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소치 쇼트트랙 체육계 부조리의 결말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과거 대한민국의 메달밭이었던 쇼트트랙이 지난 밴쿠버 동계올림픽부터 부진을 겪는 가운데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도 침체된 분위기를 띄우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빅로트 안) 선수가 맹활약을 펼치면서 체육계를 향한 아쉬운 소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체육계에 만연한 파벌 싸움이 정치권까지 번지면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자정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빅토르 안 선전에 연맹 비난여론 확산…전명규 부회장 침묵으로 일관
박근혜 대통령 부조리 근절 지시에도 빙상연맹 검찰수사 면제 논란
쇼트트랙은 한국이 동계올림픽에서 거둔 24개의 금메달 중 19개를 차지하는 효자종목이었다. 하지만 밴쿠버 대회에서 여자 쇼트트랙은 노골드의 부진을 겪었고 남자 쇼트트랙은 이정수가 1000m, 15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명맥을 이었다.
이번 소치 대회도 사정은 녹록치 않았다. 여자 대표팀이 지난 18일 8년 만에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따내 노골드의 위기는 넘겼지만 남자 대표팀은 이렇다 할 경기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또 불운도 겹치면서 남자 1500m의 경우 지난 10일 준결승에 진출한 박세영은 3위로 탈락했고 2조에 출전한 신다운과 이한빈은 선두를 지키다 신다운이 넘어지면서 이한빈까지 모두 탈락하는 불운을 겪었다.
이한빈은 어드밴스로 결승에 올랐지만 결국 6위로 경기를 마쳤다. 13일 펼쳐진 5000m 계주에서도 준결승 1조 경쟁을 펼치다 이호석이 넘어지면서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이처럼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이 예전과 같은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이 또 다른 한국출신 선수의 활약이 체육계의 불편한 진실로 떠오르고 있다.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3관왕을 차지한 안현수는 국가대표 선발과 관련 파벌싸움과 짬짜미의 피해자 논란의 중심에 서며 결국 올림픽 참가를 위해 국적을 포기했다.
러시아로 귀화한 후 그는 이번 대회에서 8년간의 공백을 깨고 지난 10일 1500m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특히 그로 인해 러시아는 쇼트트랙에서 사상 첫 메달을 거머쥐게 됐다. 또 지난 15일에는 1000m 결선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며 제2의 전성기를 과시했다.
빙상연맹 부회장이
전횡 논란의 중심
이렇게 되자 불똥은 한국 대표팀과 빙상연맹에 쏠리고 있다. 특히 빙상연맹의 부회장을 맡고 있는 전명규 한체대 교수가 논란의 중심에 떠올랐다.
빅토르 안의 아버지인 안기원 씨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체육대학교 지도교수이자 빙상연맹 고위 임원으로 계시는 분 때문에 안현수가 많은 피해와 고통을 당해 러시아로 가게 됐다”며 “그분의 말씀이라면 문제가 있어도 모든 것이 다 승인된다는 것은 빙상 부모들 사이에서는 다 알려져 있는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안 씨가 언급한 그분이 전명규 부회장으로 알려지면서 그를 성토하는 비난 글이 이어지고 있다.
전 부회장은 1998년부터 2002년까지 한국 쇼트트랙 남녀대표팀 감독을 맡아 780여 개의 메달을 따내는 등 한국 쇼트트랙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린다.
그는 김기훈, 전이경, 김동성, 안현수까지 세계적인 쇼트트랙 스타 대부분이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하지만 전 부회장은 최근 빙상연맹을 둘러싼 잡음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논란은 거세지고 있다.
최근 벌어진 성추문 코치 국가대표팀 발탁 파문을 비롯해 한체대와 비한체대 출신 사이의 파벌싸움, 특정선수 성적 몰아주기(짬짜미) 등 갖가지 추문에 전 부회장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것.
빙상계에서는 전 부회장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온갖 전횡을 일삼아왔다는 하소연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재열 연맹 회장이 바지사장이라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장명희 아시아 빙상경기연맹 회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기의 추종 세력은 잘못을 해도 용서를 해주고 자기 눈 밖에 나면 불이익을 주고…그러한 슬픔을 당해도 아무 소리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 실정”이라고 성토했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전 부회장은 “선수들을 관리하는 데 모든 걸 집중하고 있고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한 뒤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말로 입장을 대신했다.
