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미국 첩보기도 함께 격추”
2003-09-16 이인철
요약본에 따르면 소설의 전체 줄거리는 한국의 아름다운 미혼여성 이월림(24세)과 브라질의 저명한 핵물리학자이자 기혼자인 안또니우 카사이(50세) 박사가 전생의 인연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운명적인 재회를 이루지만 KAL기 사건으로 다시 이별하였다가 저 세상에서 다시 재회하는, 애절하고도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를 그 주제로 하고 있다.“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수 천개의 작은 잔해들은 한 대의 비행기 잔해로 볼 수 없어.”그러나 이 소설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후카이 교수가 책을 통해 20년 전 발생한 KAL기 사건의 진실찾기를 하고 있다는 것. 후카이 교수는 소설을 통해 “사할린 KAL기 격추 사건이 단순한 항로이탈에 따른 소련 전투기들의 격추사건이 아니라 미국 CIA가 한국의 안기부의 협조하에 실행 중이던 대 소련 첩보활동이 그 원인중 하나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주장을 담은 소설의 요약본에 따르면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한국 정보부의 협조하에 보잉 747 기종과 비슷한 점보기 한대를 동원, 사할린에 배치돼 있는 소련 미사일 기지들을 촬영하고자 첩보작전 중이었다.
특히 이 비행기는 소련의 레이더망을 피하기 위해 사할린 상공 근처까지 KAL-007편에 얹혀가듯 바싹 붙어 비행했다. 그러나 사할린 남쪽으로 항로를 이탈하고 있던 KAL기는 이 첩보기의 존재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상태에서 그 첩보기와 더불어 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되고 말았다는 것.후카이 교수는 이같은 내용을 담기 위해 당시 전세계 언론에서 보도했던 내용들을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 할 자료로 삼고 추론했다. 후카이 교수는 가장 먼저 “사할린 사건에 대한 미국의 주장은 단지 한대의 비행기, 즉, KAL-007기만이 격추되었다는 데 집중되어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사건 발생 지역에서, 특히 50 ㎢ 내의 11개 지역에 집중적으로 흩어져 발견된 수 천개의 작은 잔해들을 단 한대의 비행기 잔해로 보기에는 불가능하다고 분석했다.후카이 교수는 또 “점보급 크기의 비행기 잔해는 착륙 바퀴부분, 동체 및 날개부분 등, 항상 큰 조각들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당시, 사건 지역에서는 1.8m의 티타늄 조각이 발견되었는데 그런 종류의 금속은 전투기에서나 사용되는 것이지 결코 보잉 747기와 같은 기종에는 사용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다음으로 수심 170m의 해저에서, 덩치가 큰 것으로 추정되는 어떤 비행기의 동체 하나와 착륙바퀴부분이 발견된 점. 후카이 교수는 “발견된 동체 안에는 단 한 구의 시체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손지갑 등과 같은 개인용품도 전혀 발견되지 않았으며 그 대신 전자 부품들과 마그네틱 테이프 등, 전형적으로 첩보비행기에서나 볼 수 있는 것들만이 발견되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소련 전투기들과 관제탑과의 교신 내용도 근거자료로 사용했다. 당시 소련 전투기들과 관제탑 간의 교신 내용은 세차례에 걸쳐 따로 따로 미사일 발사 명령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는 단지 KAL-007기만의 격추를 명령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는 것.
“미국의 첩보기 RC-135가 함께 격추됐다”
후카이 교수는 또 미국 당국은 KAL-007기가 소련 전투기들에 의해 발견되었을 무렵 불을 깜빡이며 지그재그 비행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 점을 주목했다. 어떤 상업용 여객기가, 자신의 속도가 미그 23 보다 세배나 느리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그재그로 비행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며 불을 깜빡거리면서 그런 비행을 하는 것은 어느 지역을 촬영하면서 시간을 벌려고 하는 것으로 첩보비행기에나 잘 어울리는 행동이라는 게 후카이 교수의 분석이다.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당시 미국이 KAL-007기에 대한 미사일 발사 명령을 내린 것으로 지목한 소련의 오시포비치 사령관이 사건 발생 8년 후 말한 인터뷰 내용을 근거로 들었다.
