 마찬가지여서 아쉬움을 남겼다. 역습상황에서 배후를 노리는 크로스를 번번이 놓치면서 위기를 자초했다.
여기에 고질적 약점인 세트피스 수비 불안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프리킥과 코너킥 등 정시 상황에서 대인 방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부상 극복이 홍명보호의 최대 관건
실점하지 않고 경기를 마쳤으나 운이 따른 결과였다. 전반에만 세 차례나 골대를 맞는 슈팅을 허용해야 했다. 이처럼 수비에서 불안한 모습을 노출한 만큼 포백 라인 및 주전 골키퍼에 대한 홍 감독의 고민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100일 앞으로 다가온 브라질월드컵을 준비하는 데 가장 두려운 적은 부상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선수들이 소속팀에서 시즌을 소화하다보면 예기치 않은 부상이 따라오게 된다. 이번 그리스전에서도 차두리를 비롯해 황석호, 곽태휘(알 힐랄) 등이 부상으로 합류하지 못하는 불운을 겪으면서 홍 감독의 우려가 현실화됐다.
홍 감독은 “월드컵 본선까지 100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선수들의 컨디션과 부상 상태를 점검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남은 기간에 가장 유의할 것은 부상을 피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스전을 통해 홍 감독은 이상적인 공격조합을 찾았다는 점에서 합격점을 줄 수 있다. 특히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박주영을 불러들였다. 우려와 달리 그는 공격의 물꼬를 트며 박지성의 복귀 불발로 우려된 경험 부족의 약점을 메우는 데도 도움을 줬다. 결국 축구대표팀의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홍 감독의 선택은 박수받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브라질월드컵까지는 아직 첩첩산중이다. 불안한 수비문제와 선수들의 부상우려, 해결사 박주영의 실전감각 부족 등 수많은 숙제들이 쌓여있다. 100일도 채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현명한 선택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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