박 대통령 언급에 일파만파 확산
그러나 이번 문제는 결국 정치권으로 번지면서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3일 경기도 안산 서울예술대학교에서 열린 교육부·문화체육관광부 신년 업무 보고 자리에서 안 선수를 언급하며 “문체부에서는 선수들이 실력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심판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고 체육 비리와 관련해서는 반드시 근절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정치권도 이에 질세라 체육계 부조리를 뿌리 뽑아야 한다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지난 17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왜 대한민국의 최고선수가 조국을 등질 수밖에 없었는지 그 근본원인을 해결해야 한다”며 “체육계의 고질적 파벌과 특권, 불공정한 선수 평가와 부조리 관행을 확실히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우택 최고위원도 “컬링의 경우 비인기 종목이라는 이유로 태릉선수촌 식사 대상에서도 제외돼 선수들이 외부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한다”며 “정부 당국이 적극 나서 달라”고 주문했다.
안민석 민주당 의원 역시 국회 평창 동계올림픽 및 국제경기대회지원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번 사태의 중심에 빙상연맹 부회장이 있다”며 “그 부회장을 특위에 출석시켜 문제가 되는 부분이나 불편한 진실 등을 듣는 청문회를 개최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체부도 앞서 지난달 특별감사를 통해 조직 사유화, 부적절한 회계관리 등 체육계 문제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에 검찰은 일선 검찰청의 특별수사 전담 부서에 사건을 배당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김후곤 부장검사)와 특수2부(임관혁 부장검사)는 각각 대한배구협회와 대한야구협회를, 서울동부지검 특별수사 전담부서인 형사6부(최창호 부장검사)는 대한배드민턴협회와 대한공수도연맹, 대한복싱협회를 살펴보고 있다. 또 수원지검은 경기도태권도협회, 울산지검은 울산시태권도협회에 대한 수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문제가 된 빙상연맹은 수사대상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또 다른 논란거리가 됐다. 문체부 관계자는 “검찰에 의뢰할 당시 빙상연맹은 지적할 만한 사항이 없어서 의뢰 대상에서 제외됐다”며 “빙상연맹에 대한 추가 수사의뢰를 할지 여부에 대해 아직 논의된 사항이 없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논란의 핵심인 빙상연맹은 수사조차 받지 않으면서 체육계 부조리 척결의지 역시 수박 겉핥기에 그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공정성 회복이 스포츠발전의 최대 과제
문제가 불거진 파벌 다툼과 짬짜미는 이미 대부분 종목에 만연돼 있다. 안현수 사태를 비롯해 유도의 추성훈도 파벌싸움의 희생자였다. 재일교포 4세인 추성훈은 대학졸업 때까지 일본전국대회를 주름잡는 유망주였다. 그는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어 부산시청에 입단했지만 끝내 꿈을 이루지 못했다.
후에 추성훈은 “용인대 선수와 판정까지 가면 항상 패했다”며 “편파 판정으로 한국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매번 고배를 마셨다”고 폭로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2001년 일본인 ‘아키야마 요시히로’가 돼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일본 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따냈다.
이뿐만 아니라 지난해 5월 고교 태권도 선수인 아들이 전국체전 선발전에서 심판의 부당한 판정으로 억울한 패배를 당했다며 태권도장 관장인 아버지 A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해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기도 했다. 당시 A씨의 아들은 정신없이 경고를 받느라 발차기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만연해 있는 체육계 부조리는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더욱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이번 소치 올림픽에서도 편파적인 심판판정으로 인해 피해를 본 선수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 중 올림픽 2연패를 목전에 두고 있던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 역시 홈 텃세와 가산점 몰아주기에 백기를 들고 결국 러시아 선수에게 금메달을 내줘야 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을 경험했다.
결국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부조리 근절을 통한 공정성 회복은 스포츠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체육계의 과제로 떠올랐다. 특히 선수 선발과 심판 판정 과정에서 모두가 신뢰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선수들이 기량 향상에만 매진할 수 있는 풍토를 마련해야 제2의 안현수 사태를 예방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더욱이 이번 사태의 중심인 빙상연맹과 전 부회장은 침묵으로 일관하기보다 환골탈태하는 심정으로 동계스포츠의 발전을 위해 솔선수범하기를 기대해 본다.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