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입체추적

국정원 직원 부임 미스터리…‘제2의 수지김’ 비화 조짐

2014-02-24     박형남 기자

[일요서울 | 박형남 기자]‘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핵심은 단연 북한·중국 출입국 기록 위조 여부다. 검찰은 “대검의 공식 입장은 위조는 없다. 위조라고 생각도 못했고, 진정한 것으로 믿고 재판부에 제출했으며 지금도 위조가 아니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유우성씨 변호인단은 “위조”라고 맞섰다. 그러나 주한 중국대사관 영사부는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3건의 문서 모두 위조된 것이라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때문에 누가 위조를 했고, 어떤 목적으로 위조했는지가 베일에 싸여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제2의 수지김 사건’이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일기도 했다. 서울시 간첩사건의 ‘출입국 기록’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추적해봤다.


국정원, 중국 국가안보부 대신 중국 공안국에 요청 왜 했을까
해와공작파트 대신 대공수사팀 직원 선양 영사관 부임 왜

북한·중국 출입국 기록을 두고 유우성씨 변호인단은 ‘위조된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검찰이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한 ▲유씨의 출입경기록 조회결과 ▲유씨의 출입경기록 정황설명서에 대한 회신 ▲허룽(和龍)시 공안국이 심양 주재 영사관에 발송한 공문 등 3개의 증거자료는 위조됐다고 주장했다.
장경욱 민변 변호사는 “국가정보원이 심양 영사관에서 국정원 직원을 매개로 수집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정원 대공수사팀 이인철씨가 깊숙이 개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민변의 주장이 주한 중국대사관의 확인에 의해 드러난 것이다. 이에 대해 주한 중국대사관도 진상조사를 할 계획이다.
주한 중국대사관 측은 “검사 측에서 제출한 중국 허룽(和龍)시 공안국의 출입경기록 조회결과는 모두 위조된 것”이라며 “한국 검찰 측이 제출한 위조 공문은 중국 기관의 공문과 도장을 위조한 형사범죄에 해당한다”고 회신했다.

검찰 자료를 중국대사관이 정면 반박한 것으로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이다. 이는 또한 검찰이 공문을 조작했다는 것을 반증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은 위조 의혹이 일자 긴급 브리핑을 열었다. 위조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신속히 입장을 발표한 것.
검찰 관계자는 “대검의 공식 입장은 위조는 없다는 것이다. 위조라고 생각도 못했고, 진정한 것으로 믿고 재판부에 제출했으며 지금도 위조가 아니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대사관 영사부에서 보내온 사실조회 회신에는 ‘의심이 간다’는 표현이 포함돼 있어 단정적으로 위조라고 했다고 보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서울시 간첩사건’에 국정원 직원이 연루됐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지난해 대선 국가기관의 개입 의혹과 맞물려 박근혜 정부 정통성이 흔들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더구나 중국과의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될 조짐이다.

야당, 이인철 정조준 보이지 않는 손 있나?

이를 두고 야당에선 ‘제2의 수지김 사건’이라고 말한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는 윤태식이 수지김을 살해했고, 그의 진술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의도적으로 사실을 은폐하고 오히려 윤태식을 반공투사로 미화한 뒤 억울하게 살해당한 수지김에게는 북한의 간첩이라는 올가미를 씌워 단순 살인사건을 대공 사건으로 조작했다. 서울시 간첩 사건 역시 여동생이 국정원의 폭행 등으로 인해 허위진술을 자백했고, 문서를 조작해 간첩이라는 올가미를 씌우려는 수법이 흡사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다 보니 허점도 많다. 석연치 않은 점들이 한 두군데가 아닌 까닭에서다. 우선 국정원 대공수사팀 소속 이씨가 중국 선양 주재 한국총영사관 소속 이인철 영사로 부임된 것은 지난해 8월 하반기다. 1심 무죄 판결 전후로 부임했던 것. 결국 1심 무죄를 뒤집을 만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부임한 것으로 야권에서는 추측하고 있다.
또 국정원 해외공작파트 직원들은 해외 영사관으로 부임한다. 그러나 1심 무죄 판결을 전후로 대공수사팀 직원이 부임한 부분 역시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외통위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이 사건의 핵심은 이인철 영사관이다. 1심 무죄 판결 전후로 심양 영사관으로 부임한 것은 이 사건을 조작하기 위한 물증을 만들기 위해서다”고 말한다.
실제 지난 21일 국회 외통위에 출석한 조백상 선양 총영사는 ‘문서 발급 과정에 보고를 받았냐’는 홍익표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대검이 요청해 외교부를 경유한 문건은 한 건이고, 문제가 됐다는 두 건은 이인철 영사가 공증한 것으로 사후 보고를 받았지만 제대로 된 보고라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조 총영사는 이 영사의 문서 생산 의혹에 대해선 “이 영사가 당국 발급 문서 자체를 본인이 부탁해 만들거나 한 것은 아닌 걸로 안다”며 “이 영사에게 설명을 듣기론 관련 당국이 마련한 서류를 한글로 번역하고 이런 문서임을 확인해 준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전화통화 등 어떠한 접촉도 없이 문서를 어떻게 만들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정확한 답을 하지 못해 국정원 직원 개입 의혹은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또 국정원이 중국에 확인요청을 할 경우 중국 국가안전부를 통하는 것이 관례다.