오시포비치 사령관은 “(우리가 격추한 것이) 상업용 비행기였다는 얘기는 (사건 발생후) 한참 후에나 들리기 시작했다. 분명히 말하건대 내가 격추시킨 것은 RC-135기종과 같은 한대의 첩보비행기였다”고 밝혔다는 것. 오시포비치 사령관이 언급한 RC-135는 실제 미국의 보잉사가 제작한 것으로 보잉 747기와 매우 흡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후카이 교수는 사고가 난지 10년 후 당시 소련의 옐친 대통령이 한국과 미국 정부에 건네준 여객기의 블랙박스의 판독 기록 역시 근거로 들었다. 블랙박스에는 “신사 숙녀 여러분. 현재 시각은 오전 3시로 여러분들에게 아침 식사를 제공할 것입니다”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대륙간 비행을 하는 여객기에서는 아무리 빨라도 비행기 착륙 2시간 전에 아침 식사가 제공되지 결코 3시간 전에 제공되지 않는다는 것. 이에 후카이 교수는 이 블랙박스 내용이 거짓일 수 있다는 의혹을 준다(당시 KAL기는 오전 6시 경에 도착 예정이었음)고 분석했다. 특히 그는 그 블랙박스 판독 기록에는 네개가 아닌 두개의 비행 모터에 대한 기술적 자료와 정보들이 적혀있는데 보잉 747기 모터의 정확한 수는 4개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후카이 교수는 미국과 일본의 엇갈린 KAL기 추락시간을 근거로 들고 있다. 미국 당국은 KAL기가 사건 당일 오전 3시 38분에 바다에 추락했다고 말했지만, 비행기 추락지점으로부터 단지 130 ㎞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일본 와카나이 소재 자위대 레이더망 기록은 ‘한국 국적으로 추정되는 비행기’가 오전 3시 29분이었다는 것. 즉, 일본은 미국측 발표보다 9분전에 바다에 추락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후카이 교수는 또 미국은 KAL-007기를 격추한 미사일이 한 대의 Sukoi-15기에서 발사되었다고 한 반면 일본은 MIG-23이라고 밝힌 점. 300여 척이 넘는 소련, 미국, 일본 소속 선박들이 동원되어 탐색 작업을 시작한 지 70일이 지난 시점에서도 격추된 KAL-007기의 것으로 보이는 부품과 시체는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 소설의 요약본에 따르면 후카이 박사는 “이 소설은 언론발표 및 자체 발굴자료 등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과학적인 연구보고서는 아니며, 여전히 진실을 증명할 길은 없다”는 점을 덧붙이고 있다.
KAL기 격추사건 일지
1983년 9월 1일 발생한 KAL 007 여객기의 격추사건은 2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혹을 갖고 있다. 당시 뉴욕을 출발해 서울로 오던 KAL기는 사할린 남서쪽 모네론섬 부근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가 발사한 미사일을 맞고 바다로 추락했다. 추락한 KAL기에는 한국인 승객 81명을 포함해 269명이 타고 있었으며 모두 사망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당시 소련은 보잉 747기가 항행등을 켜지 않고 있었고 항로를 바꾸라는 경고를 무시했다고 주장했지만, 이 사건은 비무장 민간항공기에 대한 공격으로 269명이라는 수많은 인명이 살상된 것에 대해 전세계는 경악했다. 그러나 피격사건에 대한 원인규명이 정확이 밝혀지지 않아 일각에서는 KAL기가 소련의 방공(防空)태세를 시험해보려는 미국 측의 비밀 작전에 승객들의 목숨을 담보로 동원됐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파문이 일기도 했다. 현재 충남 천원 망향의동산에 당시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위령탑이 세워져 그들의 억울한 넋을 달래고 있다.
후카이 교수는 누구?
KAL기 관련 내용을 소재로한 소설을 집필중인 호베르투 후카이 박사(63)는 현재 브라질의 명문 상파울루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브라질 문화센터 박원복 대표에 따르면 일본계인 후카이 박사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핵공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브라질 원자력연구소장을 역임한 핵 전문가. 그는 또 1999년부터 2001년 1월까지 미국의 7대 기업 가운데 하나였던, 파산한 엔론사의 남미 부회장(senior vice-president)직을 맡기도 했다. 박 대표는 “현재 후카이 박사는 마지막 탈고 단계에 있는 자신의 소설을 한국어로 출간하기 위하여 관심 있는 국내 출판사를 찾고 있다”면서 “사업과 더불어 학술교류 관계로 이미 여러차례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으며 한국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한국 문화에 심취해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