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굴렘 만화전쟁에서 돌아온 박재동 화백

“작가들이라면 위안부 소재 만화 꼭 그려야”

2014-02-10     오두환 기자

“역사적인 사실을 그리는 것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웹만화가 강점, 세계 웹만화 선두주자는 우리가 될 것”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2월초 프랑스 앙굴렘에서 한국과 일본이 만화전쟁을 치뤘다. 물론 승리는 우리나라의 몫이었다. 우리나라가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일본군 위안부 만화 기획전 ‘지지 않는 꽃’을 열자 일본이 반발하면서 기획전 취소를 위해 각종 로비를 벌였다. 

하지만 기획전은 관람객 1만7000여 명이 다녀가는 등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반대로 일본은 자신들의 부스가 조직위에게 철거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주관한 ‘지지 않는 꽃’ 기획전에는 박재동, 이현세, 김광성, 백성민, 김금숙 등 작가 19명이 만화, 애니메이션 등 25편을 제작해 어린 소녀를 성노예로 삼은 일본군의 만행을 세계에 알렸다.

[일요서울]에서는 기획전에 직접 참가하고 돌아온 만화가 박재동 화백(사진)과의 인터뷰를 통해 전시회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 기획전을 마친 소감은.

기획전을 하기 전에는 이게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는지 잘 몰랐다. 그런데 막상 기획전을 열고 나니 굉장한 파급력이 있어서 뿌듯했다. 생각보다 괜찮은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전시로만 생각했는데 일본이 자꾸 딴죽을 걸고 하는 바람에 홍보를 아주 많이 해줬다. 이렇게 이슈가 될지는 몰랐는데 생각보다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은 어떤 행사인가.

프랑스에서 주최하는 세계만화축제다. 굉장히 오래됐다. 올해가 44년째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만화페스티벌이다. 대개 유럽하고 일본, 한국, 중국 정도 참여한다. 주로 유럽 위주의 행사지만 전 세계에서 다 참여한다고 보면 된다. 국내에서도 일반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행사다. 우리같은 경우는 옛날부터 이 페스티벌에 갔었다.

▲ 기획전에서 위안부를 테마로 잡은 계기가 있나.

지난해 여름에 여성가족부 장관이 만화페스티벌 조직위원장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자리에서 올해 축제 테마가 1차 세계대전 100주년을 기념해 전쟁과 인권 그리고 여성들의 피해에 대해 주로 다룰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장관이 위안부 문제를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에게 부스를 마련해 줄 수 있느냐고 타진했다. 조직위 측에서 흔쾌히 우리에게 부스를 마련해 준 걸로 알고 있다.

▲ 위안부를 소재로 그리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땠나.

원래 위안부 관련 작품을 그리려고 하고 있었는데 시간과 기회가 없어서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위안부를 소재로 기획전을 할 테니 참여하라고 권유를 받았다. 그래서 잘됐다 한번 하자라는 생각으로 참여했다.

다른 작가들의 경우, 대개 우리나라 작가들 특히 사회문제에 관심있는 작가들은 위안부를 소재로 한 만화에 대해 그리고 싶어하고, 그려야 하는데 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상당히 많다. 그런 사람들이 이번에 모여 작품을 만들게 된 것이다.

▲ 위안부를 소재로 한 기획전에 대한 관람객들의 반응은 어땠나.

반응은 상당히 좋았다. 전시장에 편지를 붙이는 벽이 있었다. 관람객들이 편지를 써서 붙일 수 있도록 돼 있었는데 상당히 많은 편지들이 붙어 있었다. 빽빽하게 들어찰 정도였다. 아 이런 사건이 있는 줄 몰랐다. 정말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할머니들이 너무 힘들겠다. 힘내세요. 지지합니다. 위안부가 아니고 성노예라고 불러야 한다. 이런 전시가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등의 내용이 붙어있었다.

적극적인 분들이 많아 상당히 열띤 분위기였다. 학생들도 있었고 일반인들이 많았다. 외국의 경우 만화축제는 어린이보다는 청년, 장년, 어른들이 많이 온다. 주로 지식인들이 많이 온다. 그래서 파급효과가 더 컸던 것 같다.

▲ 박재동 화백의 작품을 소개한다면.

나는 유화로 그렸다. 가로 220cm, 세로 20cm 크기다. 맨 오른쪽 귀퉁이 위에 ‘나의 살던 고향’ 복숭아꽃 살구꽃 피는 시골 풍경이 있고 거기서부터 나온 길이 꼬불꼬불 왼쪽으로 간다. 그러면서 길이 없어졌다 나타났다 시퍼렇고 벌건 길이 계속 나타난다. 그러다 마지막 왼쪽 끝에 가면 소녀 하나가 나타난다. 소녀가 울고 서 있는 장면이다. 제목은 ‘끝나지 않은 길’이다. 눈물과 고통의 길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 소녀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모습이다. 그 소녀는 우리나라 국민들 속에서 울고 있다. 아직도. 세계 인류의 가슴 속에도 울고 있다. 이 울음을 멈추게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만화다.

▲ 전시기간 동안 일본 측의 방해공작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에서 어땠나.

일본 측 1만2000명이 서명해서 이런 전시는 정치적인 전시이므로 철회시켜달라고 조직위에 탄원서를 냈었다. 하지만 주최 측에서 무슨 소리냐 작가들의 자유이므로 철수할 수 없다며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자 일본 측이 자기네 전시 부스에 일본군 종군위안부는 사실이 아니라는 플래카드를 붙였다. 앙굴렘 조직위에서 그걸 철거하라고 했다.

