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만 국내기업 ⑤- 에쓰오일

아람코가 ‘단독경영’ 정유업계 위기 돌파할까?

2014-02-10     이범희 기자

[일요서울Ⅰ이범희 기자]증권가에는 ‘검은 머리 외국인’ 이라는 용어가 있다. 외국인 투자자로 등록돼 있지만 실제로는 한국인이거나 한국계 자금을 바탕으로 하는 투자자를 일컫는다. 이들은 단기적으로 치고 빠지는 투자전략으로 한국의 일반투자자처럼 주식매매를 한다. 이들의 수법은 비리의 온상으로 지적돼 2014년 사라져야 할 것으로 지목된다. 반대로 국내 기업명을 혼합해 쓰지만 실제로는 외국기업인 경우도 있다. GM대우, 홈플러스, 맥심 등과 같이 지분 전량이 매각된 회사도 있고, 에쓰오일처럼 지분의 절반 이상이 외국계기업에 매각된 사실상 외국계 기업도 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을 국내 기업으로 생각하는 소비자가 많다. 이에 따라 [일요서울]은 국내 기업명이지만 지분은 외국계인 기업의 명단을 공개한다. 그 다 섯 번째는 2대 주주 한진그룹의 지분을 인수한 에쓰오일(사장 나세르 알 마하셔·사진)이다.


에쓰오일은 올해 사실상 외국계 업체로 변신 수순을 밟는다. 그동안은 사우디 석유업체 아람코와 한진그룹이 동맹을 맺고 운영했지만 올해 안에 지분정리를 통해 아람코가 단독경영에 나선다. 이는 1대주주였던 아람코(지분 35%)가 한진의 지분 28.4% 전량을 인수하면서 지분을 53.4%로 늘린 탓이다. 한진그룹은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만큼 매각이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에쓰오일을 더 이상 국내기업으로 볼 수 없다는 게 관련업계의 지적이다. 지분 절반 이상이 넘어갔고 외국계 기업이 경영권을 획득한만큼 외국계자본기업으로 분류해야 된다는 설명이다.

한진 보유 주식 28.4% 취득…사실상 외국계
대규모 투자 계획…정유업계 판도 변화 예고

지난달 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전날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외국인투자기업인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나세르 알 마하셔 에쓰오일 사장은 “한진그룹이 구조조정 차원에서 에쓰오일 주식을 매각하려고 하는데 아람코가 20억 달러를 들여 매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마하셔 사장은 연초 신년사를 통해서도 “한국 내 대규모 투자를 통해 ‘정유·윤활·석유화학 사업을 아우르는 수익성 있는 종합 에너지 회사’로 도약할 것”이라며 “신규 프로젝트는 회사 역사상 최대 프로젝트로, 사업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 역시 지분 인수를 염두에 둔 것이란 분석이다.

파란만장 설립 역경

에쓰오일의 전신은 1976년 1월 세워진 한ㆍ이석유주식회사다. 한ㆍ이석유는 국내시장에 석유제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이란 국영석유공사(NIOC)와 쌍용양회 간 50:50의 합작투자로 세워진 회사다.
하지만 1980년 이란 호메이니 혁명의 여파로 이란 국영석유공사가 철수한 후 같은 해 6월 쌍용양회가 이란 국영석유공사의 지분을 매입해 쌍용정유로 상호를 변경하면서 순수 국내기업으로 재탄생됐다. 당시 9만3000배럴의 일일생산능력(bpd)을 갖춘 상압증류시설이 첫 가동에 들어갈 만큼 그 위상도 높았다. 1981년 1월에는 3320배럴의 일일생산능력을 갖춘 윤활기유 제조시설 가동을 시작으로 윤활유 시장에도 진출했다.

1987년에는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했다. 1991년 4월 신규 건축한 나프타 개질공정시설을 가동해 연간 90만 톤의 BTX(벤젠, 톨루엔, 자일렌) 생산능력을 갖췄다. 1992년 5월에는 사우디 아람코와 원유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같은 해 8월 아람코가 제3자 인수방식 유상증자를 통해 쌍용정유의 주식 35%를 매입하면서 합작회사가 됐다. 또 다시 외국계자본이 침투한 것이다. 이후 1998년 11월 국내 판매를 담당하는 자회사인 범아석유를 합병했다. 1998년 10월 세계 최대 파라자일렌 공장인 에쓰오일 자일렌 센터가 완공됐다. 자일렌 센터는 연간 70만 톤의 생산능력을 갖추었다. 당시 단일시설로는 세계 최대 규모였지만 1999년 12월 성장세가 주춤하기 시작했다. 쌍용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쌍용양회가 보유한 지분 28.4%를 자사주로 매입해 쌍용그룹으로부터 독립했다. 2000년 3월 현재의 상호로 변경했다.

2008년 5월에는 프랑스 석유기업 토탈사와 50대 50 합작투자로 에쓰오일토탈윤활유를 설립했다. 2011년 4월 총 1조3000억 원을 투입해 온산공장 확장 프로젝트를 완공했다. 이로써 파라자일렌 생산능력을 연간 170만톤 규모로 늘렸으며, 단일시설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같은 해 6월 태양광 원료인 폴리실리콘을 생산하는 한국실리콘의 지분을 33.4% 인수하면서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진출했다. 또한 2011년 창립 35주년을 맞이하여 마포구 공덕동에 새로 건립된 신사옥에 입주했다. 2012년 말 기준으로 매출액 비중은 정유 부문이 81.1%, 윤활 부문 6.5%, 석유화학 부문 12.4%다.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설립 역경을 견디고 성장한 셈이다. 그러나 지난해 3월 기준 에쓰오일의 현주소는 대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석유회사 사우디 아람코의 자회사였고 올해안으로는 아람코가 단독경영하는 회사로 변경될 전망이다.

시장 안정화 vs 먹튀 논란

이처럼 국내 유망기업의 대주주가 외국계로 바뀌는 현상에 대해 재계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주주가 회사를 키우기보다 되팔기에 관심이 많을 경우 이른바 ‘먹튀 논란’이 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이전에는 국내기업들이 순환출자를 통해 자금마련을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신규순환출자가 금지되다보니 자금마련이 힘든 상황”이라며 “한국기업이 M&A시장에 나와도 그 기업을 인수할 만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은 외국계 펀드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자본시장 논리로 봤을 때 외국 기업이 국내 기업을 M&A하는 것 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다는 지적도 있다.
M&A 연구소 관계자는 “외환위기 시절 론스타와 같은 사모투자펀드를 데리고 들어와 외환은행을 살리기 위한 큰 자금을 유치했을 때는 영웅시 됐다”면서 “처음에는 우호적이었지만 막상 인수를 해 이득을 취하니까 그때부터 부정적으로 변한 것도 외국계업체의 국내기업 M&A를 좋지 않게 보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skycros@ilyoseoul.co.kr