그런데 국정원은 중국의 공안국을 통했다는 점도 의문이다.
이에 대해 정보위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중국의 공안국은 우리나라로 얘기하면 일종의 경찰이다. 따라서 국정원이 요청하려면 중국 국가안보부를 통해야 했다. ‘국정원-국가안보부, 경찰-공안국’을 통하는 것이 상식이다. 국정원이 공안국을 통해 서류를 확보한 것은 중국 경찰한테 서류를 뗀 셈”이라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야당은 정식루트를 거치지 않은 것에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정원 직원이 직접 작성했을 개연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또 야권은 여권 실세였던 A씨가 개입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이를 살펴보는 중이다. 외교라인을 통해 검찰이 선양 주재 한국 총영사관에서 입수했다고 밝힌 사실 확인서가 위조된 부분에 A씨가 연루됐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외통위 소속 야당 의원실 관계자들은 “지난 대선에서도 그렇듯 이번에도 여권 실세가 개입됐는지 여부를 눈여겨보고 있다. 현재로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를 집중적으로 살피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보이지 않은 손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국정원 박원순 겨냥하려다 되려 역풍 맞을 위기

서울시 간첩사건과 관련해 정치권에선 여러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다. 우선 지방선거를 대비해 보수층 결집 효과를 노리기 위해 조작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 기관이 지난 대선에 개입한 전례가 있는 만큼 간첩사건을 활용해 지지층 결집을 노리려 했다는 게 야당의 시각이다. 또 국정원이 유모씨에 대한 간첩 혐의를 입증하지 못할 경우 ‘역풍’을 고려해 무리수를 두었다는 평이다.
이에 대해 야당의 한 의원은 “이 사건의 과정을 보면 지방선거를 통해 보수층 결집이라는 각본을 짜려다가 허점이 드러난 것 같다. 국정원이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못하는 것은 대응논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야당의 주장대로 국정원이 조작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박원순 시장을 겨냥한 것이라는 말에 설득력이 높다. 사실 국정원이 박원순 제압 문건을 작성해 논란이 일었다. 이 문건에는 검찰·경찰·감사원·소관부처·보수단체 등을 총동원해 박 시장을 상대로 법적·재정적·심리적 압박을 가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반값등록금 차단’ 문건에 “야권의 등록금 공세 허구성과 좌파인사들의 이중처신 행태”를 비판하는 논리를 제시하며, 심리전에 활용하자는 내용이다. 이 문건들은 일반인들이 알 수 없는 국정원 내 작성부서·보고라인 등이 고유 표기법으로 적혀 국정원이 작성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한 차례 전례가 있었던 탓일까. 이번에는 서울시 공무원으로 특채된 유우성씨가 서울시에서 얻은 탈북자 정보들을 북한으로 빼돌렸다면서 박원순 시장과 연계시키려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야당 한 의원도 “채용은 오세훈 시장이 했지만 사건이 벌어진 것은 박 시장 때의 일이니 이를 방조했다는 식으로 몰아가려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보수단체에서는 “서울시에서 위장 탈북한 간첩이 잡혔는데도 시장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있다는 것은 납득할 수가 없다”며 박 시장의 사과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정반대다. 국정원 직원이 검찰에 넘겨준 자료가 ‘위조됐다’는 결론이 나면 국정원 개혁 목소리가 더더욱 높아질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이번 사건으로 박근혜 정부의 중간평가 성격인 지방선거에서 낙제점을 받을 수도 있다. 이 사건이 진실이 밝혀질 경우 정치적 파장은 메카톤급 이상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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