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회’ 역사 살펴보니…
2014-02-17 박형남 기자
[일요서울 | 박형남 기자]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은 자신이 만든 청산회를 통해 조직을 관리하고 있다. 청산회는 서 의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청산회는 애초 서 의원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 정무특보였던 노철래 의원을 비롯한 측근 30여명의 모임이었으나 2006년 6월 서 의원의 사면 후 활동을 감안해 산악회를 조직, 세를 확대했다. ‘청산회’가 결성된 배경이다.
청산회는 서 전 대표의 뜻에 따라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면서 친박 외곽 조직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특히 서 의원은 18대 총선에서 측근들이 공천에서 물 먹자 친박연대를 창당했다. 친박연대의 근본을 이뤘던 세력은 청산회다. 박근혜 바람이 불었고, 친박연대 역시 박풍을 타고 지역구 의원 6명, 비례대표만 해도 8명이란 성공적인 결과를 냈다. 14명의 의원을 탄생시킨 데는 물론 박풍도 있었지만 내부적으로 서 의원의 공이 컸다.
그러나 친박연대는 이미 청산회가 모든 조직을 장악한 상태였기 때문에 논공행상이 청산회를 중심으로 이뤄지게 됐다. 한나라당에서 영입한 인사들에 대해서는 소홀했다.
이로 인해 ‘서청원 사당화’ 논란과 함께 청산회를 청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당내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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