역사적인 사실을 그리는 것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역사적인 사실을 없는 것처럼 하는 일이 정치적인 것이기 때문에 철거하라고 한 뒤 철거해 버렸다. 그러자 일본 관방장관이 왜 우리 것은 철거를 하고 한국 것은 그대로 두냐고 항의하면서 오히려 일본에 대한 시선이 안 좋아졌다. 그런데 유럽 사람들도 대부분 위안부문제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알고 있었다. 오히려 이 사건으로 인해 일본이 우습게 됐다. 결과적으로 조직위에서 우리를 지켜주게 됐다. 멋있었다.

이후 일본정부 측에서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협정으로 다 해결된 문제다. 그리고 아시아기금 등으로 돈도 주고 있다. 이런 내용이 담긴 보도자료를 프레스센터에 뿌렸다. 또 산께이 신문 등을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옹호하는 기사를 내보낸 것 같은데 오히려 국내 언론을 자극시키는 꼴이 됐다.

▲ 일본 항의에 대한 조직위의 빠른 판단과 올바른 역사인식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훌륭했다. 프랑스 지성의 힘인 것 같다. 있는 역사 즉 사실을 작품화하는 것이 왜 정치적이냐. 있는 사실을 없는 것처럼 하는 일이 정치적인 것 아니냐고 딱 쇄기를 박아버렸다. 그것이 결국 프랑스 지성의 힘이다. 화만 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모습이 멋있었다. 굳이 우리 측이 따로 대응할 필요도 없었다.

▲ 일본만화가 세계 만화시장을 장악하고 있다고 하는데 일본 만화가 갖는 국제적인 지위나 영향력은 어떻게 되나? 또 우리나라 만화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정확한 수치로 말할 수는 없다. 원래 만화의 발상지가 유럽이다. 유럽인들은 당연히 유럽만화가 본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유럽만화만 유통되고 있었는데 10여 년 전 쯤 일본 만화가 유럽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일본만화는 독특하다. 예쁘장하고. 그러다보니 프랑스 독자들이 새롭다고 인식하게 됐다. 기존에 없는 것이 나오다보니 일본만화들이 굉장히 반응이 좋았다. 신선하고. 지금은 일본 만화를 망가라고 부르며 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만화 스타일은 딱 짜여져 있다고 해야할까. 하지만 우리나라 만화는 일본과 유럽의 스타일이 합쳐져 있다. 풍이 약간 다르다. 같은 동양권이긴 하지만 약간 맛이 다르다.

▲ 이번 기획전을 계기로 만화에 대한 인식과 시선이 달라질 것 같다. 우리나라 만화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또 고쳐야 할 점이 있다면.

우리나라 만화는 굉장히 성장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종이책 만화로는 죽었지만 웹만화는 세계 최강이다. 앞으로는 웹만화가 전 세계적으로 자연스럽게 퍼지게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선두주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웹만화는 우리나라가 최강이다. 다른 나라는 우리나라처럼 웹만화가 많지 않다. 비교가 안 된다. 웹만화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적절하고 합리적인 가격의 유료화가 돼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유료화가 돼야 더 탄탄해질 수 있다.

그 다음에는 인터넷 웹만화 마켓을 우리가 주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번역작업을 강화해야 한다. 웹만화의 장점 중 하나는 금방금방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종이만화는 만드는 데도 돈이 많이 든다. 편집, 유통 과정을 거치려면 만화를 빨리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웹만화는 번역만 되면 외국작품도 금방 볼 수 있고 국내 작품도 금방 해외로 팔 수가 있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만화를 보고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상에서는 번역만 되면 끝이다. 유통을 우리나라가 장악하면 굉장한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 국내 웹만화 시장 인프라는 어느 정도인가.

우리나라 웹만화 작가가 대략 8만 명 정도다. 아주 풍부하다. 인터넷 상에서 일반 유저들이 작품을 쉽게 접할 수 있고 평가받기도 쉽다. 인기있는 작품들의 경우는 폭발력이 크다. 굉장히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 이번 기획전을 치르면서 만화의 사회적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젠 만화도 문화의 한 영역으로 인정받기에 충분한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앙굴렘 페스티벌을 거치며 문화의 힘을 느꼈다. 글은 한계가 있다. 감정이 잘 안 산다. 하지만 만화로 메시지를 전달할 경우에는 감성을 통해 가슴에 메시지가 남는다. 참 강력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잊지 못한다. 그게 굉장히 좋았다. 만약 위안부 문제를 만화가 아닌 기사로 표현했다면 이번처럼 감동이 크지 않았을 것이다. 만화 작품은 감동이 강력하다. 문화의 힘을 새롭게 느꼈다. 앞으로 만화, 영화 등을 통해 이런 사회적 문제를 알리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처럼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만화축제 중 자랑할 만한 것이 있다면.

부천국제만화축제가 제일 크다. 다음으로는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이 있다. 이외에 지방에 조그맣게 열리는 축제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 마지막으로 만화를 사랑하는 국민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만화를 좋아하는 국민들이 앞으로도 만화를 많이 보고 즐겼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만화가 무료로 보는 게 아닌 작은 돈이라도 내고 보아야 만화문화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을 해 줬으면 좋겠다. 음원을 다운로드 받을 때 돈을 내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국내 만화는 크게 발전할 것이다. 무료로 보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지 말고 적은 돈이라도 내는 게 맞다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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