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크스에 울고 웃는 총수들 - 경제단체 편

전경련 회장직 피하라. 경실련이 찾으면 숨어라

2014-02-24     강휘호 기자

[일요서울 | 강휘호 기자]재계에도 징크스가 존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업이 중요한 공사를 결정할 때, 논리와 계산 이외의 요소는 조금도 반영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즉, 처음부터 끝까지 세밀하고 철저하게 분석한 뒤 과학적인 근거에만 입각해 일을 진행하지 않겠냐는 설명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도 때론 미신 아닌 미신에 시달린다. 일부 재계 관계자들은 “가끔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불길한 징조들이 더욱 섬뜩하게 다가온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한다. 거칠 것 없어 보이는 이들에게 도대체 어떤 징크스가 따라 다닐까. [일요서울]이 알아봤다.

가장 큰 피해자는 SK그룹? 거듭되는 악연에 속병
잘 하라고 상 줬는데…자꾸만 미끄러지는 수상자들

재계와 경제단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때로는 서로를 견제하지만 어느새 돌아보면 다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대표적으로 재계와 협력 관계를 형성하고 대기업의 이익을 주로 대변하는 단체로 전국경제인연합회(회장 허창수.이하 전경련)를 들 수 있다. 재계를 위한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여전히 예전의 이해관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반대로 재계를 감시하는 역할의 중심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이 맡고 있다. 경실련은 1989년 설립된 이후 경제적 불의의 척결을 설립 취지로 내걸고 재계에 대한 감시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두 단체의 성격이 극명하게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징크스만큼은 비슷한 맥락에서 얽혀 있다는 점이다. 세부적인 상황은 여러 가지로 나뉘지만 결국 두 단체와 엮인 오너 이상의 인물들이 큰 화를 입곤 했다. 더욱 심한 경우엔 기업 자체가 흔들리는 악재를 만나기도 한다.

먼저 전경련은 회장직에 오르기만 하면 봉변을 당한다. 갑자기 법정 구속이 된다거나, 건강이 악화되는 위기에 직면한다. 1990년대 이후 전경련 회장을 지낸 7명 인사 중 6명이 불운을 맞이했다는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
가장 악연이 깊은 그룹은 SK이다.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1993~1998년·당시 선경 회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소환조사를 받은 바 있다. SK그룹 회장인 동시에 현직 전경련 회장이 검찰에 소환된 첫 번째 사건이다.

또 이러한 영향을 받은 것인지 전경련의 악몽은 아직도 SK를 맴돌고 있다. 최태원 현 SK그룹 회장까지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최 회장이 차기 전경련 회장 후보로 거론될 때마다 고사를 해왔지만 수포로 돌아간 모양새다.
이 외에도 전경련 회장 잔혹사는 즐비하다. 김우중 전 회장(1998~1999년)은 재임 중 그룹이 해체되는 격랑을 맞았다. 당시 전경련 38년 역사상 처음으로 자신의 그룹 문제로 중도에 물러나는 오명만 남기고 물러났다.

또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2004~2007년)은 재임 당시 부인이었던 박정재 여사와 황혼이혼을 하는 가정불화에 시달려 전경련 회장 징크스가 가정까지 삼켰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허창수 현 회장을 제외한 마지막 전경련 회장인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2008~2011년)도 건강 악화로 임기를 마치지 못했다. 더욱이 조 회장은 현재 2000억 원가량의 세금을 탈루하고 회사 돈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더욱 놀라운 건 전경련 징크스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현재 전경련 회장에 올라 있는 허창수 GS그룹 회장도 징크스를 막지 못했다. GS그룹은 올해 들어서만 여수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라는 직격탄을 맞았고 연이어 같은 지역에서 화재 사고도 발생했다.

이쯤 되자 재계 인사들이 전경련 회장 자리를 꺼리는 심정은 이해를 하고도 남을 정도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업무적으로 봤을 때 재계 대표 격인 전경련 회장직을 수행한다는 것은 다양한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것과 같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악재까지 겹치다보니 꺼려지는 게 사실”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출처 없는 악재

아울러 전경련의 경우처럼 장대한 스케일의 징크스는 아니지만 경실련발(發) 징크스도 재계를 긴장시킨다. 시민단체인 경실련이 특정 기업을 비판하고 비리를 부르짖을 때 해당 기업에 피해가 발생하는 것이 그다지 놀라운 광경은 아니다. 인과관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경실련이 기업을 칭찬해줄 때 징크스가 발휘된다. 경실련은 매해 사회 발전에 기여한 기업을 기리는 상으로 좋은기업상(구 경제정의기업상)을 준다. 취지만 보면 분명히 좋은 일인데 악재가 덤으로 따라오는 경우도 다수였다. 시기를 거슬러 올라가 경실련 징크스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6년이었다.

경실련이 수여한 경제정의상을 수상한 3개 기업 CEO들이 모두 물러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당시 경제정의상을 받은 기업은 LG화학과 LG생명과학, 기아자동차로 각사의 대표를 맡고 있던 노기호, 양흥준, 김익환씨가 임직원을 대표해 시상식에 참석했다. 그리고 이들 3명의 CEO들은 곧바로 이어진 기업 내 인사에서 실적에 대한 그룹의 평가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각각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당시 경실련 측은 우연의 일치임을 밝히며 “최신 경영 자료를 참조할 수 없었다”고 상의 권위나 명성이 훼손될까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21회(2012년)와 22회(2013년) 좋은 기업 상을 수상한 기업 중에서도 불안을 나타내는 곳이 있다. 아직도 경실련 징크스가 존재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유효한 상황이다.

21회 좋은 기업 상을 받은 에쓰오일은 지난해 4분기 영업손실 527억 원을 기록해 적자로 돌아섰다. 한꺼번에 몰려든 악재로 참담한 수준의 어닝쇼크를 낸 것이다. 에쓰오일과 같이 수상을 한 JB전북은행은 카드사의 대규모 정보 유출과 관련해 금융당국의 특별 검사를 받는 중이다. 전국 모든 지방은행에 대한 고객정보 관리실태 현장 점검에 따른 것이다.

좋은기업상 22회 수상자 중에는 LG화학이 힘겨워하고 있다. LG화학은 갈수록 수익성 악화의 길을 걷고 있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에 따르면 LG화학의 지난해 영업이익이 2011년 1~3분기 2조3350억 원에 비해 1조 원 넘게 줄었다. 덧붙여 지난해 11월 모그룹인 LG그룹에선 LG전자 소속 헬기가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에 부딪쳐 추락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한편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우연의 일치라고 보는 것이 맞다. 기업이 맞닥뜨리는 악재는 세밀하게 살펴보면 전부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다만 우연의 일치가 계속될 경우 징크스라는 오명은 씻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견해를 밝혔다.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두 단체의 징크스를 당당히 깨고 나아갈 기업과 총수는 누가 될지 올해 재